가족 모두가 거실에 모여 각자 해야 할 일들을 하고 있는 모습을 늘 그려왔다.
어느 날 아내와 얘기를 나누던 중, 두 아이 방에 있는 책상 두 개를 거실로 옮겨왔고 기존에 있는 식탁 겸 학습 테이블과 더불어 거실에서 네 가족은 책을 보고 공부를 하고 글을 쓰며 강의를 듣는다. 어제와는 다르게 시간이 더디 흘러가는 느낌에 이 장면을 남겨두고 싶었다.
둘째가 학교에서 돌아와 핫도그를 해달라 한다. 잠시의 휴식과 간식타임 그리고 엄마 아빠와의 짧은 대화, 하교 후 친구와의 사소한 감정대립에 대한 조언을 눈높이에 맞게 해 준다. 조금은 풀리고 웃는 얼굴이 된 아들은 기분 좋게 영어 과외를 위해 길을 나선다.
동생보다 먼저 공부를 하러 갔던 첫째 딸아이가 집에 들어와 씻는다. 수건을 꺼내주고 머리도 말려준다.
연말이라 학급에서 친구들과 마니토를 하는 모양인데, 엄마와 함께 자신이 주고 싶은 선물을 투명 포장지에 정성스럽게 담아낸다.
올해부터 새로운 공부에 도전하고 있는 아내는 거실 테이블에서 노트북으로 과제를 하는 중이다. 나는 책상에서 세 권의 책을 읽었다. 필사도 하고 명상도 하고 아이디어들을 노트에 적어두었다. 그 와중에 남매는 왜인지도 모를 이유 때문에 티격태격이다. 현실 남매의 모습이다. 오늘따라 이런 장면들이 조금 달리 보인다.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가장 큰 행복이자 행운이자 풍요로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더 필요한가. 창조의 아름다움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네 식구가 거실에서 따로 또 같이 생활하는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이 모습이 내게는 특별하다. 물론 여전히 두 아이는, 시간을 허투루 쓰는 빈둥거림에 대해 엄마로부터 타박을 받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감사할만한 수준이지 않을까 싶다. 학교나 학원에서는 좀 더 차분한 생활을 할 수 있길 바라지만, 중요한 건 몸도 마음도 건강한 생활을 꾸준히 이어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저녁식사를 앞두고 각자의 공부를 하며 소곤소곤 말을 섞는 두 아이의 모습은, 사랑이다. 기적이자 감사의 창조이다. 그간 일을 통해 일궈낸 그 어떤 결과물보다 값지다. 비교의 대상이 아니기도 하거니와, 내 눈에 비치는 가족의 모습은 용서와 이해와 치유의 모습이다. 내일이 되면 우리가 나누는 사소한 대화들의 대부분은 기억에서 휘발되겠지만 시간이 멈춘듯한 지금의 감정은 이 시간 이후의 내 삶을, 가장으로서의 인생을, 아빠로서의 내일을 전혀 다른 것으로 만들어줄 것임을 알게 되었다. 잘 지내온 한 해의 끝자락에서 관찰한 가족은 새로웠다. 집안을 환하게 비춰주는 크리스마스트리와 장식들, 그리고 크리스마스 재즈까지. 당분간은 지금의 이 장면에 멈춰서 눈을 감아본다. 책장을 넘기는 소리, 사각거리는 연필소리. 12월을 하루하루 떠나보내며 조금은 더 무르익고 여물어간 우리 넷의 모습들을 그려본다. 평온함과 설렘이라는 이질적인 감정이 가슴 안에 뒤섞이고 이내 미소로 번진다. 아,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뽀얀 수증기가 수직상승하는 흰쌀 밥과 김치 한 조각에 김을 싸서 네 식구가 나눠먹는 저녁에 어찌 부족함이 있겠는가.
다 가졌다. 다 가진 것이다. 이미 모든 것을 가진 것이다.
이것이 내게, 가족이다. 감사의 근원이자 그 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