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방학을 끝낸 아내들이여, 그간의 수고에 박수를 보낸다!
두 아이의 개학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한 겨울의 추위가 꽤 많이 가신 덕에 온 집안 환기를 하고, 이제는 맞지 않은 옷들을 내어놓으라 주문하는 아내의 말에 아이들은 각자의 방으로 흩어진다. 올 3월은 대체공휴일까지 있어 아이들은 하루를 덤으로 얻었다.
올 겨울방학은 유독 길었다.
아내는 교육과정의 실습과 더불어 간간히 일도 했다. 나는 집에서 두 아이를 케어하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했다. 아내와 나는 마치 한 팀처럼 움직였다. 나의 부재 시엔 아내가 아이들을 보고 반대의 경우엔 내가 그 역할을 했다. 한 겨울 아내의 편안한 이동을 위해 근무지까지 태워다 주는 간소한 일정도 우리에겐 도움이 되었다. 그 김에 커피도 한잔 사고 갓 구워낸 빵도 사 올 수 있었다. 그렇게 한주 또 한주를 보내는 동안 아이들은 방학을 만끽했다. 지난겨울방학과는 다르게 가급적 자율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으나 열두 살 딸아이와 열 살 아들에겐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장기적으로 두 아이에게 적합한 학습 방법과 분위기를 찾아내기 위해 자잘한 변화를 주며 지켜보았다. 거실공부에서부터 장소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책을 보고 공부할 수 있는 방법까지 시도했다. 결과적으로 두 아이는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것이 가장 좋다고 판단했다기보다는 두 아이에게도 각자만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여전히 둘째는 공부 자체가 버겁다. 상대적으로 이른 시기에 학습의 길에 들어선 첫째는 부모 눈치를 봐가면서도 스스로 할 줄 알게 되었다. 궁극적으로 내가 바랬던 것은 학원이나 과외의 도움 없이 온라인 콘텐츠와 교재만을 가지고 스스로 학습하는 것인데 이 또한 갈길이 멀다. 그럼에도 이번 겨울은 다양한 시도와 실패의 경험을 얻었으므로 절대 무용한 시간은 아니었다고 평가한다.
아이들은 새 학년으로 올라갈 준비에 한창이다.
새 연필을 깎고 노트를 준비했다. 과제와 교육자료를 담을 파일도 샀다. 엄마와 셋이 둘러앉아 방에서 이것저것 챙기는 모습이 정겹기도 하고 한편으론 세월의 흐름에 서글퍼지기도 한다. 3년 전 둘째의 어린이집 졸업식의 축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이런 말을 했었다.
되도록 천천히 자라주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가장 이쁘고 사랑스러운 그 시절이 가급적 느리게 흘러가길 바랐다. 불가능한 것임을 알기에 염원의 크기는 더 컸을 것이다. 아내 또한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을까. 스물여덟에 시집온 아내가 올해로 마흔이 되었고 두 아이의 준비물을 챙기고 있다. 커가는 아이들의 식욕 덕분에 한 끼에 차려야 하는 밥과 음식의 양 또한 계속해서 늘어난다. 건강에 좋지 않은 간식 대신 식사에 충실하자는 취지인데, 예상보다 많이 먹어 놀란다. 밥을 먹고 뒤돌아서 누룽지를 찾는다. 후식으로 과일도 챙긴다. 밥의 양이 적지 않을 것인데 끊임없이 들어가는 모습에 걱정도 된다. 그럼에도 살이 찌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지도 걱정되기도 하고. 그래도 아내는 길고 긴 아이들의 겨울방학을 끝맺음하는 지금이 즐겁다. 시간적인 여유도 생길 것이고, 지금처럼 식사 준비와 정리에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개인적인 시간을 설계할 수 있게 되었고 그간 뜸했던 지인들과의 커피 한잔으로 다가오는 봄을 맞이할 것이다. 유독 아내의 표정이 밝다. 고생 많았던 시간이었다. 일도 하고 공부도 하고 실습도 다니고 시험도 봐가며 두 아이의 방학을 챙기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남편인 내가 돕는다 해도, 얼마나 힘이 되었겠는가. 아무리 살림에 소질이 있다 해도 아내의 눈엔 허점 투성이었을 것이다. 어디에 뭐가 있다 말해줘도, 아내가 집에 없을 땐 여전히 전화를 한다.
이거 어딨어?
아내의 한숨 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다. 그렇다. 이런 반복이 아내에겐 익숙하지만 남편에겐 매번 새로운 것이다. 말해줘도 모른다. 아니 말해준 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이유는 모른다. 아마도 나는 화성에서 왔고 아내는 금성에서 왔기 때문일 거라 추정만 해 볼 뿐이다. 그래도 아내는 또 알려준다. 그러다 가끔 둘이 마트를 가거나 커피를 테이크아웃하러 갈 때, 나의 그런 행동의 문제점에 대해 조곤조곤 이야기한다.
정말 들은 기억이 나지 않을 때도 많은데 억울하기도 하다. 주의력 결핍인가. 성인 ADHD는 아닐까 스스로 신경 쓰였던 적도 있었다. 근데 이제와 그렇다 해도 어찌할 것인가. 아내를 찾는 이유는, 그 목적물이 되는 무언가로 집안일을 하거나 아내의 수고를 덜어줄 요량으로 시작된 것이 아닌가. 이쯤 되니 아내의 가슴엔 참을 인 자가 골백번도 더 새겨졌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럼에도 아이들의 개학을 앞둔 아내는, 왠지 오늘따라 여유가 넘친다. 화낼 일도 장난스럽게 넘어간다. 이해한다.
아내의 주된 가정에서의 임무 중 하나는, 두 아이가 푼 학습지 등 문제집의 채점과 설명이다.
사실 난 영어 하나 정도만 첫째 아이 위주로 봐주고 있는데, 아내가 해야 하는 역할에 비해서는 견마지로(犬馬之勞)에 불과한 일이다. 아내의 성격상 시간이 몇 시가 되었든 그날 끝내야 하는 일을 마치지 않았을 땐 자정이 넘어가도 그것을 다 마치고 잠들게 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나는 아내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 시 이전엔 모두 잠들도록 하자고 말하곤 했는데 아내라고 그러고 싶지 않았겠는가. 이렇게 하루이틀 보내다 보면 두 아이는 자신들이 해야 할 일들의 경중을 따지기 어려워할 것이 분명하다. 이는 훗날 삶의 우선순위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깨닫게 하는 일 또한 쉽지 않게 할 좋지 못한 습관인 것이다. 아내는 그 점을 가장 우려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런 속사정도 모르고 일찍 재우자, 빨리 자야 키 큰다,라고 하는 남편이 얼마나 속 편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으로 보였겠는가.
시간이 지나면서 개인적인 욕심으로 만들어진 두 아이의 미래와 목표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나 역시도 부모가 원하는 대로 자라지 못했다. 두 분이 바라시는 대로 한 직장에 오래 머물지도 못했다. 학교는 재수를 해서 겨우 들어갔고 대학교 졸업 또한 취업으로 한 학기를 연장해야 했다. 지나고 나서 보니 별 것 아닌 일들인데, 그땐 세상 멸망한 것 같은 슬픔과 고통이 나를 덮쳤다. 장남으로서, 장손으로서, 내가 갖고 있던 강박은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다고 스스로 평가한다. 나는 다소 엇나간 청소년기를 보냈고 뒤늦게 내 자리로 돌아왔다. 고등학교 2학년때부터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았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은 당시 기준으로 사회적 명예나 돈벌이와는 거리가 있었다. 사진, 음악 그리고 글쓰기.
물론 그것을 나의 진로로 택하여 그 길을 걷지 못한 것이 부모의 탓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나 역시도 하고 싶은 것에 대해 전력질주 하지 않았다. 가족 내에서의 어떤 역할 갈등이 나의 진로에도 영향을 미쳤을 뿐이다. 가보지 않은 길이기에 궁금한 것뿐이다. 부모의 뜻을 따라 선택한 길로 인해 이만큼 오지 않았던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내 또한 그것을 알고 있다. 부모의 종용이 아이들을 옳은 길로 인도하지는 않는다는 사실 말이다. 그래서 늘 우리는 어떤 '선(線)'에 대한 고민을 한다. 어디까지, 얼마만큼 해야 하는 것일까.
여전히 이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주제이다. 다른 부모들 또한 그러할 것이라 생각한다.
포기하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압박감을 주지도 않으면서 '아주 적당한 정도의 선'이 어디인가 하는 문제 말이다. 아마 두 아이의 개학을 준비하는 아내의 마음도 나와 같은 생각들로 조금은 부담스럽지는 않을지 한편으론 마음이 쓰인다. 그럼에도 내일에 대한 기대로 기뻐하는 시간을 보낼 자격은 충분하지 않은가.
사람들이 사는 모습은 별반 다르지 않다.
가정에서의 모습 또한 그러할 것이다. 누구에게나 방학은 즐겁고 개학은 설레기도 하면서 걱정도 되는 시간이다. 아이들의 개학은 엄마의 방학이다. 아내가 한동안 이 방학 같은 시간을 건강하게 잘 보내길 바란다. 더불어 겨울방학을 무사히 보낸 대한민국의 모든 아내분들께 응원과 위로의 마음을 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