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아주 오래전, 기억도 나지 않는 어떤 날로 돌아가고 싶다.
지금의 내가 아닌 모든 것들이 서투르고 실수 투성이어도 괜찮았던 그런 시절 말이다.
가진 것이 없어도 편했고 자신감 대신 순수함이 용기가 되어주던 시절이었다. 한껏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으며 밤을 새워서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도 거뜬한 체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나의 부모 또한 한창이던 그 시절 말이다. 내 나이 스물, 나의 아버지는 지금의 내 나이보다도 젊었다. 모든 것을 책임지고 이루어냈던 시절이었음이 떠올라 나는 부끄럽다. 그때의 아버지가 지금의 나를 본다면, 무슨 말씀을 해주실까. 말도 나오지 않을 정도로 답답하고 아둔해 보이는 아들이라 말은커녕 그 자리를 피하고 싶으실 테다. 이제는 일흔셋이 된 그 아버지는 이십칠 년 전의 그 모습처럼 모든 것을 책임지고 여전히 이뤄가시는 중이다. 나와는 다르게 말이다.
다른 피가 아닐 텐데 오십을 몇 해 앞두고도 여전히 아버지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나는, 빛 좋은 개살구가 아니었던가. 빈 수레 같은 나의 삶이, 어느 날 마주한 나의 아버지의 패인 주름에 걸려 있었고 덕분에 당신의 주름은 더 깊어져갔다. 그것을 몰랐다. 그것을 알면서도 모른 체했다. 어쩌면 정말로 모르고서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부모님 댁 서재의 책들을 정리하다 천상병 시집을 발견했다.
반가움에 들춰보다 한 페이지에 구십삼 년도 당시 아버지의 명함이 꽂혀 있었다. 아마도 출퇴근 길에 오가며 그 페이지의 시까지 읽으셨을 테지. 갈매기였다.
일천구백구십이 년 십이월말에 출간된 이 시집을 구십삼 년 일월초에 이천오백 원에 구입하셨다. 기억으론 당시 할머니께서 서울대병원에 간경화로 입원 중이셨다. 그해 십일월에 소천하셨다. 오랜 시간 병중에 계신 어머니에 대한 걱정이 크셨던 그때에 아버지는 어떤 생각들을 하며 서른의 끝자락을 보내고 계셨을까. 또한 나는 아버지의 아들임에도 아버지만큼의 생각의 깊이와 행동의 진중함이 늘 부족했던 것일까. 내가 부끄럽지 않았던 때가 과연 언제였단 말인가. 마치 내가 산 인생은 아주 잘못 살아버린 실패작 같아 보였다.
그런 내가 부모가 되어 살아간다는 것이 나의 가족에게 어떤 의미로 기억될까. 나는 부끄럽고 부끄러우며 자신이 없다. 나의 아버지가 살아온 성실했던 시간의 밀도에 비해 채 삼 할에도 이르지 못할 불량함을 갖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게 남은 지금의 모습 또한, 어떤 면에선 두 분의 모습을 닮은 것이 분명할 텐데 도저히 찾아볼 수가 없어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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