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일을 20년 가까이해왔으나, 그 일에 대해서는 글을 써본 일이 거의 없다.
여기에는 남들은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나만의 생각이 깔려있는데, 자신만의 일의 철학 그리고 이렇게 해야 한다 또는 저렇게 하는 것이 맞다라고 한 영역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다소 어려운 일이고 어떤 경우엔 민망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속한 조직에서 그 팀과 기업의 분위기에 맞게끔 조직문화를 만들고 교육을 해나가는 것은 좀 다른 일이다. 동일한 비전과 미션을 공유한 그룹 내에서는 체계적인 시스템과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는 업무에 대한 룰이 정해져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내가 몸담고 있는 영역에서 이미 범접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른 이들이 즐비하기 때문인데, 세간에 흐르고 있는 업무 영역에 대한 이론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정리되지 않은 개인의 경험 따위가 불특정 다수에 해당하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여전히 다양한 공간에서는 많은 이야기들, 대부분이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일에 대한 통찰로 기록되는 중이다. 가끔 그것을 읽어보고 생각하게 된다. 과연 우리가 경험이라고 이야기하는 것들 중에, 진실되게 '경.험.했.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과연 얼마나 될까. 스스로는 그것을 알고 있을까. 일기를 쓰듯 써 내려가는 일의 정리에는, 만약 그것이 누군가에게 공개가 되는 것이라면 나는 더 신중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시작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다만 어떤 경우에 개인과 조직의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개인적 경험에 기반한 두리뭉실한 이야기들을 블로그에서 시작하다, 그마저도 접어버렸다. 자신이 없었다. 이십 년 가까이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팔고 마음을 바꾸게 하고 때론 읍소도 하며 영업이란 것을 해왔는데, 이에 대해 이야기하려니 한없이 작아지는 것이다. 대신 그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교류, 사건, 감정의 변화 그리고 메시지에 대해 써왔다. 그렇게 얻어진 나의 개인적 보상에 대해 썼다. 과정에 대한 것을 과감히 생략한 채 내가 얻게 된 결론에 대한 이야기만 다뤄왔다.
과정에 대한 이야기는 내가 원하는 결론을 얻었을 때 한없이 포장되고 미화되기 쉽다. 나는 이것이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쓰지 못했는데 아쉬운 것도 있었다. 쓰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에게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커다란 한 덩어리에 대해 쓸 수 없다는 것은 가끔 내게 고통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그럼에도 용기를 낼 수 없었던 것은, 행여 경험이 일천한 누군가가 그보다 조금 더 나은 이의 무용담을 비중 높은 진리로 받아들일지도 모른다는 위험성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런 생각에 조금씩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지난 시간의 나는 어떤 사람이었고, 무엇에 그리 열중이었으며, 무엇 때문에 울고 웃었는지, 왜 하필 그것이 나의 일이었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어떻게든 글의 형태로 남겨야 고생스러웠던 지난 시간들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더불어 좀 더 구체적으로 기록하지 못했던 시간들에 대한 아쉬움, 띄엄띄엄 연결되어 있는 어렴풋한 이슈들 모두가 이제와 보면 다양한 이야기로 다듬어질 수 있는 소재들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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