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자!” 한마디로 시작된 프로젝트
지루한 여름은 느릿느릿 흘러가고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 듣던 영어 수업도 휴강, 일주일에 한 번 배우던 목공 수업도 기약 없는 휴강, 사람을 만나고 어딘가를 가느라 늘 빼곡하던 나의 다이어리 일정표가 텅 비어버린 날이 끝내 오고야 말았다. 모든 일상이 멈춰버린 순간.
햇살 쏟아지는 아파트 거실에 앉아 커피를 홀짝거리다 문득 통유리 안에 스스로 갇혀버린 듯 울컥해졌다.
‘우리 백석에서 대화역 사이 자유로 인근에 땅 사서 집 짓고 셋이 같이 살자!’
김포와 고양에 사는 두 동생에게 이렇게 단톡을 보냈다. '살면 어때?', ‘살아 볼래?'가 아닌 느낌표 팍 찍은 '살자!'. 내 마음은 그만큼 절박했다.
2020년 8월 30일, 여름도 다 끝나갈 무렵이었다.
그날 동생들과 셋이서 하루종일 틈틈이 톡을 했다. '자유로 인근'으로 시작한 집 지을 장소 후보지는 평소 자주 산책을 다니던 파주 운정신도시 우리집 근처 공원 상가주택 부지로 옮겨간다. 내친김에 훌쩍 공원으로 달려가서는 잔디밭에 인접한 그 빈 땅을 멀건히 쳐다보다가 사진을 찍어 단톡방에 올렸다. 인터넷으로 부동산 매물도 확인했다. "딱 여기야!"
다음 날에는 단톡에서 빠져 있던 수원 사는 셋째까지 불러들였다. 2년 전 김포 타운하우스에 입주한 막냇동생은 아무래도 합류하기 무리일 것 같았고, 넷째와 나 둘이서는 역부족이지 싶었다. 그러고는 얼른 단톡방 이름을 '집을 짓자!'로 붙여 저장했다.
너무 저돌적으로 밀어붙이는 내 모습에 당황하면서도 동생들은 긴가민가를 넘어 살짝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정말 좋은데, 내 직장이 너무 멀어. 대찬성인데, 애들 학교를 다 전학시켜야 해서 괜찮으려나. 가고는 싶은데, 입주한 지 딱 2년 된 우리집은 어쩌지."
동생 셋의 상황을 하나하나 따져보니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겠다.
언변능숙형 ENFJ, 나의 MBTI다. 솔직히 언변이 능숙하지는 못한 것 같지만 누군가를 설득해내는 능력은 좀 있는 모양이다. ENFJ의 특징 중에 타인의 성장을 도모하고 협동하는 힘이 있다는데 아주 요긴하게 잘 써먹었다.
"내가 다 해결해줄게. 일단 현장을 와봐. 우리집 터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공공도서관이 있어. 애들한테 완전 좋겠지? 더 가까운 곳에는 수영장 딸린 체육관이 있어. K(막내 남편)는 수영장 딸린 집 갖고 싶어 했잖아. S(넷째 남편)는 400미터 트랙 보면 엄청 좋아할걸. D(셋째 남편)는 넓은 집 살고 싶댔으니 이번에 그렇게 지으면 되고.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1층에 공용공간을 두고 스터디 카페처럼 꾸미는 거야. 재택 근무하는 어른들은 거기서 일하고, 아이들 온라인 학습도 모여서 하고! 밥은 1층에서 뷔페처럼 먹으면 얼마나 효율적이겠어.
가뜩이나 집집마다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어 답답함을 호소하던 터라, 돌아오는 주말에 일단 모두 와보기로 의기투합했다. 솔깃한 내용들은 각자 다르겠지만 나는 안다. 결혼 전 이미 우리 넷이 모여 살았던 그 시간들의 수많은 추억들이 한몫했으리라는 걸.
토요일 오후, 온 세상을 집어삼킨 코로나19로 한참을 못 만난 네 자매가 뭉쳤다. 그것도 우리 동네 공원, 그냥 우리끼리 마음으로 찜해놓은 빈 상가주택 부지에서. 엄마 따라온 조카들은 만나자마자 어찌나 뛰어다니며 잘 노는지 금세 땀범벅이다. 집에만 갇혀 있던 녀석들이 뛰어다니는 걸 보니 우리도 숨통이 다 트이는 것 같았다.
놀라운 일은 지금부터!
강남으로 출퇴근해야 하는 넷째가 현장에 와보고 마음을 돌렸다. 편도 1시간 30분~2시간은 족히 걸릴 통근 거리의 높은 벽을 넘어선 것이다. 넷째의 남편 S를 어떻게 공략해야 할까 고민하며 헤어졌다.
각자 집으로 돌아간 후 예기치 않게 막내네도 합류하겠다는 소식을 전해 왔다. 입주 2년 된 김포의 타운하우스, 거기다가 부부 둘 다 직장이 김포, 이웃들과도 너무 잘 지내고 있다는데! 심지어 다음날 K는 영 시큰둥해한다는 S에게 전화를 걸어 설득까지 하는 적극성을 발휘했다.
"S형. 형네 가족 안 들어오면 우리끼리만 지어서 재미있게 같이 살 거예요!"
소외당하는 걸 끔찍이 싫어하는 S의 틈새 공략 작전이 제대로 먹혀든 것일까. 넷째네도 합류 결정!
수원 사는 셋째네는 토목 일을 하는 D가 문제였지만 어차피 2~3년 만에 한 번씩 현장을 옮겨 다녀야 하는 직종인지라 오히려 결정이 어렵지 않았다. 현장이 멀어져 주말부부로 지내야 할 때 자매들과 함께 살면 오히려 덜 불안하다는 장점을 어필했다.
둘째인 나 우리집은? 뭐, 함께 사는 두 남자(남편과 중2 아들)는 아주 오래전부터 집 타령을 해온 내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두고 따라와 주기로 진즉 모든 권한을 위임했다! 한두 가지 조건이 따라붙긴 했지만 그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니 흔쾌히 오케이!
그러니까 우린, 내가 처음으로 말 꺼낸 지 딱 일주일 만에 네 자매가, 아니 네 자매의 가족 열다섯 명이 함께 집을 짓고 모두 모여 사는 것에 합의했다! 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