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 배운 집 짓기

책으로 연습한 건축의 기초

by 쟁이

무슨 일이든 저질러 놓고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잘 몰라 헤맬 때 나는 우선 책부터 파고드는 타입이다. 집을 짓기로 결정하고 동생들과 의견을 나누는 것과는 별개로 혼자 바빴다. 일단 집에 있는 책장부터 뒤졌다.


<협동조합으로 집짓기>, <마이클 폴란의 주말 집짓기>, <집:집의 공간과 풍경은 어떻게 달라져 왔을까>.

이 세 권의 책은 모두 2015~2016년 사이에 산 것들이다. 한살림소비자협동조합에서 근무한 지 4, 5년차 때였고 한창 협동조합 공부에 재미가 붙어 이론을 넘어 '직접 사람을 모아 주택협동조합을 만들고 함께 살 공동체 집을 짓고자 하는 욕구'가 꿈틀거릴 때다. 성미산마을에 견학을 다녀온 후였나. 공유 부엌을 비롯한 공용 공간들을 잘 갖춘 공동체 주택을 직접 보고, '이런 꿈을 꾸고 실현한 사람들이 있었구나' 싶어 반갑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협동조합으로 집짓기/홍세라/한겨례출판/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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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으로 집짓기>를 보며 책 속 '구름정원집'처럼 당장이라도 집을 짓고픈 마음에 들떴다. 소설가인 저자를 포함해 여덟 가구가 모여 협동조합으로 집을 짓는 과정을 세세하게 쓴 책인데 여러 갈등 상황까지도 고스란히 기록했다(물론 여러 번 정제시킨 것이겠지만^^). 그즈음부터 친하게 지내던 한살림 조합원 중에서 나와 형편이 비슷한 몇몇을 염두에 두고 은근슬쩍 떠보거나 부추겨보기 시작했다. 몇 년을 두고 기회가 될 때마다 "그러니까 우리, 땅 사서 같이 집 짓자' 했다. 그들에게 요즘은 이렇게 말한다.

"너네랑 했으면 아마 나는 지금쯤 뒷골 '땡겨서' 쓰러졌을지도 몰라!"

동생들과도 쉽지 않은데 얼마나 더 속으로 끙끙거리며 삭혀야 했을까, 서로의 다른 생각들이 얼마나 많이 부딪쳤을까. 그러면서도 못내 아쉽기도 하다. 협동조합을 꾸려 해보고 싶던 것들이 많았다.

그래서 다시 꿈꾼다. 우리 동네로 지인들을 끌어들여 보면 어떨까. 괜찮은 마을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우리 동네로 이사오지 않을래?"

요즘 다시 이 말을 시작했다!



집 : 집의 공간과 풍경은 어떻게 달라져 왔을까/전남일/돌베개/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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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 없이 출판단지에 들러 좀 걷다가 별일 없이 행간과 여백(돌베개출판사 1층의 북카페)에 들러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책 한 권을 사서 나오는 걸 좋아한다. 아마도 어느 가을날 그렇게 내 손에 잡힌 책이었을 거다. '이 출판사에서 이런 책도 나왔었나?' 싶었다.

막 읽히는 재미는 덜하지만 흥미진진한 책이다. '집'이 궁금했던 내게 많은 답을 안겨줬다. 시골에서 태어나 소도시 하숙과 자취생활, 서울 셋방살이를 경험하고 결혼 후 월세, 전세를 거쳐 아파트를 분양받은 하우스푸어인 나에게 '집'은 언제나 중요한 숙제였다.

이 책에서는 '집'이라는 것의 구조적인 공간 변화만이 아니라 '왜' 그렇게 변해왔는지에 방점을 둔다. 거기에는 남성, 여성의 중심 이동이 있고, 외부 문물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있고, 편리와 필요 등 세상 다양한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었다.

'당신의 집은 어디인가', '사는 곳이 바뀌면 풍경도 달라진다' 이 두 속표지 제목이 마음을 끌었다.

'나의 집은 어디인가, 어디에 살고 싶은가?'를 종종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보면 좋겠다. '아, 그래서 이렇게 되었구나' 싶을 때가 많았다.

건축가가 쓴 책이라서, 직접 그린 드로잉들이 곳곳에 들어있어 더 좋다. 난 건축가들이 직접 그린 도면이나 스케치들이 참 좋다.



마이클 폴란의 주말 집짓기/마이클 폴란/펜연필독약/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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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작은 나무 오두막을 직접 짓는 과정을 400쪽 넘는 책으로 그림도 거의 없이 글로만 쓴 작가가 있다. <잡식동물의 딜레마> 저자로 알고 있는 마이클 폴란. 그러니까 작은 오두막을 짓는 과정을 쓴 책이 <주말 집짓기>이고, <잡식동물의 딜레마>도 그 작은 오두막에서 태어났다. 2016년에 초판으로 만난 책이지만 미국에서는 1997년에 발행된 책이다.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 작은집건축학교가 있다. 일주일 정도 합숙하며 5평짜리 집을 협업으로 짓는 과정이다. 퇴사를 하면 거기 가고 싶었다. 그런 마음이 간절할 때 산 책이다,

'좋은 집'이라는 건 모든 사람에게 다 다르다. 사진 속 작은 숲속 오두막이 마이클 폴란에겐 더없이 아늑하고 창의력 뿜뿜 솟는 공간이었을 텐데 어떤 사람에겐 1도 궁금하지 않아 그냥 지나쳐버리는 곳일 테니.

내가 집을 짓기 시작했을 때의 반응도 그랬다. “너무 좋겠다”는 사람도 있지만 “아파트 팔고 나중에 후회할 거”라고 걱정하는 사람도 있었다. “자매들과 함께 살아 좋겠다”는 사람도 있고, “자매들과 함께 살면 오히려 관계가 안 좋아진다”고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

모두가 맞는 말이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경험과 잣대로 생각하고 판단하니까. 그 말들은 새겨는 듣되 너무 연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나는 나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기로 마음 먹었다. 힘은 들어도 충분히 즐겁고 의미 있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우리가 짓는 집은 형태적으로는 상가주택이고 법적으로는 다가구주택, 의미로는 공동체 주택 정도 된다. 책을 딱 두 권만 사겠다고 결심했다. 앞으로 집을 지을 때 구조적으로나 과정에서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책 한 권, 함께 하는 의미를 찾고 갈등을 조율해가기 위한 책 한 권. 인터넷으로 검색부터 한 후 도서관에 가서 훑어보고 나서 고르고 골라 2권 구입했다.



직장인, 겁 없이 상가주택 짓다/진하빠/주택문화사/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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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까 말까 한참 망설였지만 나름 잘 선택했다고 생각한 책이다. '월급 받고 월세까지 받는 건물주 되기 플랜' 이런 말들이 난 참 거슬린다. '조물주보다 높은 건물주'니, '아이들의 장래 희망이 다 건물주'라느니 하는 말들이 도는 세상이다 보니 '건물주'라는 말 자체부터 거부감이 생겼다. '집'을 '돈의 가치'만이 아닌 '의미'로 좀 생각하면 안 되나.

하지만 집짓기를 시작하면서 당장 나 스스로도 뭐부터 해야 할지 초반부터 헤매고 있었다. 땅을 사고, 설계를 의뢰하고, 도면이 나오면 시공 계약을 하고. 그러고 지으면 되는 거 아닌가? 너무도 단순한 말과 글들에는 포함되지 않는 것들이 많았다.

집 짓는 과정에서 대출은 언제쯤 받을 수 있는 거지?, 우리땅이 80평인데 대체 몇 평짜리 건물을 지을 수 있는 걸까?, 평당 시공비는 얼마쯤이면 어느 정도로 지어지는 건지, 조금만 구체적으로 들어가도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만 재확인하게 되었다.

내가 갖고 싶었던 것은 넓은 대지에 여유 있는 마당을 가진 전원주택이었기에 상가주택이라는 게 좀 못마땅한 마음도 있었다. 마음을 다잡고 내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부분들을 파악하기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살폈다.

집 짓는 전체 과정, 특히 우리가 지어야 할 상가주택의 특징이나 주의해야 할 부분들을 알 수 있었다. 여기서 '임대 세대', '주인 세대'의 구분과 평당 시공비의 어마어마한 차이들도 처음 알게 됐다. 모든 과정을 진행해 본 건축주의 입장에서 쓴 책이라 실질적인 도움이 컸다.

'집을 짓는 모든 사람이 내가 살 집이다 생각하고 집을 짓는다면, 얼마나 좋은 집이 지어질까?' 이 질문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마을을 품은 집, 공동체를 짓다/류현수/도서출판 예문/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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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집을 짓고자 하는 사람이 아니어도 읽어봤으면 하는 책이다. 오랫동안 '소행주(소통이 있어 행복한 주택) 프로젝트'를 진행해 온 건축운동가 류현수의 기록이다. 발간 당시 사서 읽어보고 싶었는데 잊고 있다가 도서관에 가서 다시 만났다. 처음에는 대충 넘기며 훑어보다 곧바로 주문했다. 두고두고 줄 쳐가면서 읽어야 할 것 같았다.

앞서 소개한 책이 집 짓는 과정에서 실질적인 부분에 도움이 컸다면, 이 책은 중간중간 나의 마음을 다잡는 데 큰 역할을 해줬다.

실제 여러 프로젝트의 진행 과정과 결과,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우리가 짓게 되는 주택에서 더하고 뺄 것들도 끊임 없이 생각하게 했다. 책 안에는 우리처럼 자매들이 모여 지은 집 이야기도 나왔다.


"내가 다 가지려다보니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하고 만다. 내 이웃과 더불어 조금이라도 공간을 나눌 마음이 자리하고 있다면 사실 난 그 공간은 다 가진 거나 마찬가지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건물이나 돈이 아닌 추억을 물려주고, 게임기와 스마트폰이 아니라 평생 함께 갈 수 있는 친구와 이웃을 만들어주느냐는 소행주의 끝이다."


마음이 심란한 때마다 이 책에 밑줄 그어 놓은 문장들을 다시 꺼내 봤다. 우리가 함께 집을 짓는 이유, 그것은 건물로서의 집보다 더 큰 의미를 짓고자 함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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