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모한 용기가 우리를 이끌다
시작이 반일까, 시작은 그저 시작일 뿐일까?
이 두 상반된 문장에 대해 생각한 적이 있다.
뭐, 둘 다 너무도 맞는 말이다. 어쨌든 시작이 있어야 반도 있고 끝도 있으니 나는 전자에 좀더 무게를 싣기로 했다. 설사 시작만 해놓고 끝난다 하더라도, 시작도 하지도 않은 것보다는 낫다는 주의랄까.
열다섯 명(실질적으로는 어른 여덟 명)이 모여 사는 것에 동의하고 땅도 찜해놓았지만, 1차 관문은 그걸 무사히 우리 땅으로 만드는 작업이다. 용감하게 저지르고 나서 번뜩 조바심이 났다.
'우리가 이러는 사이 땅이 홀랑 팔려버리면 그만 아닌가?'
상상만 해도 너무 허탈해서 마음이 갑자기 조급해졌다. 이틀 뒤 급히 시간을 내 부동산사무실로 달려갔다. 오전 휴가를 낸 넷째와 함께. 화요일 휴무인 막내도 같이 가기로 했는데 아침 일찍 대출 알아보러 가서는 점심시간쯤 겨우 우리와 만날 수 있었다. 땅만큼이나 대출도 중요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사실, 우리 네 자매에겐 여윳돈이 거의 없었다! 각자 결혼생활 9~15년 정도 되었는데, 결혼할 때 집을 사서 간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작고 열악한 전셋집에서 신혼을 보내고 한두 번 더 이사해서 전셋집 살다가 아파트를 분양받거나 오래된 아파트를 샀다. 딱 2년 전 막내가 김포의 타운하우스를 분양받아 이사할 때 축하해주면서도 대출이 너무 많아 어쩌냐며 다같이 걱정하기도 했다.
다들 대출 갚기 바쁜 상황이니 땅 사고 집 지을 여윳돈이란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 것. 누가 들으면 우리의 결정이 '용기'가 아닌 '무모함'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현실성도 꼼꼼하게 따져가며 한 발씩 나아갔다.
일단은 땅 사는 것만 생각하자. 땅 사기 위해 집부터 팔아야 하면 너무 힘들어지니 어떻게든 돈을 끌어모아서 해보자. 그리하여 먼저 은행으로 달려간 거다. 깐깐한 우리의 금융기관은 다행히도 일주일 후 막내의 마이너스 통장 한도를 늘려주었다. 후유, 그마저도 얼마 지나지 않아 규제가 심해졌으니 우리로선 얼마나 다행한 일이었는지!
부동산사무실과 상담하니 땅 사는 것은 돈만 있으면 가능했다. 땅 주인은 집 지어서 살고자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이 동네에 여러 필지의 땅을 매입해 놓고 건물을 지어 팔아 넘기는 방식으로 사업을 하는 건축업자라고 했다. 부동산사무실마다 이런 건축업자 2~3명씩 끼고 협업을 한다고 얘기해 주었다. 우리가 땅을 사고 이분에게 건축을 의뢰하면 된다는 친절한 설명과 함께. 그러니까 대부분 상가주택의 미래 주인은 부동산사무실을 통해 땅을 사고, 소개해준 건축업자에게 의뢰해 4층만 복층으로 잘 지은 상가주택을 건축하여 꼭대기 층에서 살거나 통으로 임대를 놓는다고 한다.
아, 처음에 부동산사무실에서 '7~8억이면 건물을 지을 수 있다'는 말의 실체를 그제야 이해했다. 찾아보니 1~3층은 임대 놓는 집이라 건축 자재나 공법, 인테리어 등등 모든 것을 '임대용'으로 구성하는 경우가 흔했다. 4층만 '주인 세대용'으로 모든 것이 달랐다. 그러니까 평당 건축비가 1~3층과 4층이 2배 이상 차이가 나는 거다. 그 일반적인 현실을 그대로 적용한다면 우리는 주인 세대만 4개가 되는 거고, 전체 건축비는 7~8억으로 어림도 없다는 결론!
동생 중에서 제부가 좀 반대를 하는 집은 "3억이 채 안 되는 돈을 들여 자재도 좋은 걸로 30평 넘는 집을 지어서 들어갈 수 있다"는 말로 꼬드겼다는데 어쩌나. 에이 뭐 그건 다음 일이고, 일단 마음이 바뀌지 못하도록 '얼른 땅을 사야해!'로 결론 내리고 우린 부지런히 방법을 찾아 동분서주.
동생과 함께 처음 부동산사무실에 방문한 날이 2020년 9월 8일이고 딱 5일 후 가계약, 그 후 다시 6일 후에 정식 계약서를 작성했다. 그 열흘 남짓한 시간 동안 현장을 열 번도 넘게 가본 것 같다. 상가주택 건물과 건물 사이 비어있는 그 땅에 상상 속으로 건물을 올려보고 주변을 살펴보고, 내려다보고를 반복했다.
열다섯 명이 전재산을 모아 집을 짓고 오래도록 함께 살아야 하는 집터에 혹시 치명적인 단점이 있지 않을까 염려스러웠다. 이 땅이 남아있는 것이 다행인지, 혹 다른 땅보다 조금 비싸다는 이유 말고 아직 팔리지 않은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닌지. 주변 건물들의 건축물대장과 등기부등본을 여러 장 떼가며 비교해 보고 가늠해 보고. 우리가 동원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들로 검증했다. 그 다음엔 밀어붙이기! 좋은 집으로 만드는 건 오로지 우리들의 몫이니까.
토지 가계약을 하자마자 설계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부동산사무실에서 소개해주는 건축업자에게 우리집을 의뢰할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 않았다. 20세기 말 처음 우리집을 짓고 싶었던 그때부터 제대로 설계를 맡겨 집을 짓고 싶은 꿈이 있었다.
그즈음 건축잡지에서 2년 남짓 취재기자로 일하며 유명 건축가들의 작품을 보고 인터뷰하고 그들의 세계를 곁눈질했다. 내가 직접 공부를 해볼 생각까지는 없었지만 건축은 상당히 매력 있는 작업이었다. 당시 설계사무소에서 일하는 사람이나 취재기자나 밤샘을 밥먹듯 하면서 박봉이라고, 서로의 일을 안스러워하며 위안삼곤 했다. 그때 그 초짜들도 지금은 베테랑이 되어있겠지. 어쩌면 힘들어서 그 일을 그만둔 사람들도 많겠지.
그때 만났던 이름 있는 건축가 몇 분을 무턱대고 찾아가볼까 잠시 망설였지만 고심 끝에 두 군데를 골라 미팅을 잡았다. 한 곳은 내 고등학교 선배인 건축과 교수, 한 곳은 소개받은 곳으로 우리 자매와 비슷한 또래의 부부가 운영하는 건축사사무소였다. 왠지 우리의 감성을 잘 이해할 것 같아 살짝 끌렸다. 10월 첫 주, 이틀 간격으로 두 군데 미팅을 잡았다.
시작을 하니 진행이 된다. 시작은 시작일 뿐이지만, 어떻게든 시작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니까! 그러나 우리에게 닥치는 현실들은 그 첫 번째부터 어떤 것도 녹녹치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