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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잡담 Apr 08. 2023

바이러스와 면역세포(2)

- 바이러스 해킹 -

바이러스와 면역세포(2)

- 바이러스 해킹 -

        

이 글은 앞 글(1)에 대한 문제 풀이라고 볼 수 있다.

세포방호시스템을 뚫기 위한 바이러스 해킹에 대한 내용이다. 바이러스 해킹 메커니즘 역시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이 많으며, 이 부분 또한 개인적인 상상에 의한 스토리텔링이다.


- 세포의 출입보안 -

세포의 문지기효소에 대응하는 병기는 바이러스 껍질에 있다. 바이러스 껍질은 문지기효소의 표적물질과 반응하는 성질이 있다.

표적물질이 껍질에 닿자마자 껍질과 반응하면서 표적물질이 녹아서 없어진다. 때문에 보안단백질들이 몰려와도 소용이 없다. 표적이 보이지 않으니 단백질 감옥을 만들 수 없는 것이다.

바이러스 안에 있는 RNA가 노출되려면 껍질이 해체되어야 하는데 그 일도 표적물질이 해주는 셈이다. 보안단백질을 속이도록 도와주면서 덤으로 껍질도 벗겨 준다.     


- 단백질검증 -

바이러스가 단백질검증효소에 대응하는 방법은 비교적 간단하다. 이 효소는 RNA 앞에 붙어 있는 캡을 인식하여 정품 여부를 검증한다. 캡에는 시리얼 번호 같은 식별물질이 있다.

그런데 바이러스는 세포의 것을 훔쳐다 자신의 RNA에 붙인다. 이것은 정품이기 때문에 단백질검증효소는 이것이 바이러스 것이라는 것을 알아채지 못한다. 반면에 캡을 도둑맞은 세포 RNA는 바이러스 대신 침입자 누명을 쓰게 된다.

캡을 훔치는 일은 바이러스가 가지고 있는 효소가 한다. 이 효소는 상대편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캡을 유전자 가위로 살살 오려낸다. 상대는 자신의 캡이 도둑맞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 단백질절단 -

단백질절단효소에 대한 답은 바이러스 RNA코드에 있다.

이 코드의 명령으로 껍질단백질 만들 때 효소흥분 아미노산도 펩타이드 결합되어 나온다. 즉, 바이러스 RNA가 복제될 될 때 효소를 흥분시키는 물질이 자동으로 생산되어 나온다. 이 물질은 단백질절단효소를 흥분시키기 위해 바이러스가 특별 제작한 물질이라고 볼 수 있다.

세포가 단백질절단효소를 개발함에 따라 바이러스도 그에 대응하기 위한 수단을 마련한 것이다. 이것은 “지키려는 자와 해킹하려는 자”의 기술경쟁의 결과물이다.

리보솜이 바이러스 RNA코드를 읽을 때, 효소흥분 물질도 같이 생산되어 단백질을 잘라야 하는 부위마다 붙는다. 그것에 노출되면, 단백질절단효소는 그것을 자르고 싶어서 안달이 난다. 말 그대로 효소 흥분제인 것이다.

생산되는 것이 자신의 것이 맞는지 확인해야 하는데, 단백질절단효소는 그 임무를 잊고 만다. 마약에 취해 판단력을 잃어버리는 것과 유사하다.  

   

- 항원제시 -

세포의 항원제시에 대한 풀이는 좀처럼 쉽지 않다.

킬러세포(면역세포)에게 들키지 않고 증식하는 방법은 뭐가 가장 좋을까? 제일 좋은 방법은 킬러세포가 눈치채기 전에 얼른 일을 마치고 튀는 것이다. 그러나 일을 마치기 전에 들키는 경우에는 세포와 함께 통째로 제거된다는 문제점이 있다.

세포 안에서 증식할 때마다 개체를 하나씩 밖으로 내보내는 바이러스도 있다. 들킬 때 들키더라도 몇 개는 살려보자는 취지다. 그러나 이건 더 위험하다. 미리 내보낸 바이러스 정체가 드러나면 면역세포들이 세포마다 보초병을 세우게 될 것이다. 남아있는 개체들은 세포 안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게 된다.

좀 더 고급기술을 사용하는 바이러스도 있다. 항원제시에 표가 잘 나지 않도록 증식을 천천히 하는 것이다. 30분이면 끝낼 수 있는 일을 몇 달에 걸쳐서 조금씩 진행한다. 잠복기간이라는 것이 이런 경우다. 개체수가 충분히 채워졌다 싶으면 한꺼번에 세포 밖으로 탈출한다.

반대로 빠른 속도로 증식을 진행하는 바이러스도 있다. 일 처리를 킬러세포보다 더 빠르게 하는 것이다. 킬러세포가 감염된 세포 1개 처리하는 동안에 10개를 감염시키는 식이다.

그러나 이 경우는 질보다 양이기 때문에 제대로 된 바이러스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적다. 유전물질이 없거나 껍데기가 없는, 만들다만 불량품이 수두룩하게 발생하게 된다. 증식한 개체가 1만 개라면 정상인 것이 1개 정도 될까 말까 할 것이다.


실제 자연에서는 세균을 숙주로 삼는 박테리오파지가 바이러스 대부분을 차지한다. 다세포 생물은 면역체계가 복잡하기 때문에 바이러스는 동식물 세포에는 최적화되어 있지 않다. 설사 침입한다 해도 주요 타깃은 그 안에 살고 있는 단세포 생물, 즉 미생물이다.

따라서 질병은 바이러스에 감염된 미생물에 의해 발생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동식물 세포가 직접적으로 바이러스 숙주가 되는 경우는 우연이거나 재수 없는 경우다.

바이러스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면역 세력이 약해져야만 한다. 사실 바이러스에게 성공의 지름길은 그것 뿐이다. 행운이 따르지 않으면 증식에 성공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약한 면역체계를 만나는 것이 바이러스에게는 행운이다.     


- 체액면역 -

바이러스가 안전하게 숙주에 침입하기 위해서는 입국심사부터 통과할 필요가 있다. 이 문제 해결을 위해 많은 바이러스들이 저마다 전문기술 하나씩 가지고 있다.

숙주의 미생물로 위장하는 경우가 있다. 미생물 하나를 잡아 그 물질분자를 뒤집어쓰고 위장하는 것이다. 미생물은 숙주와 공생관계이기 때문에 입국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약한 면역세포 하나를 잡아 그 속에 들어가서 자기도 면역세포인 양 행세하는 경우도 있다. 가장 악명이 높은 것은 면역세포 사령관격인 T세포를 숙주로 삼는 것이다. 에이즈(HIV) 바이러스가 그렇다. T세포는 병원균과 싸우는 면역세포들을 총지휘한다. 때문에 T세포가 역할을 못하면 면역시스템은 올 스톱이다.

면역시스템이 마비되면 별거 아닌 병원균이 활개를 친다. 감염자가 사망하는 진짜 원인은 HIV 때문이 아니라 별거 아닌 병원균 때문이다.  

   

- 숙주변이 - 

바이러스 숙주는 원래 박테리아 같은 미생물이었다. 그런데 자신의 숙주가 바이러스를 피해 도망쳤다면 어떻게 될까?

다른 미생물로 대신할 수는 없다. 다른 미생물은 단백질 수용체, 즉 키가 맞지 않는다. 때문에 자신이 상대하는 미생물이 어느 날 갑자기 없어지면 그에 대응하는 바이러스도 생존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자신이 변종으로 바뀌거나 멸종되거나 둘 중 하나다.

만일 숙주였던 미생물이 돼지 속으로 피신했다고 하면, 미생물을 추격하기 위해 바이러스도 돼지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문제가 생긴다.

더 큰 문제는 돼지의 면역체계다. 원래의 목적은 미생물인데 돼지면역과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 변화는 바이러스 숙주가 바뀌는 결과를 초래한다.

미생물에 앞서 돼지면역과 부딪치게 되다 보니 미생물은 뒷전으로 물러났다. 돼지면역을 넘지 않으면 바이러스 생존이 어려워졌다, 돼지면역과의 전쟁은 오랜 시간 동안 지속되었다. 반면에 원래 숙주였던 미생물은 점점 잊혀 갔다.

끊임없는 돼지면역과의 싸움을 거치면서 바이러스 기술은 점차 발전해 갔다. 마침내 진화에 성공하고 돼지면역을 넘어서면서 전투 상대였던 돼지세포를 숙주로 삼게 되었다. 전리품인 셈이다. 이것이 바이러스 숙주 전이다.

그렇다고 미생물이 자유로워진 것은 아니다. 그들은 여전히 숙주로서 바이러스 RNA에 기록되어 있다. 바이러스를 직접 생산하는 산모 역할만 면했을 뿐이다.

바이러스가 숙주 안에서 면역회피에 필요한 방법이나 물질을 찾지 못하면 그곳이 바로 무덤이 된다. 번지수를 정확히 찾는 것이 바이러스에게는 매우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면역세포의 반찬거리가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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