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바쁜 세상, 익숙해진 세상,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돌아보다
내가 하늘을 헤아린 적이 있었나. "너무 바쁜 세상에 살아서 하늘이 어떻게 생기는지 모르는 것 같아요"라는 말을 한 시민단체 활동가가 내게 한 적이 있다. 그러고보니 나 조차도 주위를 둘러본 적이 언제인지 모르게 살아왔다. 언제였지, 하늘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떠올려봤다. 늘 좁디 좁은 건물 아래서 컴퓨터와 휴대폰으로 내 눈은 늘 향해 있었다. 귀는 이어폰을 꽂은 채 지내왔다. 그래서 하늘을 보러 나갔다.
우리 사회에 살면 영어를 유창하게 하지 못하는 것, 잘 나가는 기업의 ceo 이름을 모르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된다. 그런데 정작 내 주변에 핀 꽃들의 이름을 모르는 것은 어째 부끄러운 것이 되지 않는다. 무수한 꽃이 내 주변에 피고 진다. 조금만 여유를 가지면 동네 공원에도 작은 꽃들이 핀다. 그리고 땅을 깃들어 새들이 살고 있다.
작은 생명의 이름을 헤아리는 것은 내 주변에 잊고 있던 소중한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하늘이 어떻게 생겼는지 살피고, 내 주변 들꽃들을 보다보면 내가 잃었던 부분이 보이기 시작한다. 더 크게, 더 높이 뛰려고만 했던 삶을 돌아보면 감사하고 소중한 순간이 많다.
사랑은 작은 생명의 이름을 헤아리는 것과 같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내가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더 많이 가지려고 세상에서 애쓰고는 한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데 있어서 더 많이 가져서, 더 나은 곳에, 더 좋은 곳에 가려고만 한다. '그래도 현실이'라는 이름 아래서 그렇게 애를 쓰고, 지치도록 살아본다. 그러다보면 내가 더 높이 날면 잡힐 것 같았던 사람을 잊게 된다. 둘러보면, 그 사람보다 좋은 것은 없을 수 있다. 돌이켜보면, 내게 참 좋은 사람이다. 그 사람의 작은 부분을 헤아리다보면, 내가 잊었던 소중함이 보인다.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헤아려본다. 내가 잊던 들꽃의 이름을 되찾듯, 잊었던 하늘의 모양을 되찾듯이 헤아려본다. 내가 잊었던 행복을 찾듯. 서로에게 그런 사람이 되길, 바라본다. 오늘도 서로를 헤아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