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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저너리 May 04. 2018

[에세이 06] 쌈, 마이웨이

[제이영의 크루에세이 01]

부제:나는 왜 러닝맨이 되었나


"축하합니다. 21km 마라톤에 최종 참가자로 선정되었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친한 동생이 마라톤에 나가자고 나를 페이스북 댓글에 태그 했고, 나는 신청만 하고 '설마 되겠어' 하는 생각이었다. 신청자들 중 추첨을 통해 러너를 선발하는 방식이었는데, 당첨 가능성이 높아지려면 미션을 수행해야 했지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잊고 있을 무렵 문자가 왔다.


“축하합니다. 21km 마라톤에 최종 참가자로 선정되었습니다.”


 기쁘면서도 나는 매우 당황스러웠다. 마라톤을 뛰어 본 경험이 없는데 21km를 뛰어야 한다니!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나까지 뽑힐 정도면 신청자가 많이 없었나 보다. 그래도 이왕 된 거 해보자는 마음에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마라톤 당일로부터 남은 날을 역산해보니 20일이었다. 7km부터 시작해 매주 7km씩 늘려가면 21km는 할만하다고 느껴졌다. 그렇게 완벽한 계획만 세우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시간이 흘러갔다. 남은 시간은 단 2일! 나는 마음이 조급해져 동네 공원으로 나갔다. 1시간을 뛰다 걷다 하니 10km 기록이 나왔다. 이 속도로 뛴다면 3시간 안에 들어올 수 있겠네. 욕심내지 않고 걷지만 않으면 완주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일이 되었다.


 집결장소에는 레깅스만 매일 입고 다닐 것만 같은 건강한 여자들이 다 모인 것 같았다. ‘러닝 연습 좀 할걸’하는 후회와 함께 ‘3시간 안에 들어오지 못하면 어떡하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 경쟁하러 나온 것이 아니라며 나를 다독였다. 절대로 남하고 비교하지 말고 나만의 페이스로 뛰어서 완주하자가 내 목표였다.




교착상태 :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


 사실 마라톤을 뛰기 3주 전의 나는 교착 상태에 있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 말이다. 무언가 선택을 내려야 하는데 선택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정말 가고 싶었던 학교는 나에게 입학 허가를 주지 않았고, 부모님의 권유로 지원했던 대학원들만 붙었다. 결과를 받기 전에 이미 나는 떨어질 것 같은 직감을 느꼈다. 확신이었다. 원서 기간 동안 나는 내가 쓴 에세이에 자신이 없었다. 최선을 다하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나조차 내가 한 수많은 성취물 들 속에서 ‘나만의 색’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맹목적으로 스펙 쫓는 사람이 아니라고 자부했는데, 나도 그들 중 하나였다. 내가 해온 것들에 대해 나는 '나만의 이야기'를 끌어내지 못했다. 내가 만족스럽지 않은데, 그들은 나를 뽑아줄까?


 대답은 '아니오'였다.


 내가 성취해온 것들, 보내온 시간들이 한순간에 모두 부정되었다. 왜 이렇게밖에 못 살았냐며 나 자신을 다그쳤다. 세상에서 나만 낙오되고 뒤처진 기분이었다. 환멸과 자기혐오는 자동재생이었다. 그런 날들이 이어졌다. 




나만의 페이스로 꾸준하게


 체감상 30분은 뛴 것 같은데 나의 블루투스 이어폰은 뛴 지 8분이라고 알려준다. 고장 난 줄 알았지만 정상적으로 작동 중이었다. 한참을 더 뛰어 10km는 뛴 것 같은데 10km 표지는 보이질 않았다. 인생이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것과 같다고 하더니 이럴 때 하는 말 인가보다.

 

 경기 도중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지나쳐 갔다. 나는 아직 반환점을 돌지 못했는데 선두는 이미 반환점을 돌고 30분 거리나 앞서 돌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조급해하지 않았다. 좋은 기록은 내 목표가 아니었다.  내가 앞에 있는 사람들을 제치려고 속도를 내봤자 금세 지쳐 오히려 걷게 될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내 속도(페이스)는 저들의 속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멈추고 싶은 순간들이 다가올 때마다, 멈추고 싶은 자아와 이번 마라톤을 계기로 바뀌고 싶은 ‘나’가 계속 갈등했다. 뛰는 걸 멈추면 정말 내 인생이 망할 것 같아서 멈추지 못했다. 대신 '할 수 있다. 절대 멈추지 말자.'만 계속해서 되풀이했다. 


 결승점이 1km 지점 남았을 때,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내 이름을 불러주며 '할 수 있어요'를 외쳐줬다. 온 힘을 다해 앞서 뛰던 두 명보다 빨리 결승전에 들어왔다. 잠시 동안 일시적 성취감이 솟구쳤다. 멈추고 싶은 나와 싸워 완주했다는 것. 그 이후에는 끝냈다는 안도감이 성취감을 뒤덮었다. 


 결승점에 도작 한 순간 다시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은 마라톤이 아니다!


 사람들은 인생은 마라톤에 많이 비유한다. 그러나 인생은 결코 마라톤이 아니다. 마라톤은 결승점이 있지만 인생에 과연 결승점이 있을까? 우리가 어떤 목표를 달성하고 나면 또 다른 목표가 생기고, 끝이 없을 것이다. 또한 마라톤은 한 방향으로만 뛰도록 되어있는데 반해, 인생에서는 장애물이라는 변수가 있어서 돌아갈 수도 있고 내가 길을 만들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마라톤에는 시간 단축을 위해 트랙 위에서 경쟁을 해야 하는데 반해, 인생은 경쟁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시간 단축이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그 길을 포기 없이 가고 있는가'라고 생각한다. 


 어느 광고 카피가 생각난다. 결승점은 하나가 아니라 사람의 수만큼 있는 것이라고


  내 인생을 러닝머신에 빗대자면, 나의 지난 수년간은 러닝머신 위에서 12.0km/h로 뛰고 있었던 것 같다.(실제 나만의 속도는 8.5km/h이다). 내 속도가 아닌 사회의 속도에 맞추어 무한 경쟁 모드로 살아왔음을 시인한다. 나는 내가 잘못 살아왔음을 이제야 돌아본다.



뛰면서 배우다 - 자기만의 길

 

 요새 나의 취미는 러닝(뛴다의 뜻을 의미하며 발음상 배운다라는 뜻도 내포함)이다. 야외에서 뛰는 러닝의 장점은 수도 없이 많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일품은 그날그날 내가 뛸 수 있는 목표를 스스로 정해 나만의 속도로 나만의 방향으로 뛸 수 있다는 것이다. 러닝머신이 요구하는 속도에 맞춰 뛰기보다 내 호흡 내 상태를 고려하여 뛸 수 있다.


 삶의 환멸이나 권태를 느끼는 사람들 에게, 

 방향을 잃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인생에서 자기 주도권을 되찾고 싶은 사람들에게, 

 러닝을 추천해주고 싶다.


 인생이 네이버 지도처럼 최적화된 코스로만 간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돌아가도 좋다. 어디로 달려든 좋다. 자기만의 길이 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다시 시작하든 무슨 상관이냐. 

 그게 진짜 중요한 거야. 

 인생 쌈, 마이 웨이지!



*크루 에세이

요즈음 러닝에 미쳐있는 제이영입니다. 이번 연도 들어서 제일 잘한 일 두 가지를 뽑자면 비저너리 크루에 합류한 것, 그리고 러닝을 시작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내년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저는 자기만의 길을 찾는 이 여정을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절대 외면하지 마세요. 우리 모두를 똑같이 만드려고 하는 이 미친 세상과 싸우세요. 여러분도 자기만의 길을 찾길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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