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의 크루 에세이 06] 돌아가고 싶은 순간은 언제인가요?
일이 아무리 재밌어도 매주 월요일 아침에는 시간의 마법에 걸린다. 주말은 대체 왜 이렇게 빨리 지나가는 걸까!? 영원히 풀리지 않을 미스테리다. 주말 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무수한 시간의 결들을 지나쳐 온다. 어렸을 때부터의 행복했던 몇몇 순간들을 떠올려 보자면 그 갈래가 얼마나 무수했고, 또 당시에는 그 시간들이 무작정 영원할 것이라 생각했기에 얼마나 쉽게 흘려보냈는지 싶기까지 하다.
번개 쇼를 본다고 베란다에 의자를 갖다 두고 동생들과 도란도란 앉아 비바람 몰아치는 창밖을 감상하던 어린 시절이 그런 순간 중 하나였고, 재미있는 소설책들에 흠뻑 빠져 방과 후면 집보다 학교 도서관을 찾던 중학생 때가 그 중 하나였다. 재수를 한다고 학사에서 친구들과 보낸 시간이, 외국인 친구들에게 한국의 멋을 알려 준다고 익선동과 남산을 돌아다니던 날들이 있었다. 티벳 여행을 간다고 52시간의 열차 속에서 밤늦게까지 친구들과 게임을 하던 때, 처음 비저너리를 만들어 무엇이든 이룰 것 같던 때도 행복했다.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돌아가고 싶은 순간은 언제인가요?
하지만 과거를 좀처럼 돌아보지 않는 나같은 성격에게 이번 질문은 굉장히 의미심장했다. 위의 기억들도 주말 내내 생각해서 떠올린 추억들이다. 물론 즐거웠던 한 때를 기억하며 그리워하는 것도 필요하다고는 생각되지만,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는 일 중 하나가 과거라는 감상에 젖어있는 일이다. 언제나 더 나은 미래를 향해서 살려고 노력하고, 과거는 고칠 수 없으니 지금 이 순간부터 무언가 해내는 게 가장 합리적이라고 믿는 내게, 이 질문은 과연 얼마나 유의미한가? 한참을 생각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이거였다.
시간을 돌릴 수 있다고 하더라도 나는 돌아가지 않겠다.
결코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모든 선택들에 백만프로 만족해서 내린 답이 아니다. 나도 자잘자잘하게 한 후회들이 많았다. 처음 남자친구를 사귀어 본다고 간질간질 설렜던 고등학교 시절, 첫 연애가 끝난 후에는 내가 좀더 잘했더라면 어땠을까?라며 3년이나 한 친구를 잊지 못하기도 했었고, 신나게 상해로 교환학생을 다녀와서 평생 잊지 못할 추억거리들을 잔뜩 안고 돌아왔지만 마음 한 켠에는 중국 대신 미국으로, 그것도 캘리포니아로 갔더라면 어땠을까 상상하느라 밤을 뒤척이던 때도 있었다. 남들이 보기에 나는 언제나 빠르고 시원시원하게 결정을 내리는 친구, 거침 없이 다음 스텝을 선택하며 도전하는 친구 등등의 이미지였을 수 있지만 그 내면까지 언제나 평온한 바다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후회를 최대한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이유는 그런 후회의 순간들도 있기에 삶이 더 의미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후회 없이 완벽한 인생만을 산다면 하루하루가 얼마나 지루할까? 또 나는 어제보다 나은 내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때로는 사무치게 후회하기 때문에, 혹은 후회하게 될까봐 두려워하는 마음 때문에 더 철저히 준비하고,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이전보다 훌쩍 성장한 나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예측하지 못한 일들 때문에 삶은 때로 답답하기도 하지만, 그런 예측 불가능함 때문에 우리는 내일을 기대하며 살기도 한다. 따라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돌아가고 싶은 순간은 언제인가요?'라는 물음에라면 '시간을 되돌리고 싶지 않다'고 답하고 싶다. 대신 그렇게 후회하거나 자책할 시간이 있다면, 그 시간을 오늘의 나를 추스리고, 나에게 잘못한 누군가를 용서하며, 보다 즐거운 내일을 준비하는 데 사용하고 싶다.
누구나의 삶도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 상대성 이론을 발견한 아인슈타인도, 인류를 화성으로 이주시킨다는 엘론 머스크도 아직 시간을 거꾸로 흐르게 하는 방법만큼은 발견하지 못했다. 끝나긴 할까 싶은 오늘도 끝이 나고, 행복한 순간도, 괴로운 순간도 언젠가 끝이 난다. 무엇보다 나에게 주어진 오늘이라는 선물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다. 그러니 이번 한 주도 함께 현명한 선택을 해보았으면 좋겠다. 돌아오지 않을 과거에 머물러있을 것인지, 현재를 만끽하며 나에게 다가올 미래를 만들어갈 것인지.
비저너리의 크루 에세이 시즌 2부터는 비저너리 달력 뒤에 있는 그 달의 질문 중 하나를 골라한 주에 한 번, 월요일 아침, 크루들의 진솔한 답변으로 채워 나갑니다. :) 이 글을 보시는 여러분들도 바쁜 일상 속 생각에 잠기실 수 있도록 최근 한 달(4개)의 질문들을 공유합니다. 그리고 이번 한 주는 다음 질문 중 하나를 깊이 생각해보면서 어딘가에 답해 보는 시간을 갖는 건 어떨까요?
- 지난 크루 에세이 -
[시간]혀 가는
•매일 오롯이 나를 위해 사용하는 시간이 있나요?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시간은 언제인가요?
•누구와 함께 시간을 보낼 때 시간이 가장 짧게 느껴지나요?
[에세이 57] 고양이와 보내는 시간은 낭비가 아니다.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돌아가고 싶은 순간은 언제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