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승의 크루에세이 06 : 하루 중 가장 길게 느껴지는 시간은?]
(직장인들은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요즘 나에게 하루 중 가장 길게 느껴지는 시간은 출퇴근 시간이다.
매일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는데 회사까지 70분 정도 걸린다.
(같은 서울 안에서 이동하는 건데)매일매일 2시간이상을 지하철에서 보내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이 시간을 그냥 보내게 되면 상당히 길게 느껴진다.
그나마 의자에 앉아서 가는 날은 좀 더 짧게 느껴지지만, 서서 가는 날은 '이 쯤 되면 되겠지'했지만 아직 더 가야해 한숨을 살며시 내뱉기도 한다.
특히 보통 지하철에서 무언가를 보는 편인데, 서서 보면 자세가 불안정해서 집중해서 보기도 어려워서 더욱 불편하다.
그래서 매일매일 어떻게든 앉아서 가보려고 노력하며 눈치게임을 한다.
그래도 (나만의) 이 게임을 이기려고 노력하다보니, 시간도 약간 더 잘 가는 것 같고 노하우도 조금 생겨 매일매일 흥미롭게 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오늘은 지하철에서의 이런 나의 생활기를 공유해보고자 한다.
나는 3호선을 타고 2호선 OR 9호선으로 환승하는 편인데, 환승 이후에는 앉는게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앉으려고 노력하는 건 3호선에서만 한정한다. 물론 3호선을 타는 시간이 4~50분이라 이것도 충분히 길다.
가장 먼저 하는 것은 시간대를 고려하는 것이다.
시간대가 달라지면 내가 지하철을 타는 마음가짐도 달라진다.
나는 7시 반, 8시반, 9시, 11시 등 4개의 시간대에서 시도를 해봤는데, (사실 어느 시간대에도 붐비긴하나 경험상 9시 즈음이 가장 덜 붐빈다.
즉, 그 말은 9시 시간대는 '타면 앉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가장 커지는 시간대라는 것이다.
기대감이 커지면 노력도 더 많이 하게 된다.
그런 날 못 앉게 되면 나름의 좌절감과 실망감이 쌓여 출근길이 즐겁지가 않다.
그러나 다른 시간대, 예컨대 8시 반 시간대는 아예 기대를 거의 안한다. 이 때는 앉으면 정말 좋은 것이고, 서서 가면 본전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날 앉을 수 있는 황금 같은 기회가 주워지면 출근길이 정말 즐거워진다.
(이런게 소확행일지도 모르겠다.)
열차를 타면 가장 먼저 내가 타는 칸에 한번 스캔을 쫙 한다.
시간대에 따라 앉아 있는 사람들만 있는 날도 있고, 그 앞에 서서 가는 사람들도 있어 꽉 차는 날이 있다.
앉아 있는 사람 중 깊은 잠에 빠져 있거나, 오로지 바닥만 본다면 그분 앞은 피한다.
그 사람들의 나이대와 성별을 관찰하고 조만간 내릴만한 사람 유형 앞에서 대기를 한다.
(이 유형은 밑에서 이야기 해보겠다.)
참고로 보통 양 사이드 석(임산부석 제외)은 오래가는 사람들이 앉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나 같이 종점 근처에서 타지않는 사람들은 가운데쪽을 주로 노리는 것이 좋다.
(종종 사이드석에 앉기도 했지만 가운데 석 타율이 제일 좋았다.)
보통 곧 내리는 사람들은 주변을 두리번거리거나, 스마트폰을 손에서 내려놓고 귀에서 이어폰을 빼는 액션을 취한다.
그리고 내릴 것처럼 엉덩이를 들썩이는 분들이 있는데 이 분들 중 80%는 페이크다..!
3호선에서는 대략 사람들이 많이 내리는 지점들이 몇개 있는데, 그 지점들 대부분이 환승 구간이다.
그래서 그런 지점들을 파악해서 거기 내릴만한 사람들을 캐치하는 것이 중요하다.
[교복을 입은 사람 앞에 서 있을 경우]
이 사람 앞에서는 '독립문역'이 기회이다.
독립문역 근처에는 고등학교가 2~3개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역에서 내릴 확률이 높고, 내가 이 앞에 설 때는 (아직까지) 100% 여기서 내렸다.
물론 (내 경험 상)출근길에 교복을 입은 사람들이 많지 않고, 그런 사람 앞에 설 수 있는 건 2주에 1번 있을까 말까했기 때문에 자주 있는 일은 아니어서 좋은 케이스는 아니였다.
[어르신 같이 보이는 사람 앞에 서있을 경우]
이 사람 앞에서는 '종로 3가역'이 기회이다.
종로 3가 근처에는 탑골 공원이 있는데, 그 곳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이 역에서 할머니 할아버지 분들이 많이 내리신다.
그렇기 때문에 지하철을 탈 때 이 분들이 계시면 이 분들 앞에 서 있어도 좋다. 꽤 높은 확률로 자리를 얻었다.
[직장인 같이 보이는 사람 앞에 서있을 경우]
이 사람 앞에서는 '을지로 3가역'이 기회이다.
만약 종로3가 역에서 앞에 앉은 사람이 내리지않았지만, 그 사람이 '직장인 여자' 같이 보인다 싶으면 계속 눈치를 살펴봐라.
을지로에는 직장이 많고, 보통 그쪽에 있는 직장들은 여성분들이 많이 다니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충분히 앉을 기회가 생길 수 있다.
[대학생 같이 보이는 사람 앞에 서있을 경우]
이 사람 앞에서는 '충무로 & 동대입구역'이 기회이다.
대학교가 근처에 있기 때문에 대학생들이 오전에 여기서 내릴 가능성이 크다.
물론 대개 직장인 출근 시간과 등교 시간이 맞진 않지만 본인이 9시 이후에 출근 하는 사람이면 노려봄직하다.
[랜덤하게 서 있는 경우]
이럴때는 '압구정역'이 기회이다.
압구정도 회사가 많기 때문에 여기서도 정말 많이 내린다.
그렇지만 이 쯤되면 거의 다 왔기 때문에, 그전까지 자리를 앉지 못한 경우 내적갈등을 하게 된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가자 vs 무슨 소리야. 앉을 수 있을때 앉아야지)
이렇게 저렇게 자리에 앉게 되었다면 이제 선택지를 놓고 고민한다.
책을 읽을 것인가 vs 유튜브를 볼 것인가?
전자의 경우 (내 경험 상 몰입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서) 지하철 탑승 후 10~20분 정도 안에 앉았을 때 가능하다.
4분의 3 지점이 지나서 앉았을 때 책을 읽다가, 몰입한 나머지 환승할 역을 지나쳤던 적이 몇번 있었어서 그 뒤 그정도 지점에서는 책 읽기를 시작하지 않는다.
대신 그럴때는 유튜브를 보게 되는데, 유튜브는 짧은 클립들이 대부분이고 훑어 봐도 되는 것들이 많아서 지하철역을 놓칠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요새는 투자, 게임 시청, 웃긴 영상들을 주로 보는데 어떤 영상을 보느냐는 그날 나의 컨디션에 따라 다르다.
활기찬 날에는 하루를 생산적으로 보낸다는 느낌을 받고싶어서 투자, 뉴스 같은 영상을 보고,
약간 쳐지거나 졸리는 날에는 웃긴 영상들을 주로 보는 것 같다.
이렇게 자리 탐색을 하다가 책 혹은 영상을 보다보면 어느새 도착을 하곤 한다.
하루중 가장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지만, 사실 그 시간을 빼면 스케쥴 상 책이나 영상을 볼 시간이 거의 없기 때문에 나에겐 소중한 시간이다.
그래서 이 시간을 어떻게 알차게 보낼지 생각하는것도 요즘 나의 재밌는 일상 중의 하나이다.
지금까지 요새 출근 시간을 보내는 생활기를 공유해보았다.
출퇴근 시간이 가장 길게 느껴진다면, 알차게 보낼 수 있는 방법들을 고민해봐도 좋을 것 같다.
(자신만의 경험이 있으면 댓글로 공유해줘도 좋을 것 같습니다 �)
비저너리의 크루 에세이 시즌 2부터는 비저너리 달력 뒤에 있는 그 달의 질문 중 하나를 골라한 주에 한 번, 월요일 아침, 크루들의 진솔한 답변으로 채워 나갑니다. :) 이 글을 보시는 여러분들도 바쁜 일상 속 생각에 잠기실 수 있도록 최근 한 달(4개)의 질문들을 공유합니다. 그리고 이번 한 주는 다음 질문 중 하나를 깊이 생각해보면서 어딘가에 답해 보는 시간을 갖는 건 어떨까요?
- 지난 크루 에세이 -
[시간]혀 가는
•매일 오롯이 나를 위해 사용하는 시간이 있나요?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시간은 언제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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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고싶은 순간은 언제인가요?
하루 중 가장 길게 느껴지는 시간은 언제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