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니의 크루에세이 07] 우리에겐 휴식이 왜 필요할까요?
여름이 다가오던 무렵, 나를 잘 아는 언니가 말했다.
대충 지내보자는 그 말이 너무나 큰 위로가 되는 그 계절, 여름이었다.
여름이 다가올 때 즈음이면 이번엔 또 어찌 버텨야 하나 긴장하게 된다. 이상하게 여름만 오면 몸이 쉽게 지치는 것도 물론이거니와, 꼭 한 번씩 슬럼프가 찾아왔다. 아무것도 안 하는 데도 더 격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으면서도 그렇게 아무것도 안 하는 내가 우울한 그런 상태. 사실 내가 매 여름마다 지지고 볶고 힘들어한다는 걸 인지하게 된 건 겨우 작년이었다. 이런 나의 패턴을 발견한 이상 이 계절을 덜 힘들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어 졌다. 그래서 올여름의 목표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무탈히 지나가는 계절'이었다.
무탈하게 여름을 보내는 방법은 특별한 게 없었다. 그저 무언가를 꼭 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힘을 빼는 일이었다. 생각이 많은 것에 비해 행동으로 옮기는 일에 빠릿빠릿하지 못한 나는 여름엔 유독 더 속도가 더뎌지고 쉽게 지친다. 그에 비해 생각 가지들은 쳐내질 않으니 머리와 행동의 간극이 더 커져 그렇게 심적으로도 힘들어했던 것 같다. 그렇게 애써 뭔가를 하려고 하면서 힘들어할 바에 '아싸리 아무것도 하지 말아 보자! 부디 나만 무사해다오!'라는 마음이 간절해졌나 보다.
책 덜 읽어도? 괜찮아. 글도 안 쓰는 건? 그래도 괜찮아. 운동도? 음... 그래 하고 있었던 걸 멈출 필요는 없지만 굳이 여름에 시작하지 않아도 돼! 공부는 하고 싶어 질 때 하고. 아무 생각 없이 인스타 하면서 시간 보내도 되고 그러다 뭔갈 하고 싶어 지면 하고, 그러다가 또 하기 싫어지면 그만두고. "괜찮아, 그래도 돼."라고 스스로에게 많이 말해주려 했다. 그렇지 않았을 때의 내 모습은 어땠는지 이미 몇 년 동안 힘들어봤기에 마음에서 우러나와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래서 진짜 블로그에 조금씩 쓰던 글도 애를 써서 짬을 내어 쓰려고 하지 않았다. 마침 투입되었던 프로젝트도 한가해졌고, 유학 중인 동생이 방학을 맞아 들어와 동생이랑 매일 소소하게 저녁 먹고 떠들며 시간 보냈다. 가족과 오래간만에 일주일간 시원한 곳으로 여행도 다녀오며 근 4-5년간 가장 편안한 여름을 났다. 물론 정말 감사하게도 올여름이 유독 덜 덥긴 했다. 정말 싫어하는 여름 치고 감사하다는 말을 많이 꺼낼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이제야 가장 힘들어하는 계절을 '버티지' 않고 되려 '쉬어 가는' 계절로 삼을 수 있는 방향을 찾은 것 같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를 마음을 다해 긍정해주고 확실하게 서포트했을 때야 비로소.
처음으로 휴식다운 여름을 보낸 후, 여행에서 돌아온 첫날부터 새로운 챗봇 프로젝트에 투입되었다. 사실 그 전까지도 챗봇은 나와 잘 맞지 않는 것 같다며 이 업계를 떠야 하나, 하면서도 또 어느 길을 가야 하는 건지 매일이 고민이었다. 그리고 기대하거나 걱정할 여지도 없이 새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금은 웬일인지 챗봇을 만지며 조금 신이 난다. 여전히 처음인 부분이 많아 걱정하면서도 업무를 진행하며 스스로 'YES'라고 하는 긍정의 대답이 늘어났다. 언젠간 해보면 재밌겠다 싶었던 챗봇이기도 했으나 비단 그것 때문 일리가 없었다.
머지않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충전된 거구나." 어쩌면 내가 이 업계와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도 행동으로 옮기지 않고 지지부진했던 건, 결국 끝까지 부딪혀본 적이 없기에 '혹시나, 어쩌면' 하는 미련이 나를 붙잡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흘러가는 대로 흘려보냈던 나의 쉬어가는 계절이 없었다면 아마 나는 이 게임의 끝판왕에 한 번 도전해보지 못한 채로 엔드 버튼을 누르지 않았을까. 아마 그랬을 것이다.
고새 뭘 더 배운 것도, 특별한 계기가 있던 아닌데 업무에 임하는 마음가짐과 달라진 걸 보면, 나는 그 여름 새에 엄청난 포션을 먹은 게 분명하다. 여전히 나에게 맞는 길인지 아닌지 모르겠으나 지금은 상관없을 것 같다. 기회가 닿았을 때, 그리고 나의 몸과 마음의 컨디션이 따라주는 지금! 은 달릴 때지 판단을 내릴 때가 아니다. 그냥 멈췄다면 언젠가는 한 번 돌아봤을 것 같기에 그저 다시 달려볼 수 있는 지금이 감사하다.
2019년 여름, 처음으로 나와 싱크로율이 맞는 휴식을 보내보니 조금은 알겠다. 휴식의 방법은 개인마다 다 다르겠지만, 진짜 쉬고 난 다음에는 저절로 달릴 수 있게 된다는 것.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스스로에게 'YES'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는 것. 어찌 보면 뻔하디 뻔한 말이지만 들어서 아는 게 아니라 경험으로 알게 되기까지 난 참 오래 걸렸다. 쉬는 계절이 불안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조금 덜 불안해하는 방법을 배웠다. 조금 더 편안하게, 달릴 준비를 하는 방법을 배운 계절이었다. 그리고 이젠 거북이 달리는 계절이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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