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오래 살아 본 사람들은 말한다.
살아보니, 삶에 대한 '딱' 정해진 매뉴얼은 없다고.
정말 맞는 말이다.
인생은, ‘좋은 삶’, ‘나쁜 삶’이라는 정의보다 ‘맞는 삶’이라는 단어를 찾아가는 여정 같기도 하다.
실로, 자신이 아무리 사랑하는 일을 시작했더라도 어느 순간 그 사랑의 정도가 줄어들 수도 있고 자신이 생각지도 못한 일을 시작했더라도 어느 순간 내 운명의 일처럼 느껴질 만큼 사랑에 빠질 때도 있다.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인생엔 '좋은 결과 값'에 대해선 정의내리긴 어려워도
내게 '맞는 결과 값'은 분명히 정의 내릴 수 있는 것 같다.
그 이유는 각자가 내린 값이 모두 고유한 정답일 테니까.
나는 내가 예쁜 옷을 입을 때면 남의 눈이 호강한다고 생각한다.
쇼핑몰 모델에 피팅된 옷이나 날씬한 연예인, 패셔니스타들이 자주 입는 옷들을 내가 따라 입었을 때다.
물론 남이 예쁘다고 칭찬해 주기에 나의 기분은 한껏 올라간다.
자존감과 자만심을 동시에 올려주는 그 기분은 생각보다 좋다.
하지만 높은 하이힐에 발뒤꿈치가 까져 아프고 꽉 끼는 옷 사이로 살들이 보일까 노심초사 밥조차 양껏 먹지 못할 때가 종종 생긴다. 그럴 때마다 누구 좋으라고 이렇게 입나 싶은 마음이 몰려온다.
만족감의 정도로 비교했을 때, 오히려 나의 기분을 편안하게 하고 하루 종일 생활하기에 적합한 느낌이 들게 하는 것은 나의 체형과 취향에 꼭 맞는 옷을 입었을 때다. 남은 평범하게 바라봐 줄지라도 내겐 제일 익숙하고 편안한 마음이 들게 하는 옷. 내가 가진 몸 체형에서 조금은 숨 쉴 공간이 있고 나의 눈으로 바라보았을 때 괜찮다고 생각되는 그런 옷들이다.
내가 스물 살이 되고 나서 지금까지 실천해 온 제일 잘한 결심이 하나 있다.
‘나의 삶을 나의 취향대로, 내게 맞는 방법대로 가꾸어 나간 것’
‘내게 딱 맞는 편한 옷을 찾고 그 옷을 입고 살아보려 한 것’
나는 종종 삶의 만족도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면, ‘꽤 높이 만족한다.’라고 답한다.
이 답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현재 이룬 일과 인생의 밭이 나의 성향과 선호도를 오롯이 반영한 것이고 이 기준은 '남'이 아닌 오롯이 '나'에게 맞춰서 나온 결과 값이자 내게 가장 편한 값이기 때문이다.
유달리 삶에 대해서, 삶의 끝에 대해서 생각과 고민이 많았던 나.
여전히 남은 삶 속에 다가올 여러 여정들에 대한 고민이 있겠지만
나는 내가 얻은 삶의 지혜로 내 스스로에게 그리고 나의 사랑하고 소중한 사람들에게 말한다.
“거 참~ 우리 예쁜 옷 말고 각자 ‘맞는 옷’ 입고 삽시다!”
사진: Unsplash의Heather F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