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 신체사이즈부터 재자!

부제 : 데이터가 없어서 그래.

by 글둥지


10대엔 인생이 쉬웠다.


소위 '매뉴얼' = '해야 되는 일' 이 명확했으니까.

'공부.' (여기서 연애, 가정사 등의 항목들은 우선 제외하고 보자.)


학교든 학원이든 수없이 밀려들어오는 지식들을 습득하고 오로지 시험지에서 최대한 많은 동그라미(O)를 받기 위해 노력하는 데만 집중하면 되었다. 내가 속한 집단의 사람들(=학교 안)이 이미 정해져 있었고 내가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도 급식 메뉴가 말해주니 나는 이미 모든 것이 차려진 밥상(=삶의 터전)에서 오롯이 주어진 일만 잘 처리하면 되었다.


즉, '별 생각 없이' 열심히 살았다.


수능을 치루고 대학에 왔다.

딱히 내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주변에서 취업에 도움이 될 거라고 추천한 경영대 경제학부에 입학했다.

신입생 숫자부터가 타과에 비해 많았다. 선배들은 신입생들을 다섯 개의 소그룹으로 묶어 안내하면서 어떤 수업을 들어야 좋은지, 어떤 동아리가 도움이 되는지, 어떤 교수님, 선배들과 친하게 지내면 좋은지를 열정을 다해 설명해 주었다.


경제학부 전공은 진로가 유망한 편이었다. 선배들은 금융사, 세무법인, 회계법인, 기업의 경영지원팀 등 굵직한 직업군들로 취업을 하는 듯 했다. 후배들도 이에 질세라 선배들이 추천한 교과목과 경제금융동아리 또는 증권동아리 활동을 거의 필수로 가입했다.


하지만 나는 경제 수업을 들으면 들을수록 이곳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제 관련 동아리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전공수업은 너무 이해하기 어려웠고 수식과 그래프가 난무한 경제 서적들은 쳐다보기도 싫어졌다. 경제학 동기들끼리 하는 모임도 재미가 없었고 학교 선배들이 함께 해주는 소그룹 활동에도 도무지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성인이 되어 대학교에 입학하니 내가 어떤 수업을 들을지 내가 선택해야 했고 수업 이외의 시간들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도 내가 선택해야 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을 만날지, 어떤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할지도 오롯이 '나의 선택'이었다. 그냥 타인의 추천으로 선택했던 전공이 맞지 않자 다른 선택지를 택한 친구들과 비교가 되기 시작했다.

‘나도 다른 걸 선택했다면 더 나았을까?’

갑자기 '나'라는 이 한 단어가 마치 돋보기를 가져다 댄 것 마냥 큰 글자로 보이기 시작했다.


“어떡하지?”

“하기 싫다...”

“근데, 그럼 뭐하지?”


도서관에서 전공시험공부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나의 대학생활이 고등학생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모습에 크게 현타가 왔다.

'왜 내 인생은 이렇게 재미가 없지?'라는 생각이 처음으로 세게 내 머리를 관통했다.


이렇게 재미없게 4년을 보내면, 그 다음은 뭘까? 라는 생각에 끝없는 무력감과 지루함이 몰려왔다. 내 하루는 채색이 되지 않은 흑백의 그림 한 장처럼 눈길을 사로잡는 색감을 전혀 지니지 못했다.


왜냐하면 나는 단 한 번도 내 밑그림에
스스로의 붓질로 색칠을 해 볼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참 매력없다."


나는 이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으로 ‘나’에 대해 진지하게 묻기 시작했다.


'나는 어떤 수업을 듣고 싶지?'

'나는 어떤 활동을 좋아하지? 해보고 싶은 동아리나 대외활동은 뭐지?'

'나는 어떤 사람들과 잘 맞지? 내가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은 어떤 부류지?'

'나의 취미는 뭐지? 내 성격은 어떻지? 내가 좋아하는 이상형은 누구지?'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은 ‘잘 모르겠다.’ 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에 대해 잘 모르는 근본적인 이유는 나에 대한 '데이터가 없어서 그랬다.'

내게 맞는 옷을 입기 위해서 내가 가진 신체 사이즈와 내 몸의 형태, 남들과 다른 특징부터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나의 키와 덩치(넓이), 신체적 특징들에 대해선 전혀 모른 채로 남들이 마네킹에 이쁘다고 피팅해 놓은 옷만을 가져다 꾸역꾸역 입으려고 했던 것이었다.


데이터가 없어서 그래.


그래서 나는 나에 대한 다양한 데이터들을 쌓는 것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다양한 경험을 직접 해보는 것!

다양한 사람들을 직접 만나보는 것!

내게 맞는 옷을 찾기 위해 '나'에 대해 아는 것이 먼저였다.




사진: Unsplashpina mess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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