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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꼴라쥬 Aug 21. 2020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잘.)

살다 보면 

생각지 못한 외부적 이슈들로 

멘탈이 흔들리다 못해 파샥대며 떨어져 나가는 

그런 순간들이 있더군.



올해가 

유독 그런 듯한데 말이야.



자발적으로 이끌어가는 

능동형 생이 아니라,  

그냥저냥 현실에 타협해가며 

그저 

버텨내는 생이 이어지고 있다랄까.




시냇가에 첨벙 뛰어들어 

있는 힘껏 물장구를 치고,

물장난을 하다 목이 말라 오면

그대로 계곡물을 두 손 가득 받아 

꿀꺽꿀꺽 들이켜고,


시냇물에 담가둔 수박과 참외를 쪼개어

커다랗게 입 벌리고 아삭대며 웃던,



시리도록 파랗고 투명한 가을 하늘 아래서 

삐질삐질 땀방울을 흘려대며 운동회를 준비하고,

뜨거운 열기와 햇빛에 지쳐 또다시 목이 타오면 

그대로 수돗가로 달려가 꼭지에 입을 가져다 대던,



선풍기와 부채에 기대어  더위를 버텨내고 

그래도 안되겠다 싶을 땐

과감하게 야외취침을 시전하던 그 시절,



매섭고 아린 추위에

눈 내리는 겨울을 그리도 혐오하던 

손발이 유난히 차던 그때의 나.



그 시절의 나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일상을 

지금의 나는 살아가고 있더군.




공장식 닭장처럼 

혹은 테트리스처럼 끼워 맞춘 

콘크리트 더미의 한 부분을 힘들게 꿰어차고

여름엔 시원한 에어컨의 그늘 아래서 

겨울엔 따스한 난방의 여운 속에서 

비루한 몸뚱이의 신체적 행복은 

이제 어느 정도 챙겼지만,



갈수록

어딘가 모를 감성적 행복이 

서서히 사라져가는 

그런 상실의 느낌이라고나 할까.




마음까지 투영해 주던 

늘 활짝 열린 모습의 그 시절 하늘은

언제 어느 때건 

맑고 투명하게  얼굴을 마주했는데,



지금의 하늘은 무언가에 노한 듯

역정을 낼 때가 아니면 

좀처럼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언제 어느 때건 갈증을 말려주던 

콸콸 쏟아지던 수도꼭지의 물은

더 이상 그대로 입을 가져가기 힘든, 


용도에 따라 구분되어지는

조금은 까다로운 존재가 되어버렸으니,



게다가 

비약적 발전을 앞세워 사라져간 

그 시절의 초목들과 따사로운 풍경들.



늘 인재라 결론지어지는

잦은 재해들. 



그리고. 

듣도보도 못했던 위협적인 전염병까지. 




20세기형 인간인 나에겐

나날이 급변하는 21세기의 환경이 

갈수록 너무도 낯설고 두려운 모습이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리디여린 멘탈을 단디 부여잡고 

21세기도 

부디 잘 살아내야 할 텐데 말이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22세기도...



어떻게 잘, 되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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