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꼴라쥬 Jun 05. 2020

능동형 칩거주의자를 아십니까


능동형 칩거주의자. 요즘처럼 전염병이 창궐하는 시점에 자신의 능력치를 최대로 발휘하는 종족을 일컫는 말입니다. 또한, 별도의 권고나 강요 없이도 스스로 강력한 자가격리를 자처하는 무서운 실행력을 가진 인간을 일컫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들은 불필요하게 지나친 고립을 추구하며, 가급적 현관문 밖으로는 발가락 하나, 각질 한 톨이라도 내어놓지 않으려는 굳건한 의지를 지닌 자발적 아웃사이더를 뜻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네. 물론 그냥 제가 지어낸 말입니다. (낚인 분이 계시다면 진심으로 죄송합니다만..,)





2020년 1월 말,

구정을 전후로 코로나의 거대한 그림자가 점점 주변을 잠식해 들어오기 시작했지요. 가뜩이나 "이불 밖은 위험해"라며 시시때때로 혹은 지겹도록 컴백홈을 노래하던 제가 드디어 대놓고 정체성을 드러내기 시작한 시점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미명 하에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바깥활동을 제외하고는, 거의 집안에서 활동하기를 좋아하는 저는 그간 차마 스스로를 드러낼 수가 없었습니다. 칩거형 패턴으로만 머무르기엔 제 일상과 환경이 좀처럼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그런 제게 중국에서 발생한 코로나 소식은 은둔형 칩거주의자를 당당하게 세상에 드러낼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도래했음을 알려주는 신호탄이 되어 주었습니다.




"저 눈이 잘 안 떠져요"

"왜? 어디 한번 보자."


한동안 맑고 깨끗함을 뽐내던 바깥공기가 조금씩 스산한 기운을 뿜어내더니, 계절감을 알리는 송화가루와 함께 반갑지 않은 손님, 미세먼지를 데리고 왔습니다. 그와 함께 예민한 작은 녀석의 결막염도 다시 돌아왔습니다. (굳이 너희까지 컴백홈스러운 귀가 본능을 가질 필요는 없지 말입니다.)


구정 이후 '외출은 독이요, 칩거는 약이다'를 가훈처럼 되새기며, 가급적 외출을 자제하던 집안에는 폭풍 속 고요의 무서운 정막감이 흐르기 시작합니다.


'눈 안에 몰래 자리 잡았던 작은 뾰루지가 함께 터졌는지 아이의 눈은 빨갛게 충혈되었다. 이전에 받아둔 안약들은 이미 개봉한 지 한 달도 더 지났기에 사용하기엔 무리다. 그러나, 안과를 가려면 일단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할 방도는 없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가급적 타인과의 눈 맞춤을 최소화할 수 있는 루트를 찾아야만 하는데..'


아이와 함께 이동해야 하기에 일단 주차가 편한 곳을 선택해야 하고, 동일한 건물 내에 여러 병원들이 혼재되어있는 곳은 가급적 피하고자 고심해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택을 벗어나 있는 시간이 가장 짧을 법한 곳이 어디일까 골똘히 생각해봅니다. 그러나 선택지가 그리 많지 않음을 알고 칩거주의자는 이내 낙심합니다.


그렇지만, 나의 문제가 아니라 아이의 건강과 직결되는 부분이라 마냥 방치할 수만은 없습니다. 저는 이내 마음을 다잡고 그나마 집과 가장 가까이에 위치해 있는 안과로 목적지를 설정해 봅니다. 해당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하나이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안과를 제외하고서는 이용하는 이가 거의 없어 보인다는 것이 선택의 이유입니다. 다만, 같은 건물에 내과가 함께 입점해 있다는 점이 살짝 걸리지만, 매번 안과를 방문할 때마다 내과를 방문하는 이를 본 기억이 없습니다. 찾는 이가 거의 희박해서 안쓰러운,  또한 그 점에서 안도감을 안겨주는 고마운 내과를 생각하며 나는 자동차의 시동을 켭니다.




"이따가 볼까?"

"아. 어쩌지. 우리 동네 오늘 확진자 나왔거든."

"그래? 어쩌냐. 그럼 다음에 보자."


구구절절한 설명 없이도 한마디면 상황이 종료됩니다. 예전 같으면 그럴듯한 핑계를 찾기도 어렵고, 또 그런 핑계를 골똘히 연구하는 스스로가 한심해서 꾸역꾸역 신발을 걸쳐 신고 현관문을 열기도 했지요. 그러고 보니 생사와 연계된 꼭 필요한 업무나 쓰레기 배출을 위한 외출이 아니고서는 최근 통 집 밖을 나간 적이 없군요. 대부분의 생필품은 마트에서 쓰윽하니 가져다주거나 팡하며 문 앞까지 순식간에 날아오기도 하니 말입니다. 필요한 은행업무나 서류들도 대부분 인터넷상으로 처리가 가능하니 굳이 외출의 필요성이 사라진 탓이기도 합니다.


또한 제대로 된 칩거를 시작하면서부터 다소 위태롭던 가정경제의 빨간불도 점점 옅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전보다 외출이 줄었으니 그로 인한 유흥비나 외식비가 많이 줄어들었고, 매번 무겁게 어깨를 짓누르던 학원비의 압박이 사라지니 조금은 숨통이 트입니다.




칩거 주의자라고 해서 사회와 완전히 분리되어 그 오래전 원시인과 같은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은 디지털 노마드의 시대, 시대의 흐름에 맞게 상당히 스마트하면서도 제멋대로의 칩거생활이 가능한 좋은 세상입니다. 설거지하는 틈틈이 뉴스를 보며 세상의 흐름을 인식하고, 주방 테이블에 상시 구비되어 있는 노트북으로는 업무를 봅니다. 이따금 널따란 거실 창을 갤러리 삼아 힐링을 하고 틈틈이 패드와 사과폰으로 세상과 소통을 시도하기도 합니다.


이쯤 되니 어쩌면 세상의 가장 바깥이자 안쪽, 자발적 아싸이자 인싸의 삶을 선택한 이들을 모두 일컬어 '능동형 칩거주의자'라고 불러야 할런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이전 01화 뇌를 닫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