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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주얼페이지 Mar 03. 2022

1920년대 하와이에서 언니들의 멋짐이 폭발한다

<알로하, 나의 엄마들> 읽기


이금이 작가가 쓴 소설 <알로하, 나의 엄마들>은 한번 읽기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는 마성의 책이다. 아이들 밥 먹일 때, 티비 볼 때 곁에 두고 넘기고, 틈날 때마다 읽어서 이틀 만에 다 읽었다.

1900년대 초반 일제 강점기 때 하와이에 사진신부로 간 주인공 3명, 버들과 송화, 홍주가 주인공이다.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오히려 거짓 정보에 현혹되어) 온 머나먼 나라에서 그녀들이 시스터스 런드리로 살아가기까지 그리고 그 이후의 후일담까지 들려준다.


일제강점기가 배경에 사진신부라는 마음 불편한 소재가 등장하는 이야기라서 눈물이 쏙 빠지거나, 분노가 활활 타오르지 않을까 걱정했었다. 하지만 웬걸, 속이 아주 편안했다. 그 이유는 세 가지다. 등장인물 사이에 오래가는 갈등이 없고, 복수극이 없고, 내적 갈등을 일으키는 부분이 없다. 다만 버들의 남편인 태완이 독립운동을 하느라 생계를 뒷전으로 했을 때와 여성 인물들 간에 지지하는 지도자가 다르다는 이유로 따돌림이 생겼을 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는 시간이 필요하긴 했다.


지지하는 독립운동 지도자가 다른 까닭에 이웃 간에 날이 설 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의 고민에는 홍주가 답이었다. 태완이 따르는 지도자가 홍주가 지지하는 지도자와 다르다는 것을 버들이 털어놓으며 속상해할 때, 홍주와 줄리 엄마는 편 가르지도 않고, 판단하지도 않고 위로했다.


“울지 말거라. 내가 잘몬했다. 우리 사이에 이런 일로 얼굴 붉히는 기 될 말이가. 성님, 버들이캉 지는 친동기간이나 마찬가집니다. 버들이캉 편 가르기 싫습니더.”

(…)

“동상, 그만 울그레이. 내사 마 시동생 같은 태완 아재 걱정돼가 한 소리다. 홍주 말대로 우리가 우떤 사이고. 우리끼리는 편 가르지 말고 살자.”

줄리 엄마도 버들의 손을 잡고 말했다. 버들은 비로소 마음이 진정되고 두 사람에게 느꼈던 서운함도 사라졌다.




이들은 “서로에게 기댄 채 어우러져 자라는 반얀트리의 가지처럼” 갈등과 고난이 첩첩이 쌓인 어려운 시절을 함께 헤쳐 나갔다. 작가의 말대로 “여자들은 장에 가는 것조차 어려웠던 때” 바다를 건너 하와이까지 가게 하고, 그곳에서 온갖 어려움을 헤치고 나아갈 수 있게 해 준 힘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버들에게서는 충성을, 송화에게서는 보살핌, 홍주는 자유라는 힘을 찾는다.


버들은 가족과 자기 자신에게 충성을 다한다. 가족과 자신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 자신에게 충성을 다하기 위해서 하와이까지 왔다. 끝없이 인내하며 한결같이 자신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간다. 그런 버들이 자신의 속내를 태완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털어놓은 순간이 나오는데, 이 부분이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의 버들과 앞으로의 버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무이는 산 자식들 목구멍에 풀칠하는 기 사는 목적이었습니다. 지도 줄리만 할 때부터 핵교도 그만두고 밥하고 동생들을 돌봤고예. 커서는 어무이 도와가 손가락이 부르트게 삯바느질을 했지예. 어무이가 지랑 동생들 두고 도망갈까 봐, 뒷산 용소에 빠져 죽을까 봐 밤마다 무서벘습니더. 그캐서 어무이 말이라면 죽는 시늉하는 효녀로 살았습니더. 우짜믄 어무이한테서 도망치고 싶어가, 그런 집 떠나가 지 행복 찾을라꼬 여를 선택한 긴지 모릅니더. 당신이 아니라 포와 말입니더.”


말 없는 송화에게는 보살핌이라는 키워드가 숙명처럼 느껴진다. 무당이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해주는 사람이라는 글을 본 적 있다. 결국 무당이 된 송화는 버들과 홍주, 캠프의 사람들이 몸과 마음이 아플 때마다 곁에서 묵묵히 도와주었고, 송화가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버들에게 맡긴 딸은 버들에게 힘이 되어주었다.


홍주는 고향 어진말과 이어져 있을 때는 자유롭지 않았지만, 어진말에서부터 이어진 인연인 하와이 남편과 헤어지기로 결심하는 순간부터는 자신의 자유로운 성향을 마음껏 분출할 수 있었다. 새로운 세상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그녀의 능력이 자신과 친구들의 삶에 활력이 되었다.  


충성, 보살핌, 자유, 세 명의 친구가 가진 힘이 한데 어울려 이들을 하와이에서 버틸 수 있게 해주지 않았을까.




이 소설에서 큰 운명 혹은 나라의 방향에 바꿔보려 했다가 실패하는 인물 2명이 있는데, 태완과 송화다. 태완은 독립운동에 열정적으로 뛰어들었지만 다친 몸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고, 송화도 할머니의 간절한 바람으로 하와이까지 왔지만 끝내 운명을 거스를 순 없었다.


이들과 반대 지점에 홍주가 있다. 홍주는 상황이 허락하는 한에서 자신의 뜻과 의지를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사진 중에서 남편 될 사람을 고르고, 아들과 헤어질지언정 첩이 되길 거부하고, 친구와 아들에 대한 의리를 포기할 수 없어서 청혼도 거절했다. 자신의 생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가용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알고 주체적으로 선택을 한다.


“가시나야, 섭섭하구로 그기 뭔 소리고? 결혼 안 한다. 찰리하고 결혼하면 내는 미국 사람 되는 기라. 그라모 조선하고 영 멀어진다아이가. 느그들하고 여서 살 기다.”

홍주의 눈자위가 붉어졌다. 홍주에게 조선은 성길이었다.


세 명의 인물 중에서 나는 홍주가 좋다. 운명을 거스르지 않고, 운명을 멋지게 가꾸어 나가는 그녀가 좋다. 하지만 나는 버들과 더 가까운 성향의 사람이다. 버들이 이런저런 궁리를 할 때면 마치 나의 고민인 것처럼 그 마음을 찰떡같이 헤아릴 수 있었다. 그럼에도 버들처럼 강인하고 따뜻한 성품은 갖지 못해서 잡념만 많은 내가 부끄럽기도 하다. 그녀처럼 주변 사람들을 잘 보듬어 살피면서 당차게 제 역할을 해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끝으로 이 책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서 이 글을 끝내려고 한다.


여성이 가진 힘과 연대의 멋이 폭발하는 순간을 보고 싶다면, 시대와 바다를 건너 1920년대 하와이로 가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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