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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주얼페이지 Jun 16. 2020

소시지 블루


소시지를 먹으면 우울해진다. 소시지에 얽힌 추억 때문이라면 차라리 다행일 텐데, 소시지에 들어간 첨가물 탓에 몸과 마음이 축 처지고 무기력해진다. 특정 회사의 소시지를 먹으면 우울해진다. 소시지에 감정이 반응하는 걸 작년에 처음 알았다. 작년 큰애의 첫 소풍 도시락 메뉴가 계기가 되어서 한 번씩 소시지 반찬을 만들어 먹게 됐다. 소시지 반찬을 상에 올려도 다른 반찬과 같이 먹고 먹는 양도 그렇게 많지 않다 보니, 소시지 첨가물이 내 기분에 영향을 미치는 걸 금방 알아차리진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소시지 파스타를 만들었는데, 애들이 소시지만 남겼다. 남긴 걸 다 먹고 나니 평소보다 소시지를 훨씬 많이 먹은 셈이 됐다. 조금 시간이 지나니 갑자기 다리가 무겁고 우울해졌다. 아이들에게 신경질적으로 대하고 있었다. '내가 왜 이러지?' 생각을 했다. 그날 몸을 쓰는 힘든 일도 없었고, 스트레스가 심했던 것도, 잠이 부족한 것도 아니었는데, 갑자기 기분이 나빠졌다. 그게 너무 이상했다. 소시지가 화근임을 깨달았다.




소시지를 원인으로 지목한 것은 내가 음식에 한번 데인 일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지낼 때 에그타르트에 크게 식겁한 적이 있다. 차이나타운의 유명한 에그타르트 가게에서 산 에그타르트를 먹었는데, 그날 저녁부터 온몸에 모래주머니를 매달아놓은 것처럼 몸이 무거워지고 근육통이 시작됐다. 무기력해지고 우울해졌다. 일주일 정도를 스스로를 쓸모가 없는 듯한 존재로서 여기는 느낌을 안고 살았다. 이러다가 자살을 해도 이상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자각한 게 사나흘쯤 지났을 때였다. 에그타르트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을 움직여보려고 해도 쉽게 의지대로 할 수가 없었다. 절망적이었다.


자각을 했음에도 빠져나오기 힘들었던 시간 동안 원인을 찾으려고 애를 썼다. 시작점을 거슬러 올라가니 에그타르트였다. 타르트를 먹은 전후로 변화가 있었다. 다행히 당시에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었기 때문에 에그타르트가 문제를 제공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때 나는 생리가 3개월 정도 멈췄다가 겨우 다시 생리를 했다. 그때도 변수가 음식이었다. 생리가 멈춘 이유를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식사 시간에 먹은 음식들 때문이라고 생각했었고, 도시락을 챙겨서 아르바이트를 다닌 후에야 그 달에 생리가 다시 시작됐다. 내가 먹는 음식이 나를 만든다는 말을 새기며, 유기농 재료를 쓰는 식당 아니고서는 외식을 하지 않던 시기였다. 그렇게 노력을 했는데, 유명 맛집이라고 안심을 한 게 문제였다. 알바를 하던 식당에서 쓰는 재료나 세제, 에그타르트 가게에서 사용한 첨가물은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몸과 마음에 독 같은 음식이었다.




다행인지 이후로 에그타르트만큼 강렬하게 나쁜 음식은 없지만 내 몸이 반응하는 음식이 몇 개 있다. 떠먹는 요거트 제품이다. 화장실을 가기 편하게 해 준다고 알고 있는 요거트 제품들을 먹으면 배는 아프지만 며칠 동안 화장실을 가지 못한다. 떠먹는 요거트 제품이 내 장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줄 모르고 즐겨 먹었는데, 나이가 들고 음식 먹는 양이나 종류가 작아지다 보니 요거트 제품을 먹으면 화장실 문제가 생김을 알게 됐다. 


두유에도 내 장이 반응을 한다. 올해 설날에 시어머니가 선물용으로 두유 몇 박스를 사두셨는데, 두 박스가 남았다며 가져가라고 하셨다. 하나를 꺼내 먹었는데, 요거트 제품을 먹고 난 후와 똑같은 증상이 나타났다. 설날 동안 집에서 만든 음식들만 먹은 덕분에 문제의 원인을 찾기 쉬웠다. 두유나 요거트에 들어있는 응고제 성분이 내 장에서도 똑같은 작용을 하는 게 아닌가 의심을 한다. 이후 나는 우유를 제외한 모든 요거트 제품은 일절 먹지 않는다. 글을 쓰다 보니 큰 애도 짜서 먹는 기다란 막대 요거트를 하루에 몇 개씩 먹고 변비에 걸린 적이 있었던 게 생각났다. 그 후론 하나씩만 먹게 하고, 다른 것들엔 이상 증상 없어서 먹이는데, 아이라서 금방 회복되거나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소시지 자체를 이제 먹지 않으려고 한다. 생협이나 한살림 소시지를 먹어봤지만, 맛이....... 못 먹으면 죽는 음식 아니면 깔끔하게 끊는 게 낫다. 아마 완전히 끊는 건 어렵겠지만, 내가 안 사는 것만큼은 실천할 수 있지 않나 싶기도...... 나이가 들수록 내 몸을 더 보살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돌을 씹어 소화시킬 수 있는 나이는 이미 지났다. '좋은 음식을 먹어야 몸이 편해지고 좋은 생각도 나온다'라는 생각이 저절로 나오는 나는 정말 몸을 알뜰살뜰히 보살펴야 한다. 내가 먹은 음식이 나를 만든다. 내가 하는 말과 쓰는 글이 나를 만드는 것처럼, 무슨 음식으로 나를 채워 나를 만들 것인지에 대해서도 판단을 잘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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