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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주얼페이지 Jan 20. 2022

포기하는 포기하는 포기하는 마음 없이

미련으로 계속 읽는다.


<어쩐지 미술에서 뇌과학이 보인다>를 들고 실패의 문턱까지 밟았다가 뒷걸음으로 한발 물러섰다. 방금 전만 해도 이 글은 <어쩐지 미술에서 뇌과학이 보인다>의 완독을 포기한 이유에 관한 글이었는데, 어쩐 일인지 마음을 고쳐 먹게 되었다. 무엇 때문이지, 책에서 손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책값과 투자한 시간에 대한 미련 같은데 어쩌자고 그 미련은 실패의 기록까지 남기라고 하는 것이었을까?

 

이 책 읽기를 중단하려고 한 이유는 저자가 설명하는 뇌과학과 미술의 연결고리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학부 시절 현대미술을 배울 때 아주 고개 절레절레 절게 만들었던 비평가들이 이 책에 수시로 등장하는데, 작가는 그들의 외계어 같은 말을 인용하며, ‘이게 바로 내가 말했던 뇌의 작용이다.’는 식으로 설명한다. 나는 그 외계어들을 이해조차 할 수 없기 때문에 첩첩이 이해할 수가 없다.


하지만 다시 도전하기로 하면서 무기를 하나 만들기로 했다. 질문을 만드는 것이다. 질문에 해당하는 답을 찾아 콘텐츠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니 그 비평가들이 크게 신경 쓰이지 않는다.


질문을 만들어본다. 나는 고전미술은 좋아하지만 현대미술에는 큰 관심도 애정도 없다. 반대로 현대미술을 더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왜 싫어하고, 다른 사람들은 좋아하는 걸까? 이걸 뇌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거지? 뇌가 좋아하는 그림이 있는 걸까? 사람마다 뇌의 활성화된 영역이 달라서 좋아하는 장르가 달라지는 걸까? 뇌의 특정 영역을 자극하는 훈련(?)을 반복하면 추상미술을 좋아하게 될까? 그리고 두 문화도 빠질 수 없지. 인문학적 연결고리가 뇌과학과 미술 사이에 어떤 식으로 존재하는지 알아야겠다고 생각하지만, 흠, 그것까지는 무리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은 ‘뇌가 좋아하는 그림이 있다?’ 이걸로 간다. 내일은 제발 포기하겠다는 마음이 다시 들지 않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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