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곳, 본교

날짜를 반대로 기입한다는 것을 기억하게 된 일

by 새록

호주에서 다니게 된 학교는 뉴질랜드에서의 학교와는 천지차이였다. 현지인들에게도 학비가 아주 비싼 축에 속하는 사립학교였고 호주 전역에서 손가락에 꼽히던 유명 사립학교였다. 교정이 웬만한 대학 캠퍼스보다 크고 하나의 공원처럼 드넓었다. 교내에 있는 유칼립투스 숲에서는 월라비(캥거루)와 코알라들을 보호하고 있었고, 축구장, 럭비장, 농구코트, 테니스 코트 등은 여러 개씩 갖추고 있는 큰 규모의 학교였다.


이 학교의 가장 큰 특징은 1인 1노트북이라는 점이었다. 학교는 교과서 없는 학교를 지향했고, 대부분의 수업은 빔프로젝터로 진행했다. 학교에는 학생들이 쓸 노트북 하드웨어와 각종 교육용 소프트웨어를 관리, 담당하는 테크니션 부서가 따로 있었고 교정 전체에는 와이파이가 설치되어있어 쉬는 시간이면 학생들이 잔디밭에서 노트북으로 음악을 틀고 춤을 추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약 20여 년 전, 당시 메가패스와 ADSL이라는 광고를 티비로 접할 수 있고 집집마다 인터넷이 널리 보급되던 IT강국인 한국에서도 쉽지 않았던, 미래지향적인 교육환경임은 분명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영어, 학습태도, 인성을 모두 평가받는 International School을 거쳐야 누릴 수 있는 것들이었다.



학교의 덩치가 크고 교육환경이 좋아서 외국인 유학생이 많이 몰리는 관계로 International School, 즉 외국인 학생들을 위해 영어수업을 하는 부설기관이 있었는데 모든 외국인 학생들은 이곳을 거처야지 Main School(본교)로 배정받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이런 단계가 없이 외국인 학생을 바로 본교로 입학시켰더니 영어도 영어지만 태도가 좋지 않아 학습 분위기를 망치는 사례가 많았다고 한다. 모든 유학생은 International School에서 일정 수준의 영어실력과 학습태도를 증명하지 않으면 1년이고 2년이고 Main School로 갈 수가 없었다. 결국 학교의 기대만큼 부응하지 못하면 본교 입학도 전에 전학을 가야 하는 상황이 펼쳐졌다.


따라서 이 과정에서는 단순히 영어만 학습하지 않았다. 길면 2년 정도까지도 본교 수업을 받지 않기 때문에 영어 외에도 수학과 과학 수업이 병행되고 이 또한 학점으로 평가받기 때문에 열심히 하지 않으면 본교로 가기 힘든 구조였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 또한 전반적으로 열의가 있기에 억지로 ‘유학 보내진’ 아이들은 도태되고 열심히 하고자 하는 아이들이 남게 되는 것 같았다. 실제로 레벨을 올라가지 못해 전학 가는 유학생들을 여러 명 봤으니 나름 효과적이었을 수도.


초등교육과정에 해당되는 아이들은 바로 본교로 배정받아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하는 반면(4학년이었던 내 동생은 바로 본교로 입학했다) 중2 과정, 즉 8학년에 입학해야 하는 나는 본교로 가지 못하고 International School을 거쳐야 했다. *요즘은 초등과정도 별도로 있다고 한다


International School, 줄여서 ‘인터’에서는 입학 전에 레벨테스트를 보는데, 그 결과에 따라 인터에서의 레벨을 배정받거나, 바로 본교로 입학하게 된다. 지면 시험과 면접을 통해 1부터 6까지의 레벨이 결정되는데, 가장 낮은 레벨인 레벨 1부터 시작한다고 가정했을 때 4학기 제인 호주 학기에 맞춰 총 1년 6개월간의 코스를 밟게 되는 것이다. 물론 매 학기마다 시험을 치르고 다음 레벨로 진급이 안될 수도 있기에 약 1년 6개월~2년 간의 인터 과정을 다닌다고 생각하면 된다.


당시 인터의 레벨테스트는 일 년에 딱 한번 실시되었는데 그때 참석하지 않으면 실제 영어실력과 관계없이 레벨 1부터 시작하게 됐다. 그래서 레벨테스트는 너무나도 중요한 날이었는데 내 가디언(법적 보호자 - 한국인 홈스테이 아줌마)이 날짜를 착각하여 시험에 응시하지 못했다. (호주는 날짜를 한국과 반대로 일/월/년 순으로 기입한다는 것을 뼈에 새기게 된 계기였다)


뉴질랜드에서 2년간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영어실력에는 크게 이슈가 없어서 바로 본교로 갈 수 있었을 텐데, 나는 레벨테스트를 보지 못해 인터 교감선생님과 면접만 보고 레벨 3으로 배정되었다. 원래 무조건 레벨 1로 가야 하는데 학교에서도 어린 나이와(실제로 인터 전체를 통 틀어 가장 어렸다. 또래가 없어 적응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하여 빠른 수료를 위해) 2년 동안의 뉴질랜드 생활을 감안하여 최대한 배려한 것이 레벨 3였고, 더 이상의 선례는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었던 것이다.


본교 8학년이 아닌 인터로, 그것도 탑 레벨이 아닌 중간 레벨 3으로 배정되었다는 사실과 그게 가디언의 실수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엄마는 유학원을 통해 학교에 제고를 부탁했지만 학교에서는 방침이 그러하니 따르기 싫으면 다른 곳으로 가라고 했다.


인터 입학 전에 교복을 사러 교내 유니폼 샵에 갔을 때는 인터 학생과 본교 학생이 구입할 수 있는 유니폼이 조금 달랐다. 대부분 같았지만 모자와 넥타이, 배지 등의 문양이 달랐는데, 그 아주 작은 차이가 갖는 낙인효과가 크게 느껴졌다.


게다가 인터는 교정의 가장 끝쪽 언덕배기에 자리해있어서 가끔 입학처나 매점을 가야 할 때는 본교로 건너가야 했는데 그때마다 축구장 두배만큼은 넓은 비탈진 언덕을 오르내려야 하고 30분씩 이동해야 해서 매점 가는 일이 연례행사였을 정도로 더욱 왕래가 어려웠고 그만큼 본교는 멀게만 느껴졌다.


일 년에 학비로 몇 천만 원을 내는데 호주인 친구는커녕 주변에 한중일 아시아인들 뿐이라는 사실에 엄마는 가슴을 내리쳤지만 방법은 단 한 가지, 그저 열심히 해서 빨리 본교로 넘어가는 것뿐이었다.

keyword
이전 10화10. 한국사람은 믿으면 안 돼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