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만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
아쉬운 마음보다 찝찝한 기분이 드는 사람들이 있다.
나에게는 그게 친정식구다.
친정 식구들은 만날 때마다 나에게
'그거 왜 그렇게 했냐, 이렇게 하면 되지 않냐.'
라고 했다.
취직한 이후로는 고향으로 오라는 레퍼토리가 반복 재생됐다.
직장은 고향에서 차로 1시간 떨어진 곳에 있었다.
나는 괜찮다고 했지만 남편 출퇴근 거리를 위해서도 회사로 가까운 고향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직장이, 나 자신이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
'그러려니'하고 넘기기엔 먼 거리를 통근하는 남편한테 미안한 마음이 자꾸 들었고 이기적인 내가 된 것 같았다.
집에 돌아오는 길 내내 수많은 말들로 마음속은 시끄러웠다.
어느 날은
갓 임신한 동생에게 어느 산부인과 다니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동생은 '회사랑 가까워서 ㅇㅇ산부인과 다닌다.'라고 했다.
아빠가 재차 물으니
'요새는 거기 많이 다닌다.'라고 했다.
정말로 주변 동료들은 거기 많이 다녔다. 집 좀 산다는 가까운 동료도.
다른 누구도 아닌 금수저 동료가, 그것도 본인이 다니는 것도 아니고 와이프가 다니는 산부인과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건 왜일까.
나는 '요새 많이 다니는 산부인과'가 아닌 다른 병원을 다녔다.
소외감이 들었다. 고작 이런 걸로 소외되는 이유는 부자들이 다녀서? 나보다 돈에 밝고 똑똑한 동생이 선택한 병원이라서일까.
나름대로 알아보고 선택한 병원이지만
'선택을 잘못한 건 아닐까? 다른 사람들 다 저기 다닌다는데...'라는 불안감이 들었다.
이토록 나에게 확신이 없었던 날이 있었다.
사람들이 많이 선택한 곳도 좋지만 내가 선택한 것도 좋을 수 있다는 걸 그땐 몰랐다.
친정 식구들의 조언들을 흘려듣기엔 시간이 필요했다. 심리 책을 읽으며 마음을 들여다봤고,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귀로 흘러 들어온 아주 작은 말이 심장 속까지 후벼 파지는 않도록.
새로 생긴 습관이라면 나의 선택에 대한 근거를 하나하나 일기장에 적어두는 것이었다.
툭툭 치는 말들에 쉽게 무너지지 않도록.
나의 생각을 단단히 하기 위해. 나를 지키기 위해.
모두에게 맞는 답은 없다.
그렇기에 중요한 건,
경험을 통해 나에게 맞는 삶의 방식을 발견하는 일이다.
누군가의 로망과 누군가의 기쁨을 흉내 내는 게 아닌
나의 로망과 나의 기쁨을 알아가자
<애쓰지 않고 편안하게> - 김수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