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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Oct 22. 2023

나는 육아 대신 일을 택했어. 그게 왜?

너나 잘해

오늘도 6시 꽉꽉 채우고 퇴근해 열심히 악셀을 밟고 45분을 달려 어린이집에 도착했다.



아이가 조금이라도 덜 기다렸으면 하는 마음에 1분 1초가 급한데



어린이집 앞에서 자기 아이 동영상 찍어주느라 입구를 가로막고 있는 두 엄마 중 한 명의 어깨를 스치며 지나갔다.



아직 까지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는 어린이집엔 우리 아이의 신발 말고 다른 신발 하나가 더 보였다.



 '저 친구 엄마도 오늘 늦는구나...' 생각하며 어린이집 호출 버튼을 눌렀다.



문이 열리고 아이가 '엄마~'하고 달려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의 늦은 하원에도 큰 불만 없이 잘 다녀주고 있는 아이가 오늘도 변함없이 밝은 미소로 나를 반겼다.


그 미소 덕에 엄마로서의 죄책감은 잠시 접어둔다.   



나오는 길에 아까 그 엄마들을 마주쳤다. 두 엄마 중 한 명은 안면이 있었다. 우리 아이보다 1~2살 정도 많은 아이의 엄마인데, 내가 단축 근무를 하고 일찍 마친 날 놀이터에서 종종 본 적이 있었다.



 


"이제 마치는 거에요?"



그렇다고 내가 대답했다.



"아우~ 너무 늦다...일 좀 줄여요~"



'저게 대체 무슨 소리인지? 일이란 게 고무줄처럼 늘였다가 줄였다가 할 수 있는 것 이었던가. 특히 나 같은 월급 쟁이에게 일을 줄이라는 건 정해진 퇴근 시간을 지키지 말라는 말인가. 그게 과연 가당키나 한 것인가. 아니면 시키는 일을 선택적으로 하지 말라는 말인가.'하고 발끈했지만 딱히 할 말이 없어 대충 아무렇게 대답했다.



"아, 네~ㅎㅎ"



그 말 다음으로 날이 추우니 건강에 신경쓰시라는 등등의 말도 주고받았지만 내 머릿속엔 일.좀.줄.여.요.다섯글자만 선명히 남았다.  




나라는 인간은 이따금 씩 아까와 같은 쓴 소리를 들으면 고장이 난다.


잘 굴러 가다가도 한번 삐끗 하면 잘못 끼워진 톱니바퀴처럼 헛돈다.





머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은 삐뚤어진 톱니바퀴처럼 딸그락, 딸그락 불쾌한 소리와 함께 멈추지 않고 계속 돌아간다.



내 생각에 끈이 있다면 그 끈의 머리채를 잡고 이 쪽 끝에서 저 쪽 끝으로 뒤흔들어 놓는다. 몇 번을 흔들리고 나면 그만 정신이 혼미해지고 만다.



이때까지 잘 접어두었던 아이에 대한 죄책감은 스프링 튕기듯 튀어나와 뇌 속에서 흔들린다.




'정말 회사를 그만둬야만 하는 건가. 언제 그만둔다고 말하지. 그만두면 뭐하고 먹고살지. 다른 직장은 구할 수 있을까. 만약에 지금 직장만 한 곳을 못 구하면? 아이가 좀 더 커서도 내가 직장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짧게는 하룻밤만 자고 일어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출근하는 나를 발견한다.


감정의 소용돌이가 단잠으로 잠재워질 수 있는 것처럼 쉬운거였나. 고뇌는 아무 것도 남기지 않고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허무하다. 어제까지 했던 고민 들은 무엇이었을까. 하루만 지나도 괜찮아질 것을 어제는 왜 그렇게 고통스러워했던 걸까.  


'무슨 상관이야'

'너나 잘해'

'나는 육아 대신 일을 택했어.

그게 왜?

육아는 양보다 질이랬어.

같이 있는 시간동안은 즐겁게 행복하게 보낼거야.'


이랬으면 됐을 것을. 아니야 이것도 후회고 자책이지. 나는 그 말들이 아프게 다가왔고 그 때문에 내 계획을 바꿀 필요는 없어. 그들이 말하는 대로 내 인생을 맞춰서 살 필요는 없어.


내가 정말 아이와 오래있길 원한다면, 선택을 해야만 하는 순간이 온다면 그땐 누가 뭐라해도 내가 나설거야.

그러니 당당해지자.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다른 사람의 말은 필터링해서 듣는 연습을 계속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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