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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의 묘미

by 도도진

마음이 소란할 때면 산책을 한다. 책상에 앉아 머리 싸매고 고민해도 막막하고 꼬여있던 일이 걷다 보면 풀어지기도 한다. 휴식을 위한 산책에는 클래식이 잘 어울린다. 차분하고 가사가 없어 귀에 거슬릴 것이 없는 클래식을 들으면 소란했던 마음도 가라앉는다.


어느 클래식을 들으며 걸었던 여름 산책길을 기억한다. 햇살에 비친 나무가 나의 걸음으로 천천히 다가오면서, 흐르던 음악에 가슴이 벅차도록 감동했다. ‘이런 일로도 행복할 수 있구나.’


느리게 지나가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


조급한 마음이 내달릴 때 아주 느린 음악을 들으며 마음의 속도를 늦춰본다. “뭐가 그리 조급하니. 서두른다고 모든 게 해결되지는 않아.”하고 스스로를 다독여본다.


애쓰지 말자.

애쓴다고 안 되는 일도 있지.

가끔은 마음을 놓고, 뛰지 않고 산책하듯 걷다 보면 정리되는 일도 있어.


산책을 위한 길은 오솔길보다 왕복 4차선으로 뻥 뚫린 도로가 좋다. 길게 이어진 가로수길을 걸으면 가슴이 탁 트이는 느낌이다.


만약 나무가 우거진 오솔길을 걷는다면 보도블록보다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흙 지름길이 좋다.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다.


어제가 수능이었는데, 나의 수능이 끝나고 학교에서 일찍 마쳐서 낮에 하교하던 길이 생각이 났다. 딱 이 날씨였다. 햇살은 따뜻하고 살살 부는 바람에 귀가 시렸다. 잎이 떨어져 거리를 소복이 덮었다.

온통 나무가 알록달록한데 해가 비치어 더 반짝거린다. 훤한 대낮에 집에 간다는 게 얼마만인지. 홀가분한 기분으로 여유로워진 시간을 만끽했다. 산책이란 그런 것인 듯하다.


걸음의 속도에 맞춰 지나가는 시간을 음미하는 것.


2025.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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