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내가 다니던 유치원은 지역의 큰 극장을 빌려 재롱잔치를 열었다.
‘무대에서 네가 얼마나 야무지게 잘했던지.’
엄마의 추억 이야기에 빠질 수 없는 레퍼토리였다. 그 당시 무대에서 공연했던 건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엄마가 나를 칭찬했던 것만큼은 지금까지 기억이 난다.
‘내가 그랬구나. 춤을 좋아해서 열심히 추던 아이였구나.’ 은근히 자존감이 올라갔었다.
오늘은 나의 딸이 유치원 발표회를 하는 날이다. 딸은 어린 나처럼 부끄럼 없이 춤을 출 것인지, 아니면 긴장할 것인지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차례를 기다렸다.
연습 때부터 집에서 엉덩이를 요리조리 흔들며 압권인 표정 연기를 보이더니 실제 무대에서는 날아다니는 것이 아닌가.
트로트 가수 장윤정의 ‘돼지토끼’ 노래의 2절이 넘어갈 때쯤 딸아이는 뒷줄에서 앞으로 나와 무대 중앙에 자리 잡았다.
몸을 흔들흔들 손가락을 하늘로 찌르고 심장이 아프다는 가사에서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신나는 노래에 더 흥을 불어넣었다.
덩달아 흥이 나는걸?
춤추는 딸을 관찰하며 외워져 버린 율동을 같이 따라 하고 있다. 더 흔들고 싶지만, 간신히 참고 있다.
이쯤 되면 나의 흥을 물려받은 게 틀림없어.
유전자가 정말 신기해. 엄마가 유치원 때의 나를 보는 느낌이 이랬을까. 엄마도 나처럼 흥이 많았을까. 시간이 참 빠르다. 내 아이의 유치원 발표회를 보는 날이 오는구나. 이목구비를 복사, 붙여 넣기를 한 듯 닮은 아이가 내 눈앞에서 춤을 추고 있다. 눈으로 담은 이 장면을 아이에게 두고두고 칭찬해 주어야지. 네가 기억을 못 할지라도 내가 알려줄 수 있도록 이 시간의 조각을 꼭 간직해야지. 평생의 자랑이 되도록.
“젤리 같은 너, 마냥 소중해. 영원히 안아줄게… 넌 그대로면 돼. 또 있어 주면 돼. 내 목숨까지 다해서 사랑해 줄게. 너를 만난 건 신의 한 수야. 하늘에 감사할게.
장윤정, ‘돼지토끼’ 가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