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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Nov 27. 2016

시간은 가장 잔인한 연쇄살인범이다

추운 밤 이불 속에서 읽기 좋은 두 권의 범죄소설을 소개했습니다.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 트루먼 카포티의 <인 콜드 블러드>입니다.

TBS 교통방송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 '달콤한 밤 황진하입니다'의 책 소개 코너 '달콤한 서재'입니다.


>방송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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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서재 (With 책밤지기 이종현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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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귀로 읽는 책 이야기 달콤한 서재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해볼까요?


종현

오늘은 깊어가는 가을밤에 어울리는 범죄소설 두 권을 준비했습니다.     


DJ

범죄소설과 가을밤이라. 무서울 거 같은데요.


종현

이맘때쯤 되면 따땃한 이불 속에 들어가서 밖에 나오기 싫어지잖아요. 밖은 춥고 침대 밖은 위험하고. 그러면 이불 안에 콕 박혀서 나가지 못하게 할 만한 게 필요한데, 재미있는 범죄소설이 딱 제격이죠.


DJ

꿈보다 해몽 같기는 하지만, 한 번 얼마나 재미있는 범죄소설인지 볼까요? 어떤 책부터 소개해주시나요? 


종현   

먼저 소개해드릴 책은 김영하 작가의 살인자의 기억법입니다. 2013년에 나온 소설인데요. 영화로도 만들어져서 개봉을 준비 중이라고 합니다. 무려 설현 씨가 나오는 영화죠.


DJ

설현에 방점을 찍으시는데요일단은 책 제목이 시선을 확 끄네요살인자의 기억법어떤 내용인가요?


종현 

주인공이 연쇄살인범입니다. 그런데 젊고 강하고 그런 캐릭터가 아니라요. 나이가 칠십을 넘은 노인입니다. 거기다가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아서 건망증과 이상행동에 시달리는 그런 노인이에요. 치매를 겪는 연쇄 살인범이라는 소재가 일단 굉장히 참신하죠.


DJ

사실 김영하 작가라고 하면 뭔가 감각적인 글쓰기이런 게 생각나거든요그런데 범죄소설을 썼다고 하니까 뭔가 신기한데요?


종현 

김영하 작가의 데뷔작도 자살청부업을 소재로 썼거든요. 1996년에 데뷔했으니까 벌써 20년이 된 중견 작가인데요. 살인자의 기억법은 범죄소설이면서도 시간에 맞서는 인간의 고군분투를 그리는 점에서 다른 범죄소설들과는 조금 차이가 있기도 합니다.

DJ

시간에 맞서는 인간정말 그러네요알츠하이머나 치매라고 하는 병은 어떻게 보면 시간이 인간에게 선사한 풀지 못할 고통 같은 거잖아요.


종현

그렇죠. 앞으로 의학이 발달하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는 그랬죠. 어떻게 보면 가장 잔인하고 많은 사람을 죽인 연쇄살인범은 시간일지도 몰라요.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건 한계가 있지만 시간은 모든 사람을 예외없이 죽게 만드니까요. 정말 잔인한 살인범은 그냥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니라 대상의 마음속부터 죽어가게 만든다는 말이 있거든요. 시간은 모든 사람을 초조하게 하고 절박하게 만드니까 정말로 잔인한 살인범인 셈이죠.


DJ

시간에 맞서는 연쇄살인범의 이야기. 노래 한곡 듣고 자세히 나눠볼게요. 


종현

김창완밴드의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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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1 – 김창완밴드 시간

https://youtu.be/oZbjZPeeQo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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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가을밤에 어울리는 범죄소설첫 번째로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결말은 비밀로 해야겠지만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야기를 해주세요.


종현

연쇄 살인범 김병수가 주인공입니다. 26년 전에 마지막 살인을 저질렀고 이제는 70대 노인이 됐어요.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아서 계속해서 기억을 잃어갑니다. 은희라는 딸이 있는데 딸과의 관계도 계속 나빠지고요. 그런데 어느날 마을에서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합니다. 기억을 잃어가는 주인공은 자신이 저지른 짓이 아닌가 스스로를 의심하기도 해요. 그런데 어느날 박주태라는 남자를 만납니다. 딸이 사랑하는 남자인데, 김병수는 그 남자를 보자마자 그 사람이 범인이라는 걸 눈치채요. 그리고 그 남자가 자신의 딸에 관심을 보이는 것도 알게 되고요. 딸을 구하기 위해 마지막 살인을 저지르기로 결심을 하게 됩니다.


DJ

기억도 잃고 기력까지 딸리는 70대 노인이 어떻게 어리고 센 연쇄살인범을 상대하는 걸까요?


종현 

말씀드린 줄거리 뒤에 반전이 있는데요. 그건 직접 책을 보시는 분들을 위해 남겨놔야겠죠. 다만 이 책은 박진감 넘치는 액션이나 격투가 나오는 그런 류의 범죄소설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사라지는 기억을 붙잡으려고 하는 한 명의 인간이라고 할까요. 시간 앞에서 한없이 나약한 인간의 고뇌를 담은 책이라고 하는 게 더 맞을 것 같아요.


DJ

그런 고뇌가 드러나는 장면이 있을까요?


종현 

주로 주인공의 독백에서 그런 부분이 드러나는데요.

‘치매는 늙은 연쇄 살인범에게 인생이 보내는 짓궂은 농담이다. 아니 몰래카메라다.’

‘사람들은 모른다. 바로 지금 내가 처벌받고 있다는 것을. 신은 이미 나에게 어떤 벌을 내릴지 결정을 내렸다는 것을. 나는 망각 속으로 걸어들어간다.’

이런 독백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DJ

김영하 작가는 전부터 대중적인 문장으로 잘 알려져 있잖아요잘 읽히게 쓴다고 해야 할까요?


종현 

이 소설도 마찬가지입니다. 장편이라는 꼬리표가 붙기는 했는데 150페이지의 짧은 분량이거든요. ktx를 타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내려가는 길에 다 읽을 수 있는 정도의 책입니다. 거기다가 말씀하신 것처럼 문장이 짧고 간결해서 막히는 부분도 거의 없고요. 다만 다 읽고 나서는 시간이나 기억이 인간 존재를 어떻게 옭아매고 있는지에 대해서 고민할 구석이 제법 있는 책이거든요. 


DJ

김영하 작가의 책을 저희 방송에서 이야기한 건 처음인 거 같은데요또 추천할 만한 책이 있을까요?


종현 

김영하 작가야 워낙 팬층이 두터우니까요. 한 권만 고르자면 저는 <검은 꽃>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멕시코 농장으로 팔려간 조선 최초의 멕시코 이민자들의 삶을 추적한 작품인데요. 저는 김영하스럽지 않아서 그 책이 참 좋았습니다. 


DJ

그렇군요노래 한 곡 듣고 두 번째 책 이야기를 해볼게요.


종현

쿡스의 머더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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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2 – The Kooks - Murderer

https://youtu.be/8iEBUpLQR9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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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가을밤에 읽기 좋은 범죄소설두 번째 책은 어떤 건가요?


종현

두 번째 책은 범죄소설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책인데요. 트루먼 카포티의 인 콜드 블러드입니다. 인 콜드 블러드는 우리말로 번역하면 ‘냉혈한’이 되겠네요.


DJ

트루먼 카포티라는 이름이 어쩐지 낯익은 데요? 


종현

아마 누군지 아시는 분들도 많을 텐데요. 미국의 유명 작가입니다. 오드리 헵번이 나온 티파니에서 아침을은 다들 아시죠. 그 영화의 원작을 쓴 작가로 국내에서는 더 잘 알려져 있죠. 


DJ

티파니에서 아침을과 범죄소설은 언뜻 연결이 안 되네요.


종현

그렇죠. 카포티 자신이 굉장히 다채로운 장르에서 다양한 이야기들을 써서 그런 건데요. 인 콜드 블러드는 그중에서도 작가 자신의 대표작으로 꼽힙니다. 트루먼 카포티의 생애를 그린 카포티라는 영화도 2006년에 나왔거든요.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이 카포티 역을 맡았는데 그 영화도 인 콜드 블러드를 쓰던 카포티를 배경으로 삼았죠.

DJ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이 연기했다고 하니까 영화도 만만치 않겠다는 생각이 드네요그런데 이 소설은 실화를 기반으로 한다고요?


종현

맞습니다. 1959년에 있었던 살인사건을 카포티가 직접 취재해서 소설로 쓴 건데요. 논픽션 범죄소설인 거죠. 1959년에 미국 캔자스주의 한 농장 주인 일가족이 두 명의 범인에게 살해당합니다. 신문에서 이 기사를 읽은 카포티가 자신의 친구와 함께 직접 사건 현장으로 취재를 떠나고요. 이때 카포티와 함께 한 친구도 대단한데요. 앵무새 죽이기로 유명한 하퍼 리가 카포티와 함께 범인들을 만나러 떠났습니다.


DJ

당대를 대표하는 작가들이 이 범죄에 관심을 기울인 거군요뭔가 특별한 게 있었을까요?


종현

살인사건은 1950년대에도 지금만큼이나 끊이지 않았던 것 같아요. 다만 카포티가 주목한 부분은 평범한 한 명의 인간이 어떻게 다른 인간을 죽게 만드는가. 인간 내면에 어떤 악의가 숨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지독하게 끔찍한 인생과 사회의 불공정한 면들이 인간을 악마로 만드는 것인지, 이런 부분에 천착했던 것 같습니다.


DJ

어떤 부분이 그럴까요? 


종현

두 명의 살인범이 나오는데요. 그중에 페리 스미스라는 범인이 있습니다. 이 페리 스미스는 인디언과 백인의 혼혈에다 약간의 기형을 가지고 태어났고 지독하게 가난한 집에서 자랐다고 해요. 아버지에게 매일 같이 폭력을 당하고요. 그런데도 시를 배우고 예술을 이해하려고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을 전하려고 노력하는 인물로 나옵니다. 카포티가 이 페리 스미스와 인터뷰를 하고 그 과정을 책으로 옮기면서 자연스럽게 페리 스미스에 대한 연민이 표현되는 거죠. 이렇게 따뜻한 감수성을 가진 인간이 그렇게 잔인한 살인 사건을 저지르게 된 것은 무슨 이유에서 일까. 우리 사회의 무언가가 잘못된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게 됩니다.


DJ

실화를 다루고 있는데 작가가 살인범에게 연민을 느꼈다. 논란이 될 수도 있는 부분이네요. 


종현

실제로 책이 나오고 나서 미국에서도 논란이 있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잔인한 살인범을 그렇게 표현할 수 있느냐. 이런 거죠. 앞에서 말씀드린 카포티라는 영화에 의미심장한 장면이 나오는데요. 하퍼 리가 카포티에게 묻습니다. 페리 스미스를 사랑한 거 아니냐고. 그러니까 카포티가 이렇게 대답을 해요.

"페리와 나는 어렸을 때부터 같은 집에서 자란 것 같았어. 그런데 어느 순간 나는 앞문으로, 그는 뒷문으로 나간 것 같았지." 


DJ

범죄소설이라고 해서 그냥 재미로 읽고 넘길 내용들이 아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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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3 – 언니네 이발관 – 너는 악마가 되어가고 있는가?

https://youtu.be/OHK0ESa9VF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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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트루먼 카포티가 쓴 인 콜드 블러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살인을 저지른 범인들은 결국 잡히게 되는 거죠?


종현

네. 이 책은 실화를 다룬 거니까요. 범인들은 경찰에 잡혀서 결국에는 사형을 당합니다. 사형을 당할 때 범인들의 나이가 페리 스미스는 서른여섯, 공범인 딕은 서른셋이었죠. 


DJ

사실 사건 자체만 보면 특별할 게 없는 것 같은데요. 왜 이 소설이 그렇게 인기를 끌고 아직까지도 범죄소설의 고전으로 남은 걸까요? 


종현

앞에서도 잠깐 말씀드렸는데 이 소설이 논픽션 장르의 거의 시초 같은 책입니다. 소설을 쓰기 위해서 작가가 직접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취재하는 일이 카포티 전에는 거의 없었던 거죠. 무라카미 하루키가 카포티에 대해 인상적인 말을 한 적이 있는데요. 대부분의 작가들이 시대에 물드는 반면에 카포티는 시대를 물들일 줄 아는 작가였다고 했어요. 그만큼 자기만의 방식으로 남들보다 앞서서 새로운 시도를 했기 때문에 당대에도 대단한 작가라고 칭송받은 거고 지금 읽어도 전혀 오래된 책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 거죠. 


DJ

작가가 직접 취재한 범죄소설. 게다가 카포티는 범인들을 직접 인터뷰도 했다고 했잖아요? 지금으로서도 굉장히 파격적인 이야기네요. 


종현

범인들이 잡히고 나서 사형당하기까지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재판 과정이 굉장히 길었는데요. 그러다 보니까 카포티가 쓴 인 콜드 블러드의 앞부분이 재판이 한창 진행 중일 때 공개됐다고 합니다. 언론에 범인들의 범죄 현장 묘사가 공개되니까 여론이 들끓었겠죠. 이런 부분이 재판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이야기도 있으니까요. 여러모로 봐도 정말로 드문 범죄소설이었다고 봐야겠죠.


DJ

카포티의 다른 책들은 어떤가요오늘 소개해주신 인 콜드 블러드 말고는 티파니에서 아침을 밖에 모르겠네요.


종현

사실 인 콜드 블러드가 카포티의 대표작이기도 하고 가장 뛰어난 작품이기도 합니다. 카포티는 인 콜드 블러드 이후에 책을 한 권도 내지 않습니다. 논픽션을 쓰는 작가의 고뇌이기도 한데요. 책을 내기 위해서 살인범들을 이용하고 결국에는 그들에게 희생당한 죄 없는 희생자들의 삶까지도 이용한 게 아닌가. 그런 자책에 시달린 거죠. 결국에는 그 이후에 한 권의 책도 쓰지 않고 알코올 중독에 시달리다 죽게 됩니다. 


DJ

뭔가 착잡한 결말이네요. 


종현

그렇죠. 영화 카포티에 보면 그런 고뇌가 잘 드러납니다. 그래도 인 콜드 블러드 전에 쓴 책들이 국내에 번역돼 있는데요. 저도 다 보지는 못했지만 카포티가 쓴 단편을 모은 ‘차가운 벽’ 같은 책들을 한 번 보시면 좋겠네요. 차가운 벽에 수록된 단편들은 무라카미 하루키나 미야베 미유키 같은 작가들에게 큰 영감을 줬다고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DJ

오늘 가을밤에 어울리는 범죄소설 이야기를 해봤습니다. 범죄소설이라고 해서 스릴 넘치는 재미있는 이야기 정도로 생각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두 권의 책이 다 주제의식이 만만치 않았어요. 


종현

범죄소설이 다루는 영역이 결국에는 인간의 가장 깊은 내면을 파헤치는 거잖아요. 어떻게 한 명의 인간이 다른 인간을 죽게 만들 수 있을까. 이런 부분을 제대로 잘 파헤친 소설은 결코 읽기 만만하지 않겠죠. 카포티의 책이 특히나 그렇습니다.


DJ

범죄소설이나 추리소설에 관심있는 분들에게 또 추천할 만한 책이 있을까요? 


종현

영화가 큰 인기를 끌면서 원작 소설도 주목을 받았는데요. 길리언 플린이 쓴 나를 찾아줘가 있습니다. 국내에는 영화로만 소비된 측면이 있지만 미국에서는 소설도 큰 인기를 끌었거든요. 왜 그런가를 보면, 나를 찾아줘가 주목한 지점이 가정입니다. 낭만과 사랑이 사라진 현대의 가정. 그 우울하고 복잡한 가정 안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사건이죠. 이런 지점에 독자들이 공감하면서 큰 인기를 끄는 것 같아요. 나를 찾아줘가 그랬고 ‘걸 온 더 트레인’이라는 책이 또 그렇습니다. 이 두 권을 한 번 읽어보시는 것도 좋겠네요.


DJ

그렇군요. 범죄소설 이야기를 한참 나눠봤는데요. 마지막 노래는 어떤 건가요? 


종현

김윤아가 부른 이상한 세상의 릴리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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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4 – 김윤아 – 이상한 세상의 릴리스

https://youtu.be/potEQ97XfQ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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