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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Dec 25. 2016

크리스마스에 필요한 두 편의 짤막한 이야기

크리스마스에는 어떤 이야기가 필요할까요. 

크리스마스를 맞아 이번 방송에서는 크리스마스를 다룬 두 편의 짤막한 소설을 준비했습니다.

로맹 가리의 <벽>과 폴 오스터의 <오기 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입니다.

TBS 교통방송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 '달콤한 밤 황진하입니다'의 책 소개 코너 '달콤한 서재'입니다.


>방송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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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서재 (With 책밤지기 이종현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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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메리 크리스마스!

귀로 읽는 책 이야기 달콤한 서재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해볼까요?


종현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겠죠. 하루종일 지겹게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들으셨겠지만, 조금만 더 참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DJ

크리스마스를 다룬 소설인가요? 


종현

맞습니다. 크리스마스를 다룬 두 편의 단편소설을 준비했습니다. 다만 크리스마스를 생각했을 때 흔히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죠. 스크루지 같은 어른을 위한 동화. 이런 이미지와는 조금 다른 소설들을 골라봤습니다.     


DJ

평범하지 않은 크리스마스 이야기. 첫 번째 책부터 소개해주세요.     


종현

먼저 소개해드릴 책은 로맹 가리가 쓴 <벽>이라는 단편입니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라는 소설집에 들어 있고요. 부제가 ‘짤막한 크리스마스 이야기’입니다.     


DJ

먼저 로맹 가리에 대해서부터 간략하게 소개해주세요. 프랑스 소설가죠?     


종현

맞습니다.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가 프랑스의 공쿠르상인데요. 공쿠르상은 한 작가에게 두 번 주지 않는 규칙으로도 유명합니다. 그런데 로맹 가리는 공쿠르상을 두 번 받았죠.     


DJ

어떻게 가능했던 거죠?     


종현

로맹 가리는 여러 개의 가명을 쓰기도 했거든요. 에밀 아자르라는 이름으로도 작품 활동을 했는데 그중에서 자기 앞의 생이라는 작품이 공쿠르상을 타기도 했습니다. 이게 1975년인데요. 로맹 가리는 1956년에도 <하늘의 뿌리>라는 작품으로 공쿠르상을 받은 적이 있었죠. 에밀 아자르가 로맹 가리였다는 건 로맹 가리가 죽고 난 이후에 밝혀져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DJ

그렇게 유일하게 공쿠르상을 두 번 받은 작가가 됐군요.     


종현

오늘 소개해드리는 벽이 실린 단편집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는 미국 최우수 단편소설상을 받기도 했고요. 개인사도 파란만장한데 할리우드의 여배우였던 진 세버그와 열렬한 사랑을 하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진 세버그가 먼저 죽고 그로부터 딱 1년 뒤에 로맹 가리도 권총 자살을 했고요.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책도 따로 나와 있을 정도로 세기의 사랑에 꼽힙니다.     

DJ

소설가들은 인생사도 소설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럼 노래 한 곡 듣고 로맹 가리의 단편 <벽>에 대해서 자세하게 이야기해볼게요. 어떤 노래 들을까요?     


종현

밴드 에이드 20의 do they know it’s christmas? 로 준비했습니다. 세계적인 뮤지션들이 수단 지역의 어린이들을 돕기 위해 만든 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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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1 – Band Aid 20 – Do they know it’s christmas?

https://youtu.be/-w7jyVHocT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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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로맹 가리의 단편집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에 실린 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이야기해볼까요어떤 소설인가요?


종현  

부제가 짤막한 크리스마스 이야기인데요. 부제처럼 굉장히 짧은 소설입니다. 줄거리도 간단합니다. 화자는 소설가인데요. 청소년들이 읽는 신문에 짧고도 교훈적인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써달라는 원고 청탁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려운 거죠.


DJ

신문에 실을 짧고 멋지고 교훈적인 크리스마스 이야기. 오 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이 생각나는 데요.     


종현  

바로 그겁니다. 세상의 어느 작가가 오 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뛰어넘을 크리스마스에 대한 단편을 쓸 수 있겠어요. 농구 좀 한다고 하는 사람한테 가서 마이클 조던보다 멋지게 해봐. 이렇게 말하는 거랑 다를 바가 없는 거죠.      


DJ

불가능에 도전하는 거군요. 벽에 나오는 소설가도 같은 고민을 하고요.     


종현

그래서 소설의 화자가 친구를 찾아가서 고민을 털어놔요. 크리스마스에 대한 이야기가 생각이 안 난다고 하소연하는 거죠. 그러자 이야기를 들어주던 친구가 자기가 아는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합니다.      


DJ

어떤 이야기일까요?


종현

친구가 의사거든요. 런던 경찰국 소속 법의학자로 일할 때의 일입니다. 사건이 생긴 건 12월 31일. 한 해의 마지막 날이죠. 모든 사람이 가족과 함께 따뜻하게 보내야 할 날인데요. 바로 그 날 새벽에 사망 사건이 접수된 겁니다. 아주 허름한 동네의 단칸방에서 스무 살 정도의 젊은 남자가 목을 매서 죽은 거죠.     


DJ

무슨 이유였나요? 


종현

침대 옆 탁자에 빼곡하게 적은 유서가 있었습니다. 의사는 불쌍한 청년이 도대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궁금해서 그 유서를 읽어요. 그 청년은 가족도, 친구도, 돈도 없었죠. 그러다 크리스마스가 되니까. 모두가 사랑과 우정을 원하잖아요. 기적을 바라는 거죠. 이 청년도 그렇게 기적을 바라면서 옆방에 사는 아름다운 처녀에게 마음을 빼앗깁니다. 청년의 유서에는 그녀가 어찌나 예쁜지 감히 말도 걸 수가 없었다고 적혀 있어요.      


DJ

그렇게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고백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요.     


종현

그랬으면 좋았을 텐데요. 유서에는 옆방에서 들려오는 독특한 소리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DJ

독특한 소리라면? 


종현

침대가 삐걱대고 옆방 처녀의 신음소리가 들려온 겁니다. 그런 소리가 적어도 한 시간에 걸쳐서 이어졌다고 유서에 적혀 있어요. 그렇지 않아도 고독과 낙담에 꺾여 있던 청년에게 그 소리가 최후의 일격이 된 거죠. 힘든 세상에서도 유일한 희망이었던 옆방 처녀의 신음소리를 듣고서는 참을 수가 없었던 겁니다. 결국에는 목을 매는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한 거고요.     


DJ

안타까운 이야기네요옆방 처녀는 그 사실을 몰랐군요


종현 

전혀 몰랐죠. 그런데 의사가 호기심을 가집니다. 도대체 옆방 처녀가 얼마나 예뻤길래 청년이 이런 선택을 한 걸까. 궁금했던 거죠. 그래서 집주인을 불러서 옆방의 문을 두드립니다. 옆방에서 일어난 자살 사건에 대한 조사를 핑계로 대고요. 그런데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여자는 나오지 않습니다. 의사가 체념하고 돌아가려고 할 때 집주인이 열쇠를 가져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반전이 일어나죠.     


DJ

반전이라면? 


종현

그녀도 죽어 있었던 겁니다. 그것도 독약을 먹고 끔찍한 고통에 몸부림치다 죽은 거죠. 그녀의 침대 옆에도 유서가 있었어요. 죽은 이유는 고통스러운 고독을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는 거였죠. 그게 청년이 들었던 침대가 삐걱대는 소리와 신음소리의 정체였습니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두 명의 청춘남녀가 고독에 삶의 희망이 꺾인 거죠.     


DJ

얇은 벽 하나가 비극을 불렀네요. 


종현

이런 벽이 어디에나 있죠. 소통을 방해하고 진심을 오해하게 만드는 벽. 크리스마스가 이런 벽을 허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DJ

노래 한 곡 듣고 다음 책 이야기할게요. 


종현

스티비 원더와 안드라 데이가 부른 someday at christmas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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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2 – Stevie Wonder, Andra Day - someday at christmas

https://youtu.be/MaA7B9cu4k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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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책 속의 크리스마스. 두 번째로 소개해 줄 단편소설은 뭔가요?     


종현

로맹 가리가 유럽을 대표하는 소설가였으니까요. 이번에는 미국을 대표하는 소설가로 준비했습니다.     


DJ

미국을 대표하는 소설가. 누굴까요?     


종현

폴 오스터입니다. 현대 미국 소설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이고요. 오늘 소개해드릴 책은 폴 오스터가 쓴 <오기 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입니다.     


DJ

오기 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오기 렌은 사람 이름이겠죠?


종현

맞습니다. 이 책도 앞에 소개한 로맹 가리의 <벽>과 비슷한 형식입니다. 폴이라는 소설가가 화자로 나오고요. 역시나 마찬가지로 신문사로부터 크리스마스에 신문에 내보낼 짧은 이야기를 써달라는 요청을 받습니다.

DJ

오 헨리에게 또 다른 도전자가 생겨군요. 소설 속 화자의 이름이 폴이라면 폴 오스터가 실제로 겪은 일을 소설로 쓴 건가요? 


종현

소설의 내용 자체는 폴 오스터의 상상이죠. 다만 소설의 배경이 미국 뉴욕의 브루클린이거든요. 폴 오스터가 브루클린에서 굉장히 오랫동안 살았는데 소설 속에 자기가 자주 다녔던 공간을 배치합니다. 이야기 자체는 작가의 상상력이지만 배경은 현실의 것을 가져온 거죠. 


DJ

오기 렌이라는 사람도 허구의 인물이겠군요. 이 사람이 로맹 가리의 벽에 나오는 의사 같은 역할을 하나요?     


종현

맞습니다. 오기 렌은 폴이 자주 다니는 시가 가게에서 일하는 사람이고요. 사진을 찍는 취미를 가지고 있죠. 수십 년 동안 브루클린의 한 공간을 매일 한 장씩 사진으로 찍어서 남기는 독특한 취미를 가지고 있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DJ

같은 장소를 수십 년 동안 매일 찍는다정말 독특한 취미네요.


종현

그렇죠. 폴이 그 사진들을 보게 되는데요. 처음에는 크게 흥미를 못 느끼다가 수천 장의 사진을 보던 중에 자신이 놓치고 있던 게 뭔지 깨닫게 돼요. 같은 장소를 찍은 건데도 거리의 풍경이나 사람들의 모습이 조금씩 달라지는 걸 파악한 거죠. 아주 느리지만 조금씩 변화가 있는 거예요. 사실 우리 삶이 다 그렇죠. 아주 천천히 그렇지만 분명히 앞으로 나아가는 거니까요.     


DJ

어쩐지 사진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그러면 교통정보 듣고 와서 폴 오스터가 쓴 오기 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계속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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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3 – 스웨덴 세탁소 – Just Christmas

https://youtu.be/hnye-0lEJ1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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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폴 오스터의 단편 오기 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오기 렌이 폴에게 어떤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들려주는 건가요? 


종현

폴이 신문에 보낼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놓고 고민하니까 오기 렌이 수십 년 전에 자신이 카메라를 얻게 된 이야기를 해줍니다. 그때 오기 렌은 동네마트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요. 어느 날 흑인 소년이 마트에서 책을 훔치는 걸 발견하고 쫓아갑니다. 결국 잡지는 못했는데 대신에 소년이 떨어뜨린 지갑을 줍죠. 처음에는 경찰에 신고할까 하다가 소년이 워낙 가난해 보였고 훔친 것도 값나가는 게 아니었으니까 그냥 넘어가요. 돈 한 푼 없이 신분증만 든 지갑은 그냥 집에 두고 잊어버리죠. 


DJ

그러다가 크리스마스가 된 거군요. 


종현

크리스마스 아침이 된 거죠. 할 일 없이 집에 누워 있는데 소년의 지갑이 보여요. 그래서 크리스마스에 좋은 일 한 번 하자고 마음먹고 신분증에 적힌 주소를 찾아갑니다. 아주 허름한 집이었는데 거기에서는 소년이 아니라 나이가 지긋한 할머니 한 명이 나옵니다. 


DJ

소년의 할머니였나요? 


종현

맞습니다. 그런데 눈이 멀어서 앞이 안 보여요. 그런데 크리스마스에 젊은 남자가 자길 찾아오니까 손자라고 생각하고 반기는 겁니다. 오기 렌은 거기서 자기는 손자가 아니라고 하지를 못하고요. 그렇게 좁고 더러운 집에서 오기 렌과 앞이 안 보이는 할머니가 크리스마스를 보내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요. 오기 렌이 마트에서 먹을 걸 가져와서 조촐한 저녁식사도 하고요.      


DJ

처음 보는 할머니와 크리스마스 저녁을 보내는 거네요. 


종현

맞아요. 그런데 집 한 구석에 보니까 포장을 뜯지도 않은 카메라 여러 대가 있는 거예요. 소년이 훔친 카메라를 거기에 쌓아둔 거죠. 오기 렌은 집을 나올 때 거기 있던 카메라 한 대를 가지고 나옵니다. 그리고는 이후에 수십 년 동안 매일 같이 사진을 찍기 시작한 거죠. 아주 조금씩 변해가는 세상의 모습을요.     


DJ

할머니는 어떻게 되나요? 


종현

몇 달 뒤에 오기 렌이 다시 찾아가지만 할머니는 없어요. 아마도 죽은 거겠죠. 할머니의 마지막 크리스마스를 손자 역할을 하며 함께 해준 거죠.


DJ

뭔가 별 것 아닌 이야기인데도 감동적인 부분이 있네요.


종현

앞에 로맹 가리의 소설에서는 아주 얇고 허름한 벽 하나 때문에 청춘남녀가 목숨을 끊게 되잖아요. 주변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였으면, 서로의 벽을 허물 아주 조금의 용기와 관심만 있었으면 막을 수 있는 일이었죠. 폴 오스터의 소설에 나오는 오기 렌이 한 일이 바로 그 아주 조금의 용기를 낸 겁니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사실 세상을 바꾸는 건 바로 그 아주 조금의 용기, 별 것 아닌 행동인 거죠.     


DJ

오기 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네요.     


종현

스모크라는 제목의 영화로 국내에도 개봉을 했습니다. 폴 오스터가 직접 각본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고요. 베를린 영화제에서 상을 받기도 했고요. 소설과는 조금 다른 내용이지만 메시지는 이어집니다.     


DJ

어떤 메시지인가요? 


종현

우리 모두는 외롭고 고독한 존재들이죠. 그렇기에 우리는 서로를 안아줄 수 있다는 거죠. 처음부터 완벽했으면 내 옆을 채워줄 누군가가 필요하지도 않았을 테니까요. 이런 게 크리스마스에 필요한 메시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DJ 

따뜻한 크리스마스를 바라면서 마지막 곡 소개해주세요.     


종현

재주소년의 눈 오던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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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4 – 재주소년 – 눈 오던 날

https://youtu.be/VWJGVZTrJw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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