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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May 20. 2018

책으로 떠나는 골목길 산책

tbs 교통방송 심야라디오 프로그램 '황진하의 달콤한 밤'의 책 소개 코너 '소설 마시는 시간'입니다.

매주 토요일에서 일요일 넘어가는 자정에 95.1MHz에서 들으실 수 있어요.


5월 6일 스물여섯 번째 방송은 책으로 떠나는 골목길 산책이라는 주제입니다.


↓소설 마시는 시간 멘트↓


ann 책 속에 담긴 인생의 지혜를 음미해 보는 <소설 마시는 시간> 오늘은 어떤 주제로 이야기 나눠볼까요?

요즘 날씨가 정말 좋잖아요. 아마도 1년 중에 가장 걷기 좋은 날씨가 아닐까 싶어요. 이렇게 좋은 날씨에는 집에 가만히 있으면 어쩐지 억울하죠. 어디든 나가서 걸어야 할 것 같고, 산책해야 할 것 같은 그런 날씨. 그렇다고 산을 가는 건 부담스럽고 집에 있긴 아쉽고. 그런 분들을 위해 오늘 방송을 준비해봤습니다.     


ann 산은 부담스럽고집에 있는 건 아쉽다면 어디를 가야 할까요?     

서울에 정말 많은 산책길이 있거든요. 그중에서도 오늘은 두런두런 맘 편하게 돌아볼 수 있는 골목길에 대한 이야기를 준비해봤습니다.      


ann 그러고 보면 요즘엔 정말 무슨무슨 길이라고 해서 많이 생겼잖아요책밤지기가 좋은 골목길은 어딘가요?     

저는 회사가 광화문이니까 정동길을 자주 걷거든요. 서촌이나 북촌 한옥마을이 있는 길도 좋아하고요. 이따 소개해드릴 곳이기도 한데요. 부암동도 산책이나 미술관 나들이를 하러 자주 찾는 곳이기도 하고요.     


ann 정동부암동... 다 너무 좋은 곳들이죠요즘 같은 봄날에 다니기에 딱 좋은 골목길들이기도 하고요오늘은 서울의 골목길들을 다룬 책인가요?     

골목길에 대한 두 권의 책을 준비했는데요. 먼저 서울의 골목길을 다룬 책을 소개해드리고, 그 뒤에 서울이 아닌 지방 도시의 골목길을 다룬 책을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ann 그럼 먼저 서울의 골목길을 다룬 책어떤 책인가요?     

최석호 교수가 쓴 <골목길 역사산책>이라는 책입니다. 지난달에 나온 따끈따끈한 새 책인데요. 최석호 교수는 우리의 골목길에 대한 책을 여러 권 썼거든요. 그중 서울의 골목길만 다룬 책입니다.     

ann 골목길 역사산책이라고 하면역사에 초점을 맞춘 거네요.     

네. 이 책에서 다루는 서울의 골목길은 모두 다섯 곳인데요. 부암동 무릉도원길에서 시작해서 정동 역사길, 북촌 개화길, 서촌 조선중화길, 동촌 문화보국길로 이어집니다. 부암동, 정동, 북촌, 이런 이름은 익숙하실 거예요. 그 뒤에 붙은 이름은 저자가 길의 특징에 맞춰서 붙여본 건데요. 왜 이런 별칭이 붙게 됐는지를 자세하게 풀어낸 책이라고 보시면 돼요.     


ann 그런데 골목길의 다양한 면에 초점을 맞춘 책이 있을텐데역사에 초점을 맞춘 책을 고른 이유가 있을까요?     

우리가 이런 골목길을 많이 다니잖아요. 서촌이나 북촌이나 부암동이나 이제는 아기자기한 카페나 식당도 생기고, 데이트를 위해 찾는 사람들도 많죠. 그런데 정작 이런 길들이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고, 왜 길이 생겼는지까지 알고 찾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예요. 길이라는 건 사람들이 오랜 시간 오며가며 생긴 거잖아요. 그 역사를 알지 못하면 아무리 자주 찾아가도 길을 제대로 걸었다고 할 수 없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즐겨 찾는 골목길들의 역사를 훑어보기 위해 책을 골라봤습니다.      


ann 노래 한 곡 듣고 자세히 이야기해보자.     

이지형의 산책입니다.


M1 이지형 산책

https://youtu.be/vCsSRhV6WGM


ann 서울의 골목길 탐방. <골목길 역사산책이야기해보고 있습니다그럼 구체적으로 서울의 골목길 이야기를 나눠볼까요어떤 골목길 이야기가 제일 재밌었나요?     

제가 요즘 한창 좋아하는 동네가 북촌이랑 부암동이거든요. 정동이나 서촌은 너무 자주 다니다보니까 조금 재미가 덜한 게 있었는데, 북촌이랑 부암동은 아직 모르는 길이나 장소가 많다 보니까 훨씬 다니는 재미가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책에서도 북촌이랑 부암동 길을 소개하는 부분을 더 유심하게 읽었거든요. 그랬더니 그냥 길만 걸어다닐 때는 전혀 알 수가 없었던 많은 이야기를 새로 접할 수 있었죠.     


ann 어떤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던가요?     

일제 시대죠. 1920년대에 들어서 서울의 인구가 갑자기 증가하기 시작해요. 1920년에 서울 인구가 25만명이었는데 1930년에는 35만명으로 늘었다고 하거든요. 일본인들이 대거 서울에 들어오면서 생긴 변화죠. 특히나 일본인들이 자기들 집터로 점찍은 곳이 바로 북촌이었다고 해요. 예전부터 북촌은 서울에서도 양반들이 모여 사는 동네였거든요. 일본인들이 북촌에 집을 짓기 시작하니까 전통적인 한옥은 사라지고, 서양식 주택이 늘어나게 된 겁니다.

그러니까 이걸 못 마땅하게 본 조선의 양반과 부동산 개발업자들이 돈을 모아서 대규모로 한옥을 지었다고 해요. 이게 바로 북촌한옥마을의 출발점인 거죠. 이때 한옥마을 개발에 적극적이었던 사람 중에 정세권이라는 분이 계셨다고 해요. 일제 강점기 시절에 경성 3왕의 한 명이었다고 하거든요. 광산왕 최창학, 유통왕 박흥식과 함께 정세권 선생은 건축왕으로 이름을 날렸죠.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랑 다르게 정세권 선생은 독립 운동에 자금을 댔고 이 때문에 말년에 계속 고생을 해야 했고요. 우리가 북촌한옥마을을 보면서 아름다운 골목길에 감탄하지만, 이 한옥마을이 일제에 맞서기 위해 지어진 곳이고, 이 마을을 개발한 사람이 독립운동을 돕다 고초를 겪었다는 뒷이야기는 잘 모르잖아요. 이런 이야기를 알면 북촌을 걸을 때 훨씬 감회가 남다를 수 있지 않을까요.     


ann 부암동에는 또 어떤 이야기가 있나요?     

조선시대 그림 중에 안견의 <몽유도원도>라는 그림이 정말 유명하죠. 세종의 셋째 아들이었던 안평대군의 꿈에 나온 풍경을 안견이 그린 건데요. 바로 이 몽유도원도에 나오는 풍경이 실제로 있었던 곳이었다고 해요. 안평대군이 부암동 인왕산 북벽 기슭을 보고는 자신의 꿈에 나온 풍경과 비슷하다고 해서 그곳에 별장을 짓거든요. 물론 지금은 그 풍경이 남아 있지는 않지만, 부암동을 걸으면서 수백 년전 조선의 양반들이 꿈꿨던 유토피아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는 거죠.     


ann 부암동에는 정말 다양한 볼거리가 많지 않나요?     

그렇죠. 부암동을 가면 꼭 들러야 할 곳이 몇 군데 있는데요. 그중 하나가 석파정이죠. 흥선대원군의 별장이었는데요. 전통적인 한옥에 중국식 건축 양식을 접목해서 굉장히 독특한 느낌을 주는 곳이거든요. 정문 현판 아래에는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가 걸려 있고요.

세검정도 부암동에서 꼭 들러야 할 곳 중 하나죠. 칼을 씻었다는 이름의 정자인데요. 광해군을 몰아낸 인조반정이 시작된 곳이라고 합니다. 예전 사진을 보면 정말 정자 아래에 계곡물이 있어서 풍류를 더했는데, 지금은 물이 모두 말라버렸죠. 예전 기록을 보면 다산 정약용이 폭우가 몰아칠 기미가 보이니까 친구들을 모아서 세검정으로 달려갔다고 해요. 계곡물이 쏟아지는 광경을 세검정에 앉아서 보면서 시를 읽으려고 했다는 건데요.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풍경이니 이럴 때는 그저 조선시대 선비들이 부럽기만 한 거죠.

이밖에도 박노해 시인의 사진전이 열렸던 라 카페 갤러리나 김환기의 그림을 전시하고 있는 환기미술관도 부암동 산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소들이죠.     


ann 역사를 알고 나면 확실히 산책이 훨씬 풍성해질 것 같은데요.     

지금 내가 바라보는 건물이나 풍경에 어떤 역사가 있고,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이해하는 건 정말 중요한 일인 것 같아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도 있잖아요. 이 말이 그냥 비유가 아닌 거죠. 정말 우리가 아는 만큼만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서울처럼 오랜 역사를 가진 도시는 더욱 그렇겠죠. 골목길 하나를 걸어도 수백 년전에도 누군가가 걸었던 길일 수 있는 거잖아요. 주말에 서울의 골목길을 걸으실 때는 미리 어디에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 알아보고 집을 나서는 건 어떨까 추천드려요.     


ann 노래 한 곡 듣고 다음 책 만나볼게요.     

어반자카파의 라이크 어 버드입니다.


M2  어반자카파 – like a bird

https://youtu.be/MgrQXgARh7M


ann 골목길 산책을 도와줄 두 권의 책이번에는 어떤 책인가요?     

서울의 골목길을 걸어봤으니 이번에는 서울을 벗어나서 지방으로 가볼까 합니다.      


ann 서울의 골목길은 여기저기 정보도 많고 가본 사람도 많은데확실히 지방의 골목길지방의 산책길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정보가 부족하죠     

직접 가볼 기회가 별로 없으니까요. 이번에 소개해드릴 책은 <골목길 근대사>라는 책인데요. 이 책에도 앞에서 소개해드린 정동이나 서촌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요. 그리고 그 뒤에 목포, 부산, 증도, 이렇게 세 곳의 지방도시의 길 이야기가 나오거든요. 이번에는 이 지방도시의 골목길, 산책길에 대해서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ann 목포부산증도목포나 부산이야 다들 익숙할 텐데 증도는 조금 생소한 것 같아요.     

증도는 전라남도 신안군에 있는 섬인데요. 목포에서 서쪽으로 50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고, 지금은 증도대교가 있어서 차로도 드나들 수 있는 섬이 됐어요. 증도는 그렇게 크지 않은 섬인데도 불구하고 아는 사람은 제법 많이 아는 유명한 섬이거든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일단 보물섬으로 유명해요. 1970년대에 증도 근처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던 어부들이 그물을 끌어올렸는데 거기에서 고려시대 도자기들이 우르르 발견된 거죠. 700년 동안 바닷속에 묻혀 있던 유물이 2만점 넘게 발굴되면서 그야말로 보물섬이라는 이름을 얻게 됐고요.

아시아 최초로 슬로시티에 선정된 섬이기도 합니다. 공해 없는 자연 속에서 전통문화를 잘 보존하는 지역에 주어지는 이름이 슬로시티거든요. 그만큼 증도의 자연 환경과 문화가 더할 나위 없이 좋다는 의미겠죠.     

ann 슬로시티 증도에서의 산책길을 소개해주는 건가요?     

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역사와 관련된 테마를 가지고 산책길을 소개해주는 컨셉이거든요. 증도도 마찬가지인데요. 증도에서는 문준경이라는 기독교 순교자의 자취를 따라가는 산책길을 안내해줘요. 문준경은 일제 시대에 증도에 최초의 교회를 설립한 사람인데요. 한국 전쟁 때 북한군이 증도를 점령하고 기독교인을 박해하는 과정에서 총살을 당해서 죽게 됩니다. 이 문준경의 자취가 남아 있는 곳들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증도의 아름다운 풍경도 함께 즐길 수 있는 좋은 산책길이 될 수 있다고 저자들이 소개해줍니다.     


M3 radiohead – high and dry

https://youtu.be/7qFfFVSerQo


ann 골목길 산책을 도와줄 책들 만나보고 있어요이번에는 지방 도시의 골목길들을 돌아보는 <골목길 근대사이야기 중인데요목포와 부산도 빼놓을 수 없겠네요?

그렇죠. 부산은 특히나 서울만큼이나 다양한 산책길이 있는 도시잖아요. 그 많은 길 중에 어떤 길을 소개할지 궁금했는데, 이 책은 역사라는 키워드가 있다보니까 부산과 목포를 같은 컨셉에서 접근을 해요.     


ann 부산과 목포를 같은 컨셉으로 본다면어떤 식인거죠?     

부산과 목포는 모두 우리 근대사의 시작을 알린 개항장이 있었던 곳이잖아요. 새로운 문물과 문화를 받아들인 통로였죠. 바로 그 개항장이 있었던 일대의 골목길들을 중심으로 부산과 목포를 소개합니다.     


ann 부산과 목포는 항구 도시니까 그런 특징을 살린 거네요     

그렇죠. 그리고 생각해보면 부산이나 목포나 항구를 중심으로 오래된 거리들이 많거든요. 부산을 예로 들면 부산역 주변에 청관거리, 영주동 산복도로, 40계단, 용두산공원, 왜관거리, 보수동 헌책방골목, 깡통시장, 자갈치시장으로 이어지는 길이 모두 부산 개항장길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거죠.     


ann 부산역 앞에 차이나타운이 있는 그 거리를 말하는 거죠?     

맞습니다. 맛집들이 많잖아요. 저도 부산 가면 늘 거기에서 첫 끼 식사를 하는데요. 지금의 차이나타운이 있기 전에는 부산시랑 상해시가 자매결연을 맺고 거리를 조성해서 상해거리라고도 불렀고요. 한국전쟁 직후에는 미군을 상대로 한 유흥업소가 많아서 텍사스거리라고도 불렀다고 하고요. 훨씬 더 전인 조선시대에는 또 청나라 상인들이 많이 지내서 청관거리라고도 불렀다고 합니다.

여기서 시작해서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 나온 40계단, 보수동 헌책방거리까지 모두 채비만 든든하게 하면 걸어서 돌아볼 수 있는 거리거든요. 수십 년 전의 역사와 풍경들을 간직한 거리를 걷는 재미가 쏠쏠하죠. 마지막에는 자갈치시장에 도착하니까 하루동안 걷느라 지친 몸을 맛있는 음식으로 달래주면 되겠죠.     


ann 목포 개항장길은 어떤가요?     

목포는 역시 유달산이죠. 목포역 바로 근처에 유달산 노적봉이 있거든요. 역에서 지근거리에 바다와 도심을 모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건 굉장히 드문 경우거든요. 노적봉에 올라서 한 번 숨을 돌리고, 목포 개항장 일대 산책을 시작하는 게 가장 좋다고 합니다. 노적봉을 내려오면 햇볕 따뜻한 언덕 마을이라는 뜻의 다순구미 마을이 나와요. 다순구미 골목길은 진짜 시간 여행을 한 것처럼 1970년대, 80년대의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으니까요, 그 자체로 굉장히 흥미로운 산책길이죠. 최근에는 정부에서도 관광지로 지역을 개발하려고 시화골목을 만들고, 젊은 사람들의 취향에 맞는 카페 같은 걸 만들고 있고요. 아직은 과하지 않고 딱 적당한 수준으로 보여서 저는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다순구미에는 영화 <1987>에서 김태리가 사는 곳으로 나오는 ‘연희네 슈퍼’가 실제로 있거든요. 영화 촬영지를 돌아보는 재미도 있겠죠.     


M4 적재 – 별 보러 가자

https://youtu.be/JgyhbuUTfJ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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