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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Nov 25. 2018

조제는 언제나 그책을 읽었다

영화 속 책들

tbs 교통방송 심야라디오 프로그램 '황진하의 달콤한 밤'의 책 소개 코너 '소설 마시는 시간'입니다.

매주 토요일에서 일요일 넘어가는 자정에 95.1MHz에서 들으실 수 있어요.


11월 11일 쉰 세번째 방송은 영화에 나온 책들을 소개했다.


↓소설 마시는 시간 멘트↓


ann 책 속에 담긴 인생의 지혜를 음미해 보는 <소설 마시는 시간> 오늘은 어떤 주제로 이야기 나눠볼까요?

책을 만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잖아요. 서점에 갈 수도 있고, 신문이나 뉴스를 통해서 신간을 접할 수도 있고, 요즘에는 소셜미디어에서도 책이나 시구를 소개하는 글들이 많죠. 제 생각에 책을 재밌게 읽을 수 있는 또 다른 방법 중 하나가 영화나 드라마에 나온 책을 찾아 읽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ann 영화 속 책작년에도 저희 방송에서 한 번 다룬 적이 있었죠.

맞습니다. 복습하는 차원에서 작년에 소개해드린 영화 속 책을 좀 말씀드리면요.

영화 매트릭스에서 주인공 네오가 디스크를 책 속에 숨겨두는데 바로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이라는 제목의 책이었습니다. 프랑스 철학자인데 시뮬라크르라는 개념이 바로 매트릭스 세계관을 설명하는 철학적인 개념이거든요.

그리고 멜 깁슨이 나온 컨스피러시라는 영화에는 호밀밭의 파수꾼이 나오고요. 멜 깁슨이 호밀밭의 파수꾼이라는 책을 볼 때마다 사게되는 강박증이 있는 인물로 나오죠.

그리고 홍상수 영화들에도 책이 나오는데요. 당신자신과 당신의것이라는 영화에는 카프카 단편집이 나오고, 자유의 언덕이라는 영화에는 요시다 겐이치의 시간이라는 책이 등장합니다.

마지막으로 일본 영화죠. 러브레터에 나오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ann 이야기 들으니까 작년에 방송에서 소개했던 내용들이 새록새록 생각나네요.

그만큼 영화에 책이 많이 등장하는 것 같아요. 영화에 나오는 소품들은 하나하나가 다 의미를 가지고 있잖아요. 아무 생각없이 등장하는 소품은 없거든요. 영화에 나오는 책을 찾아서 읽어보면 영화를 보는 시선이 훨씬 넓어지고 풍성해지죠. 영화 속 주인공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겠구나, 이런 데까지 생각이 미치면 훨씬 재밌게 영화를 볼 수 있는 거죠.

ann 영화가 마음에 들면 영화 속에 나온 책을 한 번 찾아읽고 나서 다시 영화를 한 번 더 보는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겠군요.

영화도 책도 볼 때마다 새로운 부분들을 찾을 수 있거든요. 말씀해주신 방법대로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ann 그럼 오늘은 어떤 영화와 어떤 책을 소개해주실 건가요?

작년에는 제가 여기저기서 찾아본 내용을 바탕으로 소개해드렸는데요. 오늘은 관련된 책이 한 권 있어서 그 책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좀 해드릴까 합니다. 방송작가를 지낸 이하영씨가 쓴 <조제는 언제나 그책을 읽었다>라는 제목의 책인데요. 저자가 감명깊게 본 영화 속에 나오는 책 이야기를 찾아서 정리해놓은 책이거든요. 나온지가 조금 됐지만 책에 등장하는 영화들은 다 주옥같은 작품들이라 지금 소개해도 무방할 것 같아서 가져와봤습니다.


ann 영화 속 책 이야기어떤 영화와 책이 있을지 궁금하네요노래 한 곡 듣고 이야기해볼게요.     

그린데이의 wake me up when september ends입니다.


M1 Green day - wake me up when september ends

https://youtu.be/rdpBZ5_b48g


ann 영화 속 책이야기이하영 작가의 <조제는 언제나 그책을 읽었다>를 통해서 살펴보고 있어요아무래도 책의 제목에 나오는 그 영화부터 만나봐야겠죠?     

역시 그래야겠죠. 책의 제목에 나오는 ‘조제’는 이누도 잇신 감독의 2004년작인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 나오는 주인공의 이름이거든요. 저도 대학생때 이 영화를 처음 보고 완전히 빠져서 몇 번이고 돌려본 기억이 있는데, 아마 많은 분이 좋아하는 영화로 꼽을 것 같아요.


ann 조제라는 주인공의 이름이 사실은 책에 나오는 이름이죠?

맞습니다. 원래 영화 속 여주인공의 본명은 구미코인데요. 스스로를 조제라고 불러요. 조제는 하반신이 마비돼서 휠체어가 아니면 밖으로 나갈 수가 없거든요. 할머니랑 둘이 사는데 거동이 힘드니까 거의 집에 누워서 책만 읽죠. 그런 여주인공이 가장 좋아하는 책이 바로 프랑수아즈 사강의 ‘한 달 후 일 년 후’라는 소설입니다.


ann 주인공은 1편밖에 없었는데 남자주인공이 속편을 구해다주면서 둘의 사랑이 시작되죠.

맞습니다. 책이 사랑의 메신저 역할을 한 건데요. 뭐 영화 속에서는 그 사랑이 씁쓸하게 끝이 나지만요. 오늘은 영화 속 책 이야기니까요. 왜 구미코가 그 책에 그렇게 빠졌을까를 보면요. 자신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열망 같은 게 아니었을까 싶어요. 소설의 여주인공 이름이 조제거든요. 그런데 자신의 모습과는 너무나 다른 소설 속 조제를 보고 자신도 그렇게 되고 싶은 마음에 자기를 조제라고 불러달라고 한 게 아닐까 싶은거죠.


ann 소설 속 조제는 어떤 캐릭터인가요?     

소설 속 조제는 스물다섯의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인데요. 굉장히 씩씩하고 아름답고 부유하고, 말 그대로 다 가진 인물이죠. 조제는 두 명의 남자로부터 사랑을 받는데요. 결국 자신이 원하는 사람을 택하고 미래를 그리는 똑똑하고 결단력 있는 인물로도 그려집니다. 

ann 집에서 나갈 수 없었던 구미코를 닮고 싶은 마음이 어땠을지 상상이 가네요.

그럼에도 영화와 이 소설을 같이 읽어보면 두 캐릭터가 어딘가 닮아 있다는 것도 느낄 수 있는데요. 줄거리만 보면 영화 속 구미코는 너무 불쌍하게만 보이잖아요.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 혼자가 된 구미코가 1인분의 밥을 짓고, 전동휠체어를 타고 씩씩하게 세상 밖으로 나가는 모습이 나오거든요. 사랑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구미코는 홀로서기에 성공한 거죠. 소설 속 조제도 마찬가지거든요. 사랑하던 남자와 이별할 때 소설 속 조제는 정말 쿨하고 당당한 자세예요. 사랑이 끝나고 난 이후에는 구미코도 조제처럼 당당하게 세상 앞에 홀로설 수 있게 된 거죠.     


ann 영화만 보면 이런 맥락이 잘 와닿지 않았을 수도 있겠어요.     

그런 부분이 영화 속에 나오는 책을 함께 읽었을 때 얻을 수 있는 점이죠. 조제는 언제나 그책을 읽었다의 저자분이 이런 말을 했어요.

“영화에서 책은 사건의 복선으로 쓰이기도 하고, 주인공의 취향과  시대적 분위기를 암시하고, 때로는 주제를 직접적으로 말하기도 하는 제3의 주인공이다. 무엇보다 책은 영화 속 인물들과 함께 웃고, 울고, 아파하고, 성장하는 동반자다.”

제3의 주인공을 모른 채로 영화를 볼 수는 없겠죠. 영화를 볼 때는 꼭 영화 속에 등장하는 책도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ann 노래 한 곡 듣고 다음 영화와 책 만나볼게요.     

김민규의 침묵입니다.


M2 김민규(스위트피) - 침묵

https://youtu.be/9Th8s21Vaxc


ann 영화 속에 나오는 책이하영 작가의 <조제는 언제나 그책을 읽었다통해서 만나보고 있습니다이번에는 어떤 영화와 책을 만나볼까요?

이번에는 SF 액션영화인데요. 크리스천베일이 출연한 이퀼리브리엄이라는 영화가 2002년에 나온 적이 있거든요. 혹시 기억하세요?


ann 국민들의 감정을 통제하는 미래 사회가 배경인 영화였죠?

맞습니다. 감정을 억제하는 약을 먹어야 하는 사회가 배경인데요. 여기에 저항하는 반군 집단이 있죠. 음악, 소설 같은 예술은 감정 없이는 감상할 수 없잖아요. 정부에서는 이런 예술작품을 찾아서 없애려 하고, 반군은 거기에 저항하는 거죠. 주인공으로 나오는 크리스천 베일은 반군을 처단하는 클레릭이라는 일을 하는데요. 어느날 자기 동료가 몰래 책을 읽는다는 걸 알아차리고 급습을 해요.


ann 동료가 읽던 책은 뭐였을까요?

노벨문학상도 받은 아일랜드의 시인이죠. 예이츠의 시집 ‘갈대밭에 부는 바람’입니다. 크리스천 베일이 나타나자 동료는 시집에서 시를 한 대목 읽어주고 체포되는데요. 이런 대목이에요.

‘나는 가난하여 가진 것이 꿈뿐이라. 내 꿈을 그대 발밑에 깔았습니다. 사뿐히 밟으소서. 그대 밟는 것 내 꿈이오니’


ann 이 시가 주인공의 마음을 흔드는 계기가 됐군요.     

맞습니다. 동료는 총살을 당하지만 주인공은 그 이후로 잠을 잘 때 꿈을 꾸게 되고요. 하루는 반군을 공격하러 나갔다가 전축을 발견하고 베토벤의 교향곡을 듣게 돼요. 그러다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쏟게 되죠. 그러면서 주인공도 전과는 다른 선택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이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라고 하잖아요. 감정을 잃은 인간은 생각도 잃게 되는 거죠. 그걸 찾아주는 계기가 책, 그것도 서정시로 유명한 예이츠의 시집이라는 건 또 굉장히 의미심장한 거죠.     


ann 책이란 왜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처럼 들리기도 하네요.     

책을 읽지 않아도 생각하고 먹고 사는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겠죠. 그렇지만 책을 읽지 않고 그래서 감정이 무뎌진다면 큰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책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를 통해서 감정을 느낄 수 있다면 그대로 상관없겠지만, 책만큼이나 접하기 쉽고 편한 예술도 또 없으니까요.


M3  자이언티 - 눈

https://youtu.be/fiGSDywrX1Y


ann 영화 속 책 이야기해보고 있어요마지막으로 만나볼 영화는 뭔가요?     

역시나 명작이죠. 니콜라스 케이지와 맥 라이언이 나온 ‘시티 오브 엔젤’이라는 영화인데요. 이 영화가 나온지 벌써 20년이 됐더라고요. 20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아름답고 감동적인 그런 영화죠.


ann 니콜라스 케이지가 천사로 나오는 영화죠

맞습니다. 죽은 사람들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하는데요. 그렇다보니까 니콜라스 케이지는 오로지 죽은 사람의 영혼하고만 소통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러던 어느날 의사로 일하던 맥 라이언이 환자를 살리지 못하고 자책하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요. 직접 위로를 건넬 수는 없으니까 맥 라이언의 침대 머리맡에 책을 한 권 가져다 놓습니다.


ann 천사가 건넨 책이라어떤 책이었죠?

헤밍웨이의 ‘파리는 날마다 축제’라는 제목의 책인데요. 이 책은 헤밍웨이가 죽기 얼마 전에 프랑스 파리에서 지낸 젊은 시절을 회상하면서 써낸 일종의 일기 같은 회고록입니다. 이 시절에 헤밍웨이는 아직 돈도 명성도 없어서 찢어지게 가난했는데도 그렇게 행복한 때가 없었다고 회고하거든요. 당시에 파리에 살던 많은 예술인과의 교류, 첫 번째 부인과 아들과 함께한 일상, 매일 들르는 카페에서 먹은 음식에 대한 단상 같은 것들이 담겨 있는 책이고요. 

ann 왜 이 책을 니콜라스 케이지가 고른 걸까요?     

맥 라이언에게 위로가 되는 책이기도 했고요. 그리고 천사인 니콜라스 케이지는 사람을 만질 수도 없고 음식을 먹을 수도 없잖아요. 이 영화에서 니콜라스 케이지는 끊임없이 인간 세상을 직접 손으로 만지고 느끼고 싶어하거든요. 그런데 헤밍웨이의 이 책은 음식의 맛에 대한 굉장히 세세한 묘사가 나오는 거예요. 인간 세상을 만지고 싶은 마음은 바꿔서 말하면 사랑의 대상인 맥 라이언과 닿고 싶고 만지고 싶다는 마음이 아닐까요. 헤밍웨이의 책을 통해서 인간 세상을 경험한 것처럼 맥 라이언에 대한 사랑의 마음도 책을 통해서 전달한 게 아닐까 싶어요.


ann 사랑의 마음을 책으로 전한 거라고 볼 수 있겠네요영화에서 니콜라스 케이지가 사는 곳이 도서관으로 나오던 것도 기억나요.     

맞아요. 니콜라스 케이지뿐 아니라 많은 천사들이 도서관에 있다고 나오죠. 인간의 영혼을 만나기 가장 좋은 공간이 도서관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인데요.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다른 모든 것이 사라지고 온전한 한 인간의 영혼이 모습을 드러낸다는 뜻이 아닐까 싶어요. 천사가 등장하는 또다른 명작이죠. 베를린 천사의 시에서도 천사들이 도서관에서 사람들을 살피는 장면이 나오거든요. 정말이지 아름다운 장면들이 아닐까 싶어요.     


M4 Sarah Mclachlan - angel

https://youtu.be/i1GmxMTwU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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