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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Jun 30. 2019

17년 만에 돌아온 SF 소설의 거장 테드 창

tbs교통방송 심야라디오 프로그램 황진하의 달콤한 밤'의 책 소개 코너 '소설 마시는 시간'입니다.

매주 토요일에서 일요일 넘어가는 자정에 95.1MHz에서 들으실 수 있어요.


6월 16일 여든네 번째 방송은 여름밤 읽으면 좋은 SF 소설 두 권을 소개습니다.


↓소설 마시는 시간 멘트↓


ann 책 속에 담긴 인생의 지혜를 음미해 보는 <소설 마시는 시간> 오늘은 어떤 주제로 이야기 나눠볼까요?

오늘은 SF 소설 두 권을 가져왔습니다. 이제 곧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잖아요. 날씨 더운 여름밤에는 집에 누워서 재밌는 SF 소설 한 권 읽으면 딱 이거든요. 올여름에 읽으면 정말 재밌을 만한 SF 소설 두 권을 가져왔습니다.


ann 어떤 책부터 만나볼까요?     

먼저 소개해드릴 책은 테드 창의 소설집 ‘숨’입니다. 테드 창은 SF 소설가로는 독보적인 위치에 오른 작가죠. 휴고상 4회 수상, 네뷸러상 4회 수상, 로커스상 4회 수상 등 SF 소설에 주어지는 세계적인 권위의 상들을 싹쓸이하고 있는 작가입니다. 2002년에 첫 번째 소설집인 ‘당신 인생의 이야기’가 나오고 무려 17년 만에 두 번째 소설집인 ‘숨’이 출간됐습니다.


ann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는 우리 방송에서도 소개한 적이 있죠.     

SF라는 장르소설이기는 하지만 테드 창의 소설은 어지간한 순수 문학보다 훨씬 아름답고 유려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죠. SF뿐 아니라 소설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누구나 읽어볼 만한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는 2년 전에 개봉한 영화 ‘컨택트’의 원작이기도 했죠. 영화도 좋았지만 원작 소설도 정말 좋았고요.

ann 이렇게 유명한 작가인데 막상 소설집은 이제 두 권째라니까 놀랍기도 하네요.      

테드 창이라는 작가 자체가 다작을 하는 작가가 아니기도 하고요. 단편 하나를 쓰는데 보통 2년 정도가 걸린다고 합니다. 다 써놓고 워낙 꼼꼼하게 다시 살펴본 다음에 내는 거죠. 책을 내는데 그렇게 신경을 많이 쓰는 작가가 아니라는 이야기도 있고요. 그래서 틈틈이 나오는 단편 소설을 하나하나 모았다가 17년 만에 소설집으로 엮어서 내게 된 거죠.


ann 이번 책은 어땠나요? 전작처럼 좋았나요?     

좋지 않았다면 방송에서 소개해드릴 필요도 없었을 텐데요. 외신에서는 이 책의 출간 자체가 획기적인 사건이라는 평가도 하거든요. 테드 창의 SF 소설은 기술 문명에 대한 무조건적인 낙관이나 디스토피아를 그리기보다는 새로운 기술이 인간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그런 변화가 인간을 어디로 이끄는지에 대해서 세심하게 살피거든요. 첫 번째 소설집이 나온 2002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최근에는 기술의 발전 속도가 빠르잖아요. 시의적절하게 우리가 고민해볼 만한 이야기들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     


M1 방탄소년단 - 소우주

https://youtu.be/LXOJk2PFKgY


ann 여름밤에 읽기 좋은 SF 소설 만나고 있어요. 먼저 테드 창이 17년 만에 들고 온 신작 ‘숨’ 이야기 중입니다. 소설집이라고 했는데 가장 인상 깊은 단편은 어떤 건가요?     

한 편 한 편이 다 재밌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데요. 방송에서 소개하기에 다소 까다로운 이야기들은 빼고 몇 편에 대해서 설명을 드리면요. 일단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라는 단편이 있는데 여기서 나오는 고민이나 질문은 SF의 영역이 아니라 이미 우리의 일상에 닥쳐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ann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제목만으로는 짐작이 안 가는데 어떤 이야기인가요?     

이 단편은 데이터 어스라는 디지털 세계에 있는 가상의 애완동물인 디지언트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쉽게 말하면 인터넷 게임 안에서 사람들이 키울 수 있는 가상의 애완동물을 생각하면 돼요. 그런데 이 단편에서는 기술의 발전 덕분에 디지털 세계 속의 애완동물도 실제 동물처럼 자유의지가 있고 그래서 훈련도 시켜야 되고 하는 거예요. 전직 동물원 사육사인 애나 앨버라도라는 인물이 이 디지언트의 훈련을 맡게 되는데요. 시간이 흘러서 디지언트가 살고 있는 데이터 어스라는 디지털 세계가 폐쇄될 위기에 처해요. 디지털 세계가 사라지면 당연히 그 안에 살고 있는 디지언트도 사라지게 되잖아요. 그 순간을 앞두고 디지언트들과 그 디지언트를 기르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죠.


ann 예전에 일본의 전자회사가 만든 로봇 강아지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어떻게 보면 비슷한 부분이 있죠. 일본 전자회사가 만든 로봇 강아지가 노인들을 위한 애완동물로 큰 각광을 받았거든요. 그런데 그 회사가 로봇 강아지 생산을 중단하면서 부품도 공급이 안 되다 보니 결국 로봇 강아지들이 수리를 못 받아서 하나씩 고장나게 됐죠. 로봇 강아지에 정서적인 부분을 의지하던 노인들이 굉장히 큰 충격을 받아서 일본에서 사회적인 이슈가 된 적이 있는데요. 테드 창이 쓴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도 마찬가지로 디지털 기술로 만들어진 가상의 애완동물과 거기에 의지하는 인간들의 관계라는 점에서 비슷한 부분이 있죠.


ann 또 어떤 이야기가 있나요?     

‘거대한 침묵’이라는 짧은 단편도 굉장히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데요. 이 단편은 인간의 시점이 아닌 푸에르토리코 앵무새가 화자로 등장해요. 이 앵무새는 멸종위기 종이라고 하는데요, 이 앵무새를 보존하기 위해 게놈지도를 읽는 작업도 실제로 진행 중이라고 합니다.

앵무새가 도대체 어떤 이야기를 할까 싶은데, 이 앵무새는 우주를 탐사하려는 인간의 끝없는 열정과 호기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요. 그러면서 인간의 끝없는 노크에도 우주가 한없이 고요하고 조용한 이유를 나름대로 추측을 합니다. 우리가 보통 우주를 고요한 바다에 비유하잖아요. 왜 이렇게 우주가 고요할까. 앵무새의 추측은 이래요. 우주가 당황스러울 만큼 고요한 이유는 인간들에 의해 멸종되지 않으려는 우주 지성의 생존 전략일지 모른다고요.


ann 인간에게 발견되는 걸 피하기 위해 소리까지 감추고 숨는 거라는 거죠?     

이런 추측을 하는 존재가 멸종위기에 처한 푸에르토리코 앵무새라는 점이 의미심장한 거죠. 인간 문명이 서기 전에는 열대 우림이 수없이 많은 소리로 가득했잖아요. 지금은 멸종해버린 수많은 동식물이 내는 소리가 가득했죠. 그런데 전문가들에 따르면 지금은 열대 우림을 찾아가도 불과 몇십 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이 고요하다고 해요. 앵무새는 이런 상황을 이렇게 묘사해요. 한 때 열대 우림에서 울려 퍼졌던 지구 지성의 소리는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이런 상황을 지켜본 우주의 지성이 인간을 피해 숨는 건 당연한 게 아니냐고요. 가장 가까이에 있는 열대 우림의 소리도 들을 수 없는 인간이 과연 수백광년 떨어진 곳에서 들리는 소리를 찾아 나서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요.     


M2 Queen - ‘39

https://youtu.be/kE8kGMfXaFU


ann 여름밤에 읽기 좋은 SF 소설 만나고 있어요. 두 번째로 만나볼 책은 어떤 건가요?     

이번에 소개해드릴 책은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입니다. 작년 3월에 출간된 책인데요. 여러 작가의 작품이 실려 있는데 그중에서도 대상과 가작을 동시에 수상한 김초엽 작가의 작품들을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ann 한국과학문학상이라는 게 있는 것도 처음 알았어요.     

한국이 SF 소설의 볼모지라는 말을 많이 하거든요. 확실히 근거가 없는 말은 아닌 게 세계 무대에서 SF 소설로 인정받는 한국 작가는 아직 딱히 없는 게 사실이기도 하고요. 사실 SF 분야라는 게 한 나라의 과학 수준과 밀접하게 연관이 돼 있거든요. 미국이 SF 소설 대국인 것도 과학에 국가적인 차원에서 엄청난 투자를 했기 때문이죠. 최근에 중국에서 세계적인 SF 소설가가 계속 등장하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의미 있는 수준의 우주 탐사를 하는 건 미국과 중국, 두 나라뿐이니까요. 이런 점을 보면 한국 SF 소설에 대해서 어두운 미래를 그릴 수밖에 없긴 한데요. 오늘 소개해드리는 김초엽 작가의 작품을 읽어보면 조금은 희망을 가질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ann 김초엽 작가는 아직 모르는 분이 많을 것 같은데 소개 좀 부탁드려요.     

김초엽 작가는 이제 20대 중반의 젊은 작가인데요. 작년에 포항공대에서 화학 전공을 석사 학위를 딴 과학도이기도 하고요. 세계적인 SF 작가 중에는 과학자면서 글을 쓰는 경우가 많거든요. 김초엽 작가의 작품이 디테일하고 꼼꼼한 것도 본인이 과학도이기 때문에 가능한 게 아닌가 싶어요. 그리고 김초엽 작가의 글을 보면 소수자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느낄 수 있는데요. 작가 본인이 사춘기 시절에 청력을 상실한 장애인이거든요. 여성이자 장애인이라는 점에서 본인이 느끼는 여러 경험들을 글에 녹이고 있는 거죠.


ann 앞으로 한국 SF 문학을 이끌고 갈 수 있는 젊은 작가네요.     

SF 소설은 과학과 기술에 기반해 상상력을 펼치는 거잖아요. 그렇기는 한데 결국 그 중심, 뿌리에는 인간이 있어야 하거든요. 김초엽 작가의 작품에서 돋보이는 게 이런 부분이에요. 과학적 상상력을 마음껏 펼쳐내면서도 결국 이야기의 뿌리에는 지극히 인간적인 고민과 질문을 담고 있다는 거죠.

SF 드라마 시리즈인 ‘블랙미러’의 제작자들이 얼마 전에 한국을 방문했는데요. 블랙미러는 미래 사회를 디스토피아로 그리는 걸로 유명하죠. 이 드라마의 제작진이 이런 말을 했어요. 기술이 문제가 아니라 기술을 잘못 사용하는 인간이 문제다. 김초엽 작가의 작품도 비슷한 맥락에서 보면 더 흥미롭겠죠.     


M3 자우림 - starman

https://youtu.be/t8ajQ5H8gVk


ann 여름밤에 읽기 좋은 SF 소설 만나고 있어요. 두 번째로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에 실린 김초엽 작가의 작품 만나보고 있는데요. 어떤 작품인가요?     

김초엽 작가의 작품 두 편이 모두 상을 받았는데요. ‘관내분실’은 대상을,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가작을 받았습니다. 관내분실은 제목이 무슨 뜻일까 생각하게 되는데 의외로 간단해요. 도서관 안에서 분실됐다는 의미로 관내분실이라는 말을 쓴 겁니다.


ann 어떤 걸 분실한 건가요?     

이 작품은 ‘마인드 업로딩’이라는 게 가능해진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데요. 마인드라는 건 죽은 사람의 뇌세포에 있는 기억을 컴퓨터에 저장하는 걸 말합니다. 마인드가 저장돼 있는 도서관에 가면 저장된 기억을 바탕으로 죽은 사람이 실제 살아있는 듯한 모습을 VR 같은 기술로 재현하는 거죠. 기억을 바탕으로 대화도 가능한 기술인 겁니다. 죽은 사람의 살아있는 기억과 대화할 수 있는 거죠.

작품의 주인공이 살아있는 동원 소원하게 지냈던 엄마를 찾아서 도서관을 방문했는데 엄마의 마인드가 분실됐다는 사실을 알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에요.


ann 죽은 사람의 살아있는 기억과 나누는 대화. 상상만 해도 놀라운 일인데요.     

실제로 2040년 정도면 사람의 기억을 저장하는 게 가능할 거라고 합니다. 여기에 VR 같은 새로운 기술을 접목해서 만들어낸 이야기인데요. 사실 기술 자체보다도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인간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이 더 흥미로운 작품이거든요. 주인공이 살아 생전에는 엄마와 의절한 채로 지내다시피 했어요. 엄마가 자신에게 지나친 집착을 보여서 도망치듯 살았던 거죠. 그런데 주인공이 결혼하고 평범하게 살던 어느 날 임신을 하게 돼요. 갑자기 찾아온 자식이라는 존재 앞에서 혼란스럽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거죠. 그때 엄마를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고, 엄마의 마인드가 저장돼 있는 도서관을 처음으로 방문했는데 분실됐다는 이야기를 들은 거죠.


ann 엄마의 마인드가 사라졌던 이유는 뭔가요?     

미리 말씀드리면 읽는 재미가 없어지니까요. 다만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와요. 주인공은 도서관을 찾고나서야 엄마의 마인드가 분실된 걸 알았잖아요. 그런데 소설의 말미에 주인공이 깨달아요. 엄마의 존재는 이미 죽기 전에, 살아 있는 동안에 세상에서 분실된 채였다고요. 한때는 누구보다도 선명하고 고유한 이름을 가지고 이 세계에 존재했을 김은하씨, 그런데 지민엄마라는 이름을 얻으면서 원래의 이름을 잃어버리고 세계 속에서 분실된 엄마라는 걸 깨닫는 거죠.     


M4 페퍼톤스 – 검은 우주

https://youtu.be/afZ0oyN7B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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