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집을 매수는 못했지만 어쨌든 플러스 인생

by 빛나는 지금

근무한 지 22년이 넘어간다.


13년 차 즈음에 아빠가 갑자기 병환으로 돌아가셨다. 아빠의 죽음은 처음으로 내 삶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서른 살 중반을 넘긴 여교사. 이것 외에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다른 단어를 찾기 위해 애썼다.


여느 날처럼 학교 계단을 오르던 출근길.

"내가 왜 이렇게 열심히 직장을 다니나... 나는 부양할 가족도 없고 지금 그만둬도 나 혼자면 여자저차 살아질 것도 같은데... "

가까운 가족을 황망히 보내고 직장도 월급도 사실 시간조차도 큰 의미가 없게 느껴지던 애도의 기간 동안 나는 다른 삶을 살고 싶었다.


제주도에 내려가서 "귤농사"를 지어볼까도

엄마의 먼 친척분이 사신다는 지리산 산청에 빈 집을 개조해 낮에는 밭을 일구고 밤에는 별을 세면서 살아볼까도 생각했다.


그러다가 휴직을 내고 떠난 그곳에서

남편을 소개받았다.


결혼할 당시 남편은 늦깎이 신대원 학생이었고 결혼하면서 시댁에서 받은 돈으로 남편의 신대원 근처에 구축 소형 아파트 전세를 얻고 남은 돈으로는 남편의 학자금 대출을 갚았다.


처음 신혼집을 보러 갔던 때를 기억한다.


모든 게 처음이었고 도대체 가족을 일구어 같이 살 곳은 어떠해야 하는지 도통 어른다운 감도 경험치도 없었던 우리는 첫 집을 볼 때도 현실적인 기준이 별로 없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처음 부동산에서 보여주었던 경기도에 아이 키우는 가정이 많이 사는 그 소형 아파트를 대출을 해서라도 매수하는 게 좋았을 것이라는 것이라는 크나큰 아쉬움이 있다.


직장생활을 그것도 공무원이라는 "대출" 받기에 딱 좋은 직업에 있었지만

우리 부모님의 빚 때문에 고생하시던 어린 시절만 기억하고,

그 누구도 내 생애 "첫 집"의 중요성과 미래 투자 가치를 말해주지도 않았고 나 스스로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청년시절만 보내고

만혼에 들어선 우리 두 사람은 그렇게 남편 학교에 가깝고 뒤에 산이 있어서 산책하기에 좋겠다는 그 두 가지 이유로 첫 집을 전세로 들어갔다.


그리고 두 번째 집은 서울 외곽에 위치한 오래된 빌라를 전세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때 집을 구하게 된 이유도 그저 교회가 가까워서였다.


그리고 다녀온 이스라엘에서 전세금을 많이 쓰고 돌아오니

처음 시댁에서 받은 돈은 많이 줄어있었다.


이제 와 드는 생각은


첫째, 왜 그렇게도 부동산에 대해서도 집에 대해서도 무지했을까.

그 시절, 그 지역에 구축, 소형 아파트를 전세가 아닌 매수를 하는 더 나은 길을 택했을 텐데.


둘째, 왜 그렇게도 돈관리에 소홀했을까.

결혼할 때 시댁으로부터 받은 돈, 그리고 내가 적금으로 들어놓은 돈을 합쳐서 집 마련과 함께 관리를 잘했더라면 돈을 까먹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이라도 불려 갈 수 있는 방법들을 찾을 수 있었을 텐데.


셋째, 왜 그렇게도 우리 가정의 미래 계획을 세우는 것을 등한시했을까.

결혼을 했고 첫째가 태어났고 휴직을 했고 해외를 다녀왔고 그러다 돈이 궁해져서 복직을 했고 그러다 또 휴직을 했고.

그 순간마다 남편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스스로 고민도 하면서 내린 결정들이었지만

긴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참 근시안적이고 그 상황과 감정에 좌지우지되는 감정적 결정들도 많았다.

그 경솔한 결정과 선택들은 항상 시간과 엄청난 돈을 대가로 가져가버렸다.


경험이 없고 미래를 미리 내다볼 수 없는 인간에게 미래 계획은 어쩌면 영역밖의 일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내 경험이 미천하다면 도서관의 책을 읽고 앞서간 다른 이들의 경험담도 살뜰히 챙겨 그 조언과 충고를 새겨듣는 열심을 발휘했다면 적어도 우리 가정의 재정을 지금보다는 탄탄하고 건강하게 만들어 가고 있지 않았을까.라는 참 큰 후회가 든다.


이제야 돈의 중요성과 시간의 가차 없음을 온몸으로 체감하며

지금의 아픈 후회들을 미래의 건강한 교훈으로 삼기 위해 노력한다.


후회 + 보람 + 성과 = 다 합쳐서 플러스가 되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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