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방? 아니 나만의 화장실
방 3, 화 2의 실평수 18평의 구축 아파트로 월세를 구하면서 나에게 엄청난 호사가 생겼다. 바로 나만의 화장실이 따로 생긴 것이다.
아들 엄마들이여! 부디 자신만의 화장실을 가지는 호사를 누려보시기를. 종종 우스갯소리로 남편까지 포함해 아들 셋을 키운다고들 한다. 여하튼 우리 집에는 나 빼고 전부 남자라서 이런 호사를 누리는 날이 왔으니 바로 화장실 하나를 오롯이 나만을 위해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화장실은 나에게는 샤워도 하고 볼일도 보고 화장도 하고 옷도 갈아입는 다용도 멀티룸이다. 때때로 혼자 있고 싶을 때면 몇 분 정도 가만히 숨어 있어도 되는 혼자만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아무리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해도 아직 어린 아들들과 남편과 공유하는 화장실 공간은 내가 바라는 환경에는 못 미친다. 냄새가 날 때도 있고 세면대나 변기, 샤워부스에 얼룩, 물기, 머리카락등이 남아있어 씻으러 들어가면 이미 유쾌해지지 못할 때도 많다. 사실 성별을 떠나 사용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한 공간이 더러워지고 흩트려지는 속도와 정도는 어쩔 수 없는 없는 것이리라. 물론 바지런히 청소를 해서 빠르게 정돈된 공간으로 복귀시킨다 해도 워킹맘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남편의 청소는 늘 10%쯤 부족하다.
그랬는데 나만의 화장실이 생기니 나 혼자 사용하고 후다닥 청소가 가능하다. 샤워 후 닦은 수건으로 수전, 세면대, 벽, 욕조, 변기 그리고 바닥까지 말끔하게 닦는다. 수건 한 장으로 내 몸과 화장실까지 깨끗하게 마무리가 된다. 수건으로 닦은 후 문을 활짝 열어 두고 환풍기까지 돌려주면 화장실은 바닥까지 늘 뽀송뽀송한 상태를 유지한다. 내 몸과 내가 몸담은 공간까지 깨끗하게 닦고 유지하는 것. 이 모두가 나를 잘 대하는 길임을 매일 알아간다.
이번에 이사 온 집은 마음에 쏙 드는 게 화장실 벽은 아이보리색 계열로 밝은 느낌이고 바닥은 진회색의 타일로 되어있는데 재질이 젖은 발로도 미끄럽지 않도록 작은 돌기들이 나있다. 그래서 바닥을 방바닥 훔치듯 뽀득뽀득 닦은 후에 아예 화장실 실내화까지 치워버리고 맨발로 다닌다. 바닥에 걸리는 것도 하나 없고 늘 뽀송뽀송 한 상태의 바닥에 놓인 물건도 하나 없으니 화장실에 들어가면 훤하다. 그 좁은 화장실이 내 눈에는 호텔 화장실만큼 밝고 아늑해 보인다.
그리고 처음으로 나의 컬러 취향도 알게 되었다. 둘러싸고 있는 벽은 따뜻하고 밝은 색채이고 밟고 있는 아래 바닥은 진한 색깔로 하면 무겁지 않으면서도 안정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이제 앞으로 진짜 우리 집이 생겨서 화장실 리모델링을 할 기회가 생긴다면 컬러 배치는 지금 이 화장실처럼 하리라.
캐비닛 안에도 예전처럼 4 가족의 모든 잡화가 들어가 있지 않다. 내가 갈아입을 속옷과 양말류. 늘 사용하는 간단한 화장품 몇 가지. 그리고 여분의 칫솔과 치약. 여분의 수건 2어장 정도이다. 혼자 사용하기엔 큰 캐비닛이라 군데군데 비워진 공간이 많다. 이 또한 시각적으로 편안하고 물건이 드나들기도 간편하다.
아무리 가족일지라도 남자들과 같이 쓰는 변기는 항상 손이 더 간다. 작년까지만 해도 늘 티슈로 한번 더 변기시트를 훔치고 볼일을 보는 게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오로지 나만 쓰는 변기이다 보니 다 쓴 수건으로 뽀득뽀득 변기를 설거지하듯 닦아주면 이후 항시 깨끗한 상태로 하루를 보낼 수 있다. 깨끗한 변기에 앉아 편안하게 볼일을 보는 이 쾌적함.
밤에는 일부러 천장불은 켜지 않는다. 작은 무드등을 가져다 놓고 사용하는데 노란 주광빛 등의 차분함이 화장실을 채우고 적당히 어둡고 적당히 따뜻한 그 빛 안에서 샤워도 하고 머리도 빗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는 일련의 시간은 이제 나에게 정말 중요한 하루 일과의 마무리가 되었다. 빛과 공간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밤의 휴식은 오늘을 또 치열하게 보낸 나에게 잔잔하지만 분명한 위로이고 회복이다.
나만 사용하는 화장실은 들어가면 은은한 비누향이 공기 중에 늘 머물고 있다. 화장실에 들어가면 아무런 냄새가 안 나면 다행이요, 여름철이나 눅눅한 계절에는 으레 뭔가 습하고 볼일 후 잔여물의 냄새가 느껴지곤 했는데 이제는 화장실 안이 금방 말라서 늘 건조한 상태이기도 하고 나 혼자만 깔끔하게 쓰다 보니 다른 냄새가 나지 않는다. 샤워부스에 놓아둔 비누에서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부드럽고 깨끗한 비누향이 맴도는 화장실. 아 이런 호사가 또 어디 있을까 싶다.
퇴근 후 화장실만 들어가도 마음이 놓이고 피곤의 반쯤은 이미 날아가버린다. 한 공간이 주는 힘이 이렇게도 크다니. 다시 한번 힘주어 말한다. 가능하다면 이 세상 엄마들이 자신만의 방, 아니 자신만의 화장실을 꼭 가져보시면 좋겠다. 우리가 호텔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가 대리석 깔린 남이 잘 청소해 놓은 호텔 화장실임을 생각할 때 꼭 시도해 볼 가치가 있는 일이다. 그리고 분명 삶의 가치가 한결 높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