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벌이인 듯 아닌 듯.

알고 보면 내 부수입은 상당하다.

by 빛나는 지금

오전 시간, 시아버지께서 전화를 주셨다. 평상시 따로 전화를 하시지 않으셔서 무슨 일인가 싶어 바로 받았는데, "여기 하이마트다. 디스플레이 상품으로 벽걸이 에어컨을 80만 원에 판다는데 한대 보내주마." 하신다.


아하... 이사 와서 에어컨 없이 두 아이들과 여름을 나는 우리 집을 보시고 돈 없어서 저렇게 고생하는구나 싶으셨던 것 같다. 근래 전화드릴 때마다 늘 "에어컨도 없이 이 더위에 애들 데리고 어째 지내냐?"라고 늘 걱정 어린 말씀을 반복하셨는데 오늘은 마음먹고 가전마트에 들르신 것이다.


돈을 차곡차곡 모아도 모자랄 판에 어린 아이들 데리고 이스라엘로 가서 몇 년 치 적금을 다 쓰고 오고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커가고 결혼한 지 10여 년이 되어가는데도 형제들 비슷하게 살림살이가 나아지는 것 같지 않은 우리 가정이 말씀은 않으셔도 알게 모르게 늘 마음이 쓰이셨던 것 같다.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


"아버님. 괜찮아요! 저희가 바로 구매를 할 수도 있지만 조금 찬찬히 상품을 둘러보느라고 아직 준비를 못했어요. 곧 아이들 아빠랑 상의해서 가성비 좋은 걸로 준비해 볼게요. 감사합니다!"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외벌이라는 것에만 집중해서 매달 들어오는 내 월급의 액수에 일희일비하며 보냈다.


그런데 찬찬히 다시 생각해 보면 나에게는 그리고 우리 가정에는 이미 나의 월급 외에도 직, 간접적으로 들어오는 부수입이 꽤 있다.


주말 파트타임 일을 하는가? 아니다. 바로 우리 에어컨 걱정에 직접 마트를 들르시는 우리 부모님부터 우리 가정의 큰 수입원이 되어주신다.


가까운데 사시는 우리 친정엄마를 통해 매주 거의 3~4일 치에 해당하는 반찬거리를 제공받는다. 거기에 틈틈이 과일에 아이들 먹이라고 빵에 바로 챙길 수 있는 간단한 냉동 조리 식품까지. 엄마는 우리가 갈 때마다 두 손 무겁게 챙겨서 들려 보내신다. 오히려 내가 무거워서 다 못 들고 간다고 몇 개를 빼고 나야 마무리가 된다. 그럼에도 엄마집 냉장고에는 우리 가정에 챙겨주시려고 미리 만들어 두신 밑반찬거리들이 여전히 가득하다.


친정과 시댁 양가 모두 공무원으로 생활하셔서 퇴직 후 다 생활이 가능하실 정도로 연금을 받고 계신다. 결혼 전에는 이런 환경이 얼마나 큰 혜택인지 몰랐다. 부모님 돈은 당연히 부모님의 돈일 뿐 나와는 상관이 없다고 여겼다.


먼저 결혼한 언니네는 상황이 달라 언니는 시댁 부양으로 매달 몇십 만원씩 생활비를 보내드린다.


이제 내가 결혼해서 생활을 해보니 언니네와 같은 맞벌이라 할지라도 아이들 키우며, 이사 다니며, 이제 조카들 상급학교 진학도 시키면서 매달 꼬박꼬박 생활비를 보내드리는 게 큰 일임을 알겠다.


지금 우리 가정을 보면 내 월급에서 부모님 생활비를 보내드릴 여유는 없다. 가끔 생신을 맞이해서 드리는 소소한 용돈정도이지만 그마저도 드리고 나면 허리띠를 한번 더 줄여야 한다.


이렇게 양가 부모님 모두 건강하시고 연금으로 각자의 노후 생활이 어렵지 않게 가능하시다는 것이 우리 가정 경제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모른다. 절대적인 비교는 어렵지만 가까운 언니네만 봐도 한 달에 몇십만 원이 넘는 부수입이다.


친정엄마가 챙겨주시는 반찬과 과일 아이들 용돈은 또 어떠한가.


나름 미니멀 라이프 한다고 엄마가 가끔 사 오시는 아이들 옷등을 물건 늘어난다고 물릴 때가 있었다.

이제는 엄마 마음도 감사하고 엄마가 이렇게 요모조모 챙겨주시는 것들이 우리 가정에 참 큰 경제적 힘이 된다는 것을 알기에 그저 감사하다.


또 가까이 사는 언니네도 빼놓을 수가 없다.


내가 입고 있는 옷, 가방, 신발 등은 거의 다 언니에게서 받은 것들이다. 이제 대학을 진학한 조카가 더 이상 입지 않는다고 꺼내놓은 옷들도 알뜰히 챙겨 와 입고 있다. 내가 그 나이대에 그랬듯, 우리 예쁜 조카가 입고 놔둔 옷들도 모두 브랜드에 예쁜 디자인의 옷들이다. 앞으로도 나는 옷을 살 일은 없을 것 같다.


늦게 결혼해서 이제야 아이들 키우느라 외벌이로 종종 대며 산다고 늘 나를 안쓰럽게 여기는 우리 언니는 본인도 여전히 바쁘고 돈 들어갈 데도 많으면서 우리 가정을 살핀다. 우리가 월세를 구해서 이사오던 시기에 언니네도 이사를 했는데 나만 언니에게서 이사에 보태라고 돈을 받았다. 미안하고 고마웠다.


위쪽 지방에 사는 형님네도 계절마다 나 같으면 마트에서 절대 사지 않았을 (못했을) 고가의 과일이나 고기등을 보내주신다. 먹고 힘내라고 따뜻한 메시지도 잊지 않으신다.


그리고 남편. 내가 외벌이로 워킹맘으로 이렇게 지낼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남편 덕분이다.


남편이 아침부터 오후까지 아이들 아침식사, 등, 하교, 오후 간식과 저녁까지 아이들을 완전히 맡아서 돌봐주고 있기에 나는 온전한 차림과 정신으로 출근도 하고 때로는 늦게까지 남아 학교일도 하고 갈 수가 있다.


때때로 남편이 일하지 않아서 내가 혼자 이렇게 외벌이로 고생한다고 스스로 나 자신을 동정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조금만 이성적으로 생각해도 지금 우리 가정의 상황 상 두 사람이 다 같이 풀타임으로 일을 나갈 수는 없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아이들을 맡고 책임지고 돌봐야 나머지 한 사람이 또 집중해서 직장을 다닐 수 가있다. 지금 우리는 그 역할을 나눠 맡은 것일 뿐이다.


남편이 전적으로 해주어서 나도 마음 편히 직장근무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 어제 빨래를 다하고 아이들 속옷을 정리해서 넣는데 첫째가 입는 팬티 엉덩이 부분의 그림이 닳을 데로 닳아버린 것을 보았다. 둘째의 팬티는 형의 것을 물려받은 것이라서 고무줄 부분이 밖으로 틔어 나와있었다. 그래도 새 팬티를 사지 않고 고무줄이 헤어질 때까지 입히고 있다. 아무 군소리 없이 엄마가 주는 대로 낡은 옷도 입고 다니는 우리 아들들. 건강하게 자라주어서 크게 마음 쓰이게도 하지 않는 우리 아들들은 또 어떤가.


나의 가족들을 통해 나와 우리 가정이 벌어들이고 아끼는 부수입을 과연 돈으로 다 환산할 수 있을까.

실제로 계산해 보면 아마 너무 많아서 깜짝 놀랄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나는 애초부터 외벌이가 아니었다.


나도 몰랐던 부수입이 상당하다.


나와 우리 가족이 원팀으로 함께 뛰고 있는 것이다.


다음 달에 월급 명세서를 볼 때는 제일 아래쪽에 한 칸을 더 그려 넣고 단정하게 써야겠다.


"부수입( 마음으로 봐야 잘 보입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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