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출산 때 생진통을 5시간 정도 겪었다.
남편은 옆에서 부지런히 내 등이며 어깨를 마사지하고 라마즈 호흡을 해보자며 독려도 했다가 내가 그냥 좀 놔두라고 잡고 있던 손마저 "내팽개치자' 옆 벤치에 앉아 초조하게 섰다 앉았다를 이어갔다.
너무 아프고 고통스러우니 붙들 수 있는 건 단 두 가지. 하나는 "아버지..."라는 외마디 기도와
간호사 선생님의 팔 뿐이었다. 간호사 선생님을 붙들고 언제 이 고통이 끝나냐고 묻다 보니 출산의 순간이 오기는 하더라.
힘들 때 우리에게는 붙들게 필요하다. 사람의 팔이든, 다리든 유형의 것이든 무형의 것이든 나 혼자 광풍을 맞다가 쓰러지지 않으려면 호된 비바람이 지나갈 때까지 어떻게든 내가 붙들고 나를 지탱해 줄 무언가가 필요하다.
내가 근무하는 책상 한편에는 문장 몇 개가 파란색 볼펜으로 또박또박 적혀있다.
한꺼번에 많은 업무를 처리해야 할 때, 일의 우선순위가 안 잡혀 허둥지둥할 때,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봐도 일이 잘 안 풀릴 때, 그 안갯 속 같은 답답함 속에 내가 붙드는 문장은,
"복잡함을 떠나 간결함을 추구하라. 복잡한 것은 약하고 단순한 것이 강하다."
이 문장을 천천히 눈으로 읽고 심호흡을 한 후 다시 업무를 시작하면 서서히 일이 정돈이 되고 순서가 잡힌다.
기준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할 것만 하자.라는 기준은 여기저기 쏠리던 나의 시선과 생각을 단단하게 잡아준다.
사람과의 관계에 지치고, 가족들에 대한 걱정이 이어지고 컨디션도 가라앉고 시간을 다투는 일들이 우수수 몰아쳐서 그 어수선함 속에서 짜증이 마구 올라올 때 내가 붙드는 문장은,
"어떤 기분이어도 해야 할 것은 반드시 하는 태도."
이 문장을 눈에 담고 허리를 세우고 어깨를 편다. 그리고 온갖 불편하고 어지러운 감정들을 빗자루로 쓸어버리듯 일단 한편에 다 쓸어버리고 현재,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에 집중한다. 어떤 기분이어도 반드시 해야 할 것을 하는 태도. 이미 사십도 넘었지만 왠지 더 진짜 어른이 된 것 같다.
그리고 어느샌가 찾아올 50대와 성큼 찾아올 은퇴 이후와 부모는 나이를 먹어가는데 그럼에도 아직 어린아이들을 바라보며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냐"라는 자조적 질문이 계속될 때 나는 이 문장을 바라본다.
"세상은 재미있는 곳이란다. 우리는 남들한테 이기거나 지려고 태어난 게 아니야. 내 몫만큼 즐겁게 살려고 온 거지. 한상복 '재미' 중 "
이 문장을 꼭 꼭 곱씹다 보면 긴장이 좀 누그러들고 잔뜩 들어간 힘도 좀 빠지고 짧았던 호흡도 차분해진다.
세상은 결코 만만하지 않은 곳이라고들 하고 나 역시 만만하지 않음을 경험하며 나이를 먹고 있고 우리 아이들에게도 세상이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으니 이것도 배우고 저것도 익히라고 닦달하다가도 결국 만만치 않은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은 부러질 것 같은 긴장과 곤두선 신경이 아니라 어디서든 즐거움을 찾고 가능하다면 즐거움을 만들어가고 또한 내가 선택한다면 그런 즐거움이 많다는 것을 믿는 마음의 여유임을 알아간다.
문장을 오래 바라보면 그 문장도 나를 바라본다. 따뜻하고 견고하고 단순한 삶의 언덕들이 되어주는 문장들. 오늘도 이 문장들을 곁에 두고 과도하게 감정이 곤두서던 순간들을 순하게 다독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