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벌이 워킹맘의 지극히 개인적인 장점

by 빛나는 지금

먼저 아래에 나열하는 장점은 지극히, 100% 개인적인 의견임을 짚고 간다.


결혼 후 10여 년 가까이 되어가는 지금까지 육아휴직 기간을 빼고는 늘 직장을 다니며 우리 가정의 외벌이 경제를 담당해 오면서 내가 느낀 장점은 이렇다.


1. 대체로 내 뜻대로 할 수 있다.

돈을 번다는 것은, 특히 그 가정의 유일한 재정의 통로가 된다는 것은 돈의 힘을 제일 먼저 그리고 가장 강력하게 체험하는 자리에 있다는 것이다. 우리 삶의 대부분이 돈과 직결된 자본주의 사회의 최고 정점에 살고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마트에서 두부 한모를 살 때도 두부를 사는 사람은 나 아닌 다른 사람이라 할지라도 (대부분 남편) 두부를 계산하고 그 가격이 "띵동"하고 문자로 날아오면서 최종 확인을 해주는 이는 바로 그 체크카드를 두 장 만들어서 전해준 나이다. 우리 가정의 많은 필요와 소비는 남편과 상의하고 대화 후 이루어지지만 결론적으로 최종 결정권자는 대부분 내가 된다.

이건 내가 돈을 버니 남편의 위치가 좁아진다거나 하는 이야기로 충분히 확대될 수 있을 위험도 있다. 그리고 실제로 내 안에 그런 갈등이 불쑥불쑥 올라올 때도 있다. 그러나 감정적인 해석과는 별개로 일단 돈과 관련된 결정은 현실적으로 늘 이루어져야 하고 그때 최종 승인을 내려야 하는 나는 대체로 가장 큰 목소리를 내게 된다.


2. 돈 버는 자의 자부심이 있다.

내 밥벌이, 이제는 우리 가족 모두의 밥벌이를 내 손과 내 두 다리를 열심히 움직여 가며 오늘도 내일도 성실히 하고 있다는 사실이 주는 자부심이 있다. 부모로부터 우리는 언제 독립하는가? 자신의 자아가 폭발적으로 자라고 그래서 부모라는 태생적인 선이 분명하게 보이고 그 선을 어떻게든 뚫고 나가고자 하는 강렬한 의지가 집채 같은 파도처럼 자신을 휘둘러서 그냥 마구마구 화도 나고 반항도 하고 싶은 사춘기 때 독립하는가?


옛날에 즐겨보던 미국 가족 드라마에 마음은 따뜻하지만 다소 가부장적인 아버지가 십 대에 막 접어든 아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부분이 나온다.

"그래.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도 된다. 그런데 여기는 내 집이고 내 집 지붕아래서만큼은 안된다. 나가서 해!"


그 말은 그 천방지축 청소년 아들이 아버지만큼 자라고 무엇보다 스스로 돈을 벌어 자신의 집 적어도 공간을 스스로 마련할 수 있는 경제적 자립이 되었을 때야 그제야 내 마음대로 하고 사는 자유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단호한 현실 인식일 것이다.


그래. 우리는 스스로 자신의 밥벌이 즉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충분한 돈벌이를 할 때에야 부모로부터 독립을 시작하게 된다. 정서적 독립은 좀 더 시간이 걸리겠지만 일단 부모로부터 공간 분리가 되고 부모의 돈, 즉 부모의 결정과 선택에 따라야 했던 시간에서 이제 나의 돈, 즉 나의 결정이 점점 더 많아지는 독립이 점차 강화되게 되는 것이다.


내가 나이가 들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고 해서 독립을 할 수 있었을까?

만약 스스로 돈벌이를 하지 못했다면, 스스로 월세를 내고, 밥상을 준비하고, 차 기름값을 내고, 이 내고 내고를 스스로 하지 못했다면 내 삶의 어떤 선택도 가능하지도 않았겠지만 아마 철딱서니 없다는 말만 들었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돈을 벌어 내가, 그리고 우리 가족이 당당하게 독립된 존재들로 설 수 있다는 것이, 그리고 그 역할을 현재 내가 해내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대출도 있고, 아이가 사달라는 수박 한 통이 예산 초과라 사주지 못하는 나날들도 있지만

오늘도 뜨거운 밥 한 덩이를 준비할 수 있는 밥벌이를 스스로 해냈다는 일하는 자의 단단한 자기 인정이 있다.



3. 시댁 가족들의 인정을 받는다.

우리 친정은 나를 보고 안쓰러워 하지만 시댁 가족들은 나를 보고 미안해한다. 특히 시댁 부모님들은 남편이 목사 안수를 받은 이후에도 아직 사역의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을 걱정하시며 혼자 돈 벌어서 가족 부양을 하는 나에게 늘 수고가 많다고 격려를 하신다. 그 마음에는 돈을 벌지 않고 있는 아들을 대신해 일하는 며느리에 대한 미안함이 깔려있음을 안다. 물론 이러한 인정은 그만큼의 엄청난 부담도 같이 내포하고 있는 것이기에 마냥 장점이라고 볼 수만은 없다. 친정이나 시댁이나 양가에 나는 교사라는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사람으로 목회자라는 불안정한 길을 걷고 있는 남편과 이제 한창 자라는 아이들을 모두 할 수 있는 한 오랫동안 책임질 수 있는 사람으로 여겨지고 있고 그 기대는 때때로 나를 참 힘들게도 한다.


나의 오래된 친구는 나와 함께 발령을 받아 나보다 더 능력 있게 인정받으며 교사로 생활하다가 결혼과 동시에 얼마 안 가 퇴직을 했다. 남편도 그러했고 남편 쪽 집안이 굉장히 부유한 가정이었는데 친구가 전적으로 육아에 전념해 주기를 바랐고 친구는 그렇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학교를 그만두고 전업주부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이제는 미국으로 이민을 간 친구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때때로 특히 남편과 싸우기라도 하고 나면 자신이 학교를 그만둔 것이, 직업이 더 이상 없이 남편이 주는 돈으로(아무리 넉넉하다 할지라도) 생활한다는 것이 그렇게 자신을 작게 만든다고.


사람은 원래 갖지 못한 것을 근거 없이 동경하는 존재인지,

나는 그 이야기를 하는 친구를 오히려 부러워하기도 했다.


양날의 칼처럼, 나는 남편을 대신해 돈 버는 며느리로 시댁의 인정을 받으면서도 그 인정이 나에게는 족쇄가 되기도 하는 시간을 지금까지 보내고 있다.





쓰고 보니 내가 생각한 장점이라는 것은 언제든지 그 자체로 단점이 될 요소들도 많은 것들임이 여실히 드러난다. 마냥 장점만 있다며 좋아하기에는 밥벌이는 쉽지 않다. 오늘도 더운 숨을 몰아쉬며 하루를 마감하며 퇴직 이후를 막연히 꿈꾸는 나는 그저 평범한 직장인이다. 장점과 단점을 무 자르듯 칼 같이 나눌 수 없는 나의 삶을 그 자체로 담담히 인정하며 왠지 평소보다 더 지칠 때는 뜨뜻한 저녁 한상이 사실은 간단한 해결책이 되어 줄 수 있다는 단순한 진리를 실천하면 오늘도 하루 잘 보낸 것이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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