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많은 결정들은 대부분 "돈"과 관련되어 있다.
의. 식. 주. 우리 인간이 살아가는데 가장 기본 구성요소라고 불리는 이 셋은 모두 "돈"이 든다. 뒤로 갈수록 더 많은 돈이 든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옷보다는 식비가 그리고 살아가는 집이 순서대로 돈이 더 든다. 돈이 더 들어가는 순으로 선택과 결정의 고민도 더 무거워진다.
숨 쉬는 공기 빼고는 전부 돈이 들어가는 세상을 살며 이제는 미세먼지 등 공기 오염으로 공기청정기도 필수가 되어가니 엄밀하게 말하면 공기마저도 돈이 필요한 세상을 살며 외벌이 워킹맘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나와 아이들, 우리 가족의 삶의 대부분을 "내가" 선택하고 결정 내려한다는 것과 맞닿아있다.
나는 선택하고 결정 내리는 것이 약한 편이다. 둘째이자 막내로 태어나 자라면서 크게 결정 내릴 일이 없었다. 기억이 거의 없는 유년시절부터 고등학교 시절까지 내 삶의 굵직한 결정은 이미 사회적으로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았고 그 외 필요하다면 부모님의 의견을 따르면 큰 무리가 없었다. 처음으로 대학과 과를 결정해야 하는 시점에도 나의 진로를 결정했던 것은 나의 고민과 성찰이 아니라 "성적"이었다. 성적에 맞추어 대학을 들어가고 나니 이후 취업도 자연스레 정해져 있었다. 그 테두리 안에 남거나 혹은 들어가기 위해 중간에 이탈하지 않고 필수항목을 잘 채워가기만 하면 되는 시간들이었다.
부끄럽지만 성인이 되어서도 나는 크게 무언가를 선택하거나 그 선택에 책임지는 삶을 사는 것에 느렸고 무뎠다. 20대 이후로는 의도적으로 선택을 피한 경우가 더 많았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의 기초가 "두려움"이었음을 이제야 나는 알아간다.
이제 나는 반강제적으로 매일 "선택"하고 "결정"을 내려야 하는 자리에 섰다.
내가 돈을 벌고 그 돈을 어떤 모양으로든 관리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거의 모든 선택을 내가 내리든가 아니면 나를 거쳐서 최종 "승인"이 나야 실행이 된다.
그때마다 크고 작은 그 무수한 일상과 삶의 선택들 앞에서 나는 종종 "외로움"과 "두려움"을 느낀다.
내가 "A"를 선택하면 이런 결과가, "B"를 선택하면 저런 결과가 도출된다. 문제는 선택은 너무나 분명하고 그 데드라인도 촉박한데 막상 이후 우리 가족에게 미치는 결과는 잘 예측이 안된다. 늘 최고와 최선의 선택을 내리고 그에 상응하는 가장 좋은 결과만을 우리 가족에게 안겨주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된다.
최근에 월세 계약을 하게 되었다.
친정 엄마집에서 거의 반년을 온 가족이 더부살이를 하다가 미루던 결정을 드디어 내린 것이다. 얼마나 많은 검색을 했으며 중간중간 짧은 외출을 나와 얼마나 많은 "남의" 집들을 보러 다녔는지... 왜 결정을 쉽게 못 내렸는가... 당연히 "돈"이 안 맞기 때문이었다. 살고 싶은 집은 비싸고 우리 예산 범위 안에 그래도 들어오는 집은 무언가 망설여졌다. 그래서 망설이고 망설이다 마지막에 본 집을 계약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남편이나 아이들이 마음에 들어 하는 집은 내가 선택하지 못했고
가격이 저렴해 그냥 이 집으로 할까 싶었던 집은 남편과 아이들이 반대했다.
수많은 이야기들을 나눈 뒤, 결국 남편도 아이들도 나를 바라보는 순간이 왔다.
내가 "결정"을 내려야만 하는 순간이.
그럴 때면 잠깐의 "외로움"이 몰려온다.
그리고 더 길게 "두려움"이 따라붙는다.
월세 보증금은? 대출을 어디서 받으면 될까?
매달 나가는 월세와 관리비는? 그만큼 빠지면 생활비는 어떻게 더 줄이나?
다 새로 마련해야 하는 가전은? 가구는? 중고가게로 괜찮은 곳은 어디일까?
아이들이 잘 적응할까? 실제 살아보면 환경이 괜찮은 곳이 맞을까?
돈에서 시작해서 걱정은 아이들과 우리 가족의 전반의 삶의 안녕에게로 미친다.
길게 뻗어 있으나 나무와 풀이 우거져 그 끝은 잘 보이지 않는 길의 끝을 가늠해 보려고 자꾸 눈을 가늘게 뜨고 발 뒤꿈치를 들었다 놓았다 한다. 등줄기에 땀이 흐르고 미지의 길은 빛에 따라 바람에 따라 자꾸 풍경이 달라져서 더 마음이 조급해진다.
그러다가 맥이 풀리는 때가 온다.
내가 지금 이 순간을 선택할 수는 있어도 저 나중을 미리 선택할 수는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순간이 온다.
지금을 선택하고 저 나중은 다시 선택해야 하는 시점이 올 때까지 시간의 흐름에 맡길 수밖에 없다는 걸 받아들이는 순간이 온다.
그 깨달음이 순전한 내 것이 될 때 그제야 소심하고 겁 많은 나는 최종 선택을 한다.
우리 가족은 이제 월세살이라는 새로운 길을 앞에 두고 있다.
다시 손을 맞잡고 같이 길 위에 선다.
우거진 나무 그늘이 드리워진 길 위로 햇살이 그림자를 만들고 바람은 여름 냄새를 품었다.
"꽃길이야?"
내 안에 오랜 시간 결정 내리기를 무서워해온 아이가 묻는다.
"잘 몰라. 근데 꽃을 심으면 되지 뭐."
이제야 좋든 싫든 열심히 결정을 내려야 하는 외벌이 맘은 살짝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며 짧게 대답해 본다.
그래 꽃이 없으면 심다 보면 그 길이 꽃길인 것 아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