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 버리기 중심으로 진행된 초기 미니멀라이프는 나에게 내가 스스로 무언갈 결정하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회복시켜 주었다.
사람도 직장도 내 인생도 나 자신도 궁극적으로 바꿀 힘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면 허탈한 자유함도 있지만 많은 경우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 나도 아직 욕심도 욕망도 많기에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을 인정하고 내려놓는 것이 참 힘들다.
그런 나에게 물건과 가구를 버리고 깨끗한 집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노력하고 그 결과를 바로 확인함으로 적어도 내 일상에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이 어느 정도는 있다고 하는 희망을 준 셈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줄 알았는데 내 힘으로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영역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피곤하고 때로는 가구를 옮기다 허리까지 삐끗하면서도 정리와 버리기를 계속 이어갈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어느 정도 집을 비운 후 이제 무엇을 더 비우나 라는 혼자만의 고민을 시작했을 때 나는 내가 왜 이렇게도 무얼 못해서 안달인가 라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되었다.
이미 언급했듯이 첫 동기는 무력감을 떨치기 위해서였다.
튼튼한 내 두발과 내 두 손으로 내 일상을 만들어가는 것이 참 좋았다. 그런데 쉼은 쉽게 찾아와 주지 않았다.
왜일까? 왜 집이 텅텅 비도록 만들어놓고도 뭘 더 버리려고 할까? 이제 집에는 남편의 서재방을 제외하고는 큰 가구가 없다. 아이들이 이방에서 저 방으로 신이 나서 운동장 뛰듯 뛰어도 괜찮으리만치 휑하다.
수납장도 군데군데 비어져있고 틈틈이 두 눈을 부릅뜨고 버릴 물건이 없나 정기적으로 점검도 하고 있기에 다른 가족이 절대 안 된다고 사수하는 물품 이외에는 이제 잔짐도 많이 정리가 되었다.
스텐프라이팬 1개, 작은 냄비, 중간 크기 냄비 각 1개, 스텐 볼 1개, 채반 1개. 주방 서랍장 안에 다 들어가는 주방도구들. 최근에는 전자레인지에 잘못 넣었다가 타버린 나무 도마까지 버리게 되어 주방가위로 양파 등을 자르다 보니 도마도 없다.
물론 이렇게 물건이 없어도 집은 말끔하게 정돈된 느낌에서는 늘 거리가 있다. 아이들 장난감과,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이 바닥에 늘 놓여있고 10년이 넘어가지만 한 번도 리모델링뿐 아니라 자잘한 욕실 줄눈 시공조차 이사 후 하지 못했던 아파트라 일단 기본 바탕 자체가 낡아가고 있어서 새뜻한 맛은 없다.
그래도 이 정도면 나 혼자의 힘으로 참 많이 걸어온 셈이다.
그럼에도 왜 나는 이 집에도, 이 결과에도 그다지 만족하지 못하고 쉬지를 못하는 걸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먼저, 지루함을 금방 느끼는 나의 성격. 한 직장에서 20년 넘게 재직 중이지만 돌아보면 3년 주기로 뭔가 다른 기회들을 찾았다 휴직, 파견 등등 직장에서 내 조건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기회를 활용하여 사무실 밖으로 탈출을 시도했다. 그렇게 무기력과 매너리즘을 극복했다.
둘째, 이번에도 나의 성격인데 나의 기분파적이 면이다.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하루하루 근무를 이어가지만 속에서는 폭풍이 치고 번개가 내리 꽂힌다. 물론 간간히 해가 나고 선선한 바람이 부는 평화로운 나날들도 있지만 결혼 후 워킹맘이 되면서는 그야말로 종잡을 수 없는 기분의 변화를 겪는다. 그리고 번개맞고 허리가 반으로 꺾인 나무처럼 기분이 꺾이는 날이면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다. 다 그만두고 무언가 삶을 확 뒤집어서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가서 정말 꿈꾸던 모습으로 살아보고 싶다는 바람이 큰 파도처럼 나를 집어삼킨다. 그러면 하루가 당연히 너무나 힘들다. 일상에서 행복을 찾고 평온한 일상에 감사해도 모자랄 판에 여기를 벗어나고 싶은 나는 감사하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까지 더해져 불 위에 올려져 있는 오징어 마냥 속이 쪼그라든다.
셋째, 아마 이게 가장 근원적인 이유가 아닐까. 그래, 정말 원하는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건을 비우고 가구를 버려도 정말 원하는 일은 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집은 비우겠는데 이 집을 팔고 다른 곳으로 가기는 힘들다. 내 출근룩은 바꾸겠는데 직장은 나올 수가 없다. 머리를 짧게 자르고 노샴푸, 노메이크업까지 시도하며 나의 외양은 바꾸겠는데 가족의 마음은 바꿀 수가 없다. 그리고 그럼에도 나의 바람도 내가 바꿀 수가 없다. 안 되는 이유가 천 가지가 넘어도 그렇게 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를 바꿀 수가 없다.
오늘도 출근을 했다. 뚜벅뚜벅 걸어서 이 자리로 왔다.
그리고 생각한다. 바람과 꿈도 미니멀리즘이 되는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