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라이프를 진행하면서 가장 큰 소득은 없어도 충분히 살아진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그리고 궁극적으로 그게 부족하게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면서 편해진다.
우리 집에는 소파가 없다. 처음에는 당연히 거실에는 소파가 있어야 한다고 여겼기에 사용여부를 그다지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있으면 또 자연스럽게 쓰이게 되는 것이니 실제 얼마나 필요가 있을지 보다는 TV 도 없는 거실에 소파정도는 있어야 거실답다는 나의 고정관념이 더 중요했다.
소파는 예뻤고 편했다. 특히 임신 말기에 날로 무거워지는 나의 몸을 든든히 감당해 주었으며 둘째 신생아 시기 우유를 먹일 때도 한 손에는 아기를 또 다른 한 손에는 젖병을 든 나의 팔을 소파의 팔걸이와 등받이는 묵묵히 지탱해 주었다. 늦은 오후 지친 몸과 마음을 받아주었던 푹신한 소파의 안락함은 그 자체로 위로가 되어주었다.
둘째가 기다가 소파를 잡고 일어서기 시작하면서부터 더 이상 소파는 편안한 안식처가 되지 못했다. 일단 느긋하게 앉아있을 새가 없었다. 주로 이유식을 만들고 그리고 그 이유식을 먹이느라 서있든지 둘째의 눈높이에 맞추어 바닥에 앉아있든지 둘 중 하나일 때가 많았다.
그 사이 소파는 빨랫대가 되기도 했고 자기 자리를 못 찾은 물건들이 어수선하게 올려져 있는 선반이 되기도 했다. 여하튼 늘 지저분한 상태였다.
그러다가 둘째가 본격적으로 소파에 기어오르기 시작하면서 두 형제의 퐁퐁이 역할을 하기 시작했는데 세 살 터울의 형이 뛰기 시작하면 아직 평지에서도 뛰지 못하는 둘째가 퐁 하고 튀어 올랐다. 그러기를 몇 번 하다가 매트가 깔려있긴 했지만 바닥으로 떨어지기를 반복하다 보니 소파는 더 이상 안전한 가구가 아니었다. 올라가지 말고 올라갔으면 뛰지 말라고 여러 번 말하면서도 이루어지지 않을 바람인 줄 알았기에 두 형제가 소파에 오르면 그 밑에서 언제든 받쳐줄 기세로 대기를 한 적도 있었다. 때때로 소파를 다 분리해서 따로 놔두기도 했다. 그러면 우다다 하고 운동장에서 뛰듯 달리지는 못할 거라 여겼기에. 그러나 웬걸. 아이들은 역시 빠르고 영리하다. 이제는 떨어진 소파를 징검다리 삼아 퐁당퐁당 하고 건너 다녔다.
주로 거실에서 지내니 소파를 방으로 옮기면 눈에서 멀어질 테고 그러면 덜 놀겠지 싶어 낑낑대며 소파를 방으로 옮겨보기도 했다. 그러나 벽에 기대어 소파 위로 기어 다니는 아들들의 열정은 꺾을 수 없었다.
우리 가족에게 소파는 더 이상 잘 사용하는 가구가 아니었다. 우리는 소파에 앉지 않았고 (못했고) 아이들에게 즐거운 놀잇감이 되기는 했으나 아찔할 정도로 위험하여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그렇게 소파를 더 잘 쓰일 곳으로 보낸 뒤 우리 가족의 거실풍경은 판이하게 달라졌다.
일단 넓은 거실은 거칠 것 없이 뛰어도 되는 놀이터가 되었다. 무엇보다 안전하게 아이들이 지낼 수 있는 공간이 된 것이다. 어디든 상을 펴고 밥을 먹고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상은 접어서 세워두면 그만큼 여유공간을 돌려받았다. 날이 더운 날은 우리 집에서 제일 큰 거실 창문을 열어두고 잘 수 있었고 날이 추워져 연료비가 부담스러울 때는 방문 다 닫고 거실만 보일러를 틀고 온 가족이 함께 누울 수 있었다.
청소는 또 어떤가. 소파가 있을 때는 소파 밑에 공처럼 굴러다니는 먼지덩이가 버젓이 버여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둘째가 알러지 반응을 보일 때면 왠지 소파 밑과 그 뒤편에 쌓인 집 먼지 때문일 것 같아 찝찝하고 마음이 늘 쓰였지만 그렇다고 번쩍 소파를 들고 청소를 매일 하기는 역부족이었다. 이제는 청소기를 쓱 밀고 밀대걸레로 쓱 닦으면 낡은 거실 바닥이나마 윤이 난다. 빈 구석 없이 쓸고 닦은 후 찾아오는 개운함도 참 좋다.
소파 없는 집은 어디에 앉을까? 우리 가족은 그냥 벽에 기대어 바닥에 앉는다. 집 곳곳 어디든 앉을 수 있다. 바닥이 차갑다 싶으면 이불을 서너 번 개어서 방석삼아 그 위에 앉으면 된다. 손님이 오시면 어디에 앉으시면 좋을까? 일단 손님이 거의 오신 적이 없다. 소파가 있을 때 가족방문이 있었는데 그때도 한 사람이 소파에 앉으면 대부분은 빈자리가 남아있음에도 소파를 등받이 삼아 바닥에 앉더라.
지금은 소파가 없어도 전혀 불편하지 않다. 어쩌면 딱딱한 벽에 기대어 앉다보니 자세가 더 발라지고 좀 허약한 허리도 더 튼튼해지는 효과가 있는 듯하다.
우리는 소파를 보내고 더 안전하고 넓게 거실을 사용하고 있다.
소파의 안락함과 편함을 익히 알기에 또 우리 가족의 계절이 흐르고 흘러 필요가 있어지면 다시 들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필요하지 않으니 굳이 들이지 않고 필요하면 언제든 다시 들일 수 있는 유연함과 선택의 폭이 더 나를 여유롭게 해 준다. 미니멀라이프의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