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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는 지금 Sep 13. 2023

나의 미니멀라이프에게 브라보!

식탁 없이, 서랍장도 없이.

우리 집 주방에는 식탁이 없다. 앞서 한번 이야기했던 것처럼 통원목 식탁세트를 중고마켓을 통해 2만 원에 팔았다. 처음 이사올 때 이전 주인분이 식탁을 주신다길래 너무나 감사했고 이후로 잘 사용했다. 4인용 식탁은 튼튼했고 디자인도 최신 유행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원목의 묵직한 느낌이 잘 살아있어 쉬이 질리지 않았다. 


우리는 그 식탁 위에서 매끼 잘 먹고 누군가의 생일도 축하하고 아들의 미술놀이도 하며 일상을 채워나갔다. 그렇게 고마운 동반자였던 식탁은 시간이 흘러 소파와 비슷한 이유로 우리 집을 떠났다. 바로 둘째가 식탁의자에 기어올라 자꾸 떨어지게 된 것.


처음 식탁을 내보내고 갑자기 휑해진 빈자리를 어찌해야 할지 몰라 서랍장을 갖다 놓기도 하고 아이들 책장을 끌어다 놓기도 하며 한동안 공간에 의미를 부여하지 못한 채 서성였다.


그러다 친정집에 쓰지 않는 접이식 상을 갖다 놓으니 그 자리는 원래 우리 가족의 식사공간으로서 다시 의미를 찾고 살아나기 시작했다.


노란 식탁 등 밑에 작은 접이식 상을 펼쳐두고 우리 가족은 다시 맛있게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들은 미술놀이를 한다.


접이식이라 언제든 다시 접어 냉장고 옆에 세워두면 되어 공간을 다양하게 이용할 수 있다. 상을 치우고 나면 아이들이 놀 수 있는 놀이터가 된다.


이전 원목식탁은 큰 유리가 깔려있어서 그 밑에 켜켜이 먼지나 간혹 음식 찌꺼기 같은 것이 끼여도 시원하게 닦지를 못했는데 접이식 상은 행주로 한번 싸악 훔치면 말끔해지며 시간 절약도 되고 기분도 덩달아 상쾌해진다.


꼭 식탁이 아니어도 밥을 먹는 데에는 아무 지장이 없었다. 역시 제일 큰 장점은 없어도 다 되는구나를 알게 된 유연한 일상의 모습을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우리 집에는 서랍장도 없다. 물론 긴 시간 우리 집에 있었고 정리한 지는 몇 달 되지 않는다. 허리까지 삐끗하면서 힘들게 내보낸 서랍장은 점점 불어나는 아이들 옷을 수납할 수 있는 유일한 가구였다.


공간도 넓어서 일단 아이들 옷이 새로 생겨도 그 안에 넣으면 순식간에 깔끔해졌다. 수납함으로 역할을 잘 해냈지만 서랍장 문이 잘 열리지 않으면서부터 사용이 힘들어졌다. 처음에는 잘 열리지 않다가 계속 무리해서 열었더니 그다음에는 닫히지 않는 서랍장과 며칠 씨름을 이어가다가 예의 피곤감이 찾아왔고 열심히 서랍장을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제일 빠르고 좋은 방법은 옷을 줄여서 더 이상 서랍장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터울이 있는 형제이다 보니 첫째가 더 이상 입지 않아도 놔두면 둘째가 입겠거니 했던 옷들을 과감히 정리했다. 적어도 2년 이상 기다려야 되는데 그 사이 첫째 옷은 더 늘어날 테고 경험상 그때쯤이면 둘째도 자라서 스스로 입고자 하는 옷에 대한 취향도 자라날 터였다. 그리고 입을 수 있으나 잘 입지 않는 옷들. 단추 많은 셔츠나 옷, 간지럽다고 안 입는 스웨터 재질의 옷, 신축성이 없어 불편한 청바지도 다 비웠다. 그리고 비슷한 기능의 옷들도 두벌정도로 줄였다. 제일 부피가 큰 겨울 패딩을 4벌에서 딱 입을만한 2벌로 줄이니 없던 공간이 펼쳐졌다. 바람막이 잠바, 두꺼운 겨울 바지, 도톰한 기모 티셔츠 등도 2-3벌만 남기고 비웠다. 경험해 보니 아이들은 늘 잘 입는 편안 옷을 찾았고 세탁도 거의 매일 하기에 여러 벌을 여분으로 쟁여둘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옷을 비우고 정리하고 나니 서랍장은 더 이상 필요가 없었다. 아이들 옷과 남편옷을 합쳐서 옷장 하나에 다 넣을 수 있었다. 옷을 줄이니 외출할 때 필요한 옷을 금방 선택하고 찾을 수 있어서 시간도 절약된다. 같은 티셔츠라도 무얼 입히면 더 예뻐 보이려나 싶어 고민했던 시간들이 있다. 남자아이들이라 그런지 제일 중요한 건 엄마눈에 예뻐 보이는 게 아니라 자기들 놀 때 몸에 걸리적거리지 않는 것이었는데 나는 비슷한 여름티셔츠사이에서 선택의 어려움을 종종 겪었던 것이다.


역시 개수가 줄어들고 선택의 폭이 줄어드니 모든 과정이 명쾌해지고 빨라진다.


아이들 양말과 속옷도 줄였다. 그러니 부피가 작아 옷들 사이에서 돌돌 굴러다니던 양말도 금세 찾는다.


우리 집 가구들은 이렇게 수납하고 있던 물건을 비우면서 같이 집을 떠났다.


없어도 괜찮고 없으니 더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어지고 공간은 상쾌해졌다.


한번 없어도 되는 것을 경험하니 이제 물건을 일부러 늘이지 않는다. 여분을 일부러 쟁여두지 않는다.


더 가볍게 살고 싶어 지니 비울 것은 과감하게 버리게 되고 안 사도 되는 물건은 두 번 고민하지 않고 접는다. 시간과 돈이 절약되는 것은 물론이고 나에게는 자신감이 날로 불어난다.


정작 사는데 필요한 것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정말 중요한 것은 결코 비울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매일 주어지는 시간. 맛있고 건강한 밥상. 우리 가족의 생계를 이어주는 일. 한 번 더 바라보고 웃어주고 쓰다듬어 줘야 할 가족. 그리고 나 자신이었다.


물건을 비우고 정말 가치 있는 것과 그 존재들로 시간과 공간을 채우는 것.


완성되지 않았지만 그 실천을 이어가는 나의 미니멀 라이프를 오늘도 스스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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