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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연 Jun 26. 2023

술이 고픈 금요일.

일주일 열심히 달려온 나에게 주는 작은 멋진 치유의 순간.

나는 술을 잘 마시는 편이 아니다. 소주나 위스키 같은 특정 술은 단 한 잔만으로도 끝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사람이지만, 와인을 만나게 되면서 나의 술 역사도 조금은 기록될 만한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 와인을 마시기 시작하면서 이상하게도 주량이 약간 늘어 맥주 정도의 술은 이제 즐겁게 마실 수 있는 정도의 주량을 갖게 되었지만, 여전히 술을 좋아하냐는 질문에는 갸우뚱, 술 잘 마시냐는 질문에는 아니요!라고 당당히 대답하는 사람이다.


이런 내가 금요일만 되면 과하게 취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래서 금요일, 붐빌 것이 뻔한데도 차를 몰고 코스트코를 가게 된다. 이번 주말 즐길 와인과 곁들일 안주들을 찾으러 한 마리의 먹이를 찾는 하이에나가 되어 달려간다. 이렇게 규칙적으로 와인을 사고 안주를 사는 내 모습이 내가 생각해도 조금 우습지만, 금요일은 참을 수가 없다.

이런 소중한 금요일엔 보통 약속을 잘 잡지 않는 편이지만, 부득이하게 금요일에 약속이 생기게 되면 남편에게 마트 쇼핑을 부탁하거나 그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집 앞 편의점을 들러 주말용 와인을 구입한다. 이런 나를 보며 지인들은 한 달에 한 번 아예 왕창 많이 와인을 사면 되지 않냐고 하지만, 그럼 평일에도 마시고 싶어 져서, 일상에 지장이 생기므로 금요일에 들러 주말용 와인을 구입하고 여지없이 다 마시며, 다시 일주일을 살아가는 것이다.


술을 잘 마시지도, 과히 즐기지도 않는 내가 왜 이리도 금요일은 와인으로 취하고 싶은 것인가. 사실 계산하면 지출의 현실을 직시하게 될까 봐 합계를 구하진 않지만, 와인이 주종이 우리 집의 경우, 그래서 가계 지출에 술값이 꽤 나가는 편이다. 다른 것에는 크게 사치하지 않고 아껴 사는 삶을 가치 있게 생각하는 나임에도 술 값은 아깝지도 아끼지도 않는다. 나의 평상시의 가치관과 삶의 모습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금요일이다.


월요일 아침 출근하여 금요일 퇴근하는 그 순간까지 일터에서 일을 하는 동안, 또 집에서 나의 아이들을 키우고 삶을 꾸리는 동안 무수히 많은 삶의 기쁨과 슬픔의 순간을 만난다. 사춘기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일은 버겁기도 하고 힘겨운 순간도 있지만, 때때로 보람을 남기기도 하고 그 귀여움에 기쁨을 느끼기도 하는 그야말로 일의 기쁨과 슬픔의 순간이 교차로 채워진다. 오늘만 해도 가방 속에서 뭘 꺼내는 척하며 하트를 보내는 사랑을 받는 순간도 있었지만 수업시간에 대드는 아이를 지도해야 하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더불어 집안의 아들들 역시 엄마로서의 기쁨을 느끼게도 해주고, 엄마의 부족함은 직시하게 해주어 공평하게도 기쁨과 슬픔을 느끼게 한다. 그렇지만 보통 아름다운 순간은 찰나이고, 더 많은 순간에 고뇌하고 어려워하며 방황하는 것 같다. 이러한 하루하루를 견디고 버티는 내 모습이 결국은 나를 성장시키고 있다고 믿으며.


그래서 5일의 시간 동안 내 안의 나를 다독이며 키워나가기 위해, 최선을 다 한 나에게 금요일 저녁은 그냥 보낼 수 없는 그런 날이다.

무튼 그래서인지 주말을 앞둔 금요일 저녁은 나에게 평일 동안 입고 있던 불편한 옷을 벗고 편안한 잠옷차림의 나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 그런 날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나로 돌아가는 문은 와인으로 헤롱헤롱 살짝 취한 그래서 아주 내가 느낀 내 감정에 솔직해지는 준비를 하는 것 같다.. 금요일, 좋은 술친구와 함께(사실 주로 남편이다.) 지지와 격려를 나누고, 나의 불안을 잠재우며, 더불어 후회와 번민도 와인과 함께 날려버리는 것으로 나의 노고를 스스로 치하한다.


사실 살짝 취해가면서 주고받는 이야기의 대부분은 일상에 사소한 순간들인 경우가 많지만 때로는 무거운 주제들을 나누기도 한다. 일 하는 곳에서 느끼는 회의, 조직 생활의 어려움 등의 얘기를 나눌 때면 와인이 더 무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일상의 기쁨 또한 와인과 함께 내 안에 퍼지고 일주일 동안 우리가 힘겨워하고 견뎌왔던 것들. 그리고 자랑하고 싶은 순간들, 칭찬 받고 싶었던 이야기들. 그것을 나누고 토로하고 그러면서 흘려버린다. 그렇게 금요일마다 받는 지지와 격려, 크리스털 잔 안에 영롱한 빛깔의 와인이 만들어주는 분위기, 느슨해지는 나의 모습이 좋다.


그러니 내가 일주일 중 금요일을 얼마나 기다리겠는가. 특히나 주중에 임팩트가 강한 일이 나를 덮치게 되면 더더욱 그날부터 금요일만을 손꼽아 세게 되는데, 너무 열심히 사는 것일까. 아이러니하게도 일주일을 버티며 견디며 기다린 금요일은, 이내 피곤해져 사실 와인 한 병을 비운 적이 많지 않다. 한두 잔이면 이내 쉽게 취하고, 곧 꾸벅이며 졸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며 간신히 양치만 한 뒤 침대에서 잠들기 일쑤다. 어떻게 돌아온 금요일인데…

허무하게도 금요일은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그래도 금요일이 되면, 달려간다. 나의 술창고를 채우러. 일주일을 살아낸 나를 칭찬하고 지지하고 격려하려고. 그래서 나에게 금요일 밤의 와인은, 일상을 살게 하는 치유제다.


“그렇다면 네가 친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멋진 세상을 보여주는 거지. 그 둘은 항상 함께 존재하거든. 세상은 끔찍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멋지기도 해. 하나가 나머지를 부정하지 못해. 그런데 멋진 일은 우리를 계속 살아가게 하지. 그게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해. “ <@ 물고기에게 물에 관해 묻는 일>



지난 금요일에도 역시 와인 두 잔에 골아떯어졌지만, 열심히 살았음에도 느껴내야 했던 그 주의 후회와 속상함을 와인 두 잔에 흘려보냈으니,

다시 한 주를 잘 살아낼 수 있을 것 같다. 나에게 술과 함께하는 금요일은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일들을 보내고, 우리를 계속 살아가게 하는 멋진 일로 채우는 의식이다.

Bravo my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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