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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연 May 21. 2023

아들이란?

영원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과 끝이 보이는 짝사랑 중입니다.


나에겐 아들이 둘이나 있다.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 “아들이래요.”라는 나의 말에 축하해 주는 이와 안쓰러운 표정을 보내는 이들이 공존했는데, 둘째를 임신했을 때 “또 아들이래요.”라는 나의 말에는 모두가 안쓰러워했다. 그러면서 “셋째 낳으면 되지,”또는 “셋째는 딸일 거야”라는 격려인지 위로인지 모르는 말을 더했다. 나는 아들 둘도 괜찮은데 왜 이리도 나를 또 내 뱃속에 아이를 축복해주지 않나 하며 세상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렇게 아들 둘의 엄마로 살아간 지 어언 13년 차. 지나간 시간을 떠올려보자, 고개가 절레절레 절로 흔들리기도 하고 엉뚱함에 코웃음이 피식피식 나오기도 한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13년 동안 살아보니, 아들 둘도 행복합니다!


내 주변에 임신을 하거나 아들을 낳은 후배 또는 친구들에게 나는 이 말을 자주 했다. “아들 둘도 행복해. 아들 둘도 괜찮아!” 나에게 스스로 보내는 위로였을까? 그러나 나는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딸을 한 번도 키워보지 못했기에 고작 아들 둘로 이렇게 행복을 단정하냐고 혀를 차는 사람도 있을 것 같고, 아들과 딸을 함께 키우는 사람들은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볼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아들 둘을 키우며 왜 이렇게 생각하는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아들 둘이 나에게 주는 행복과 아들의 장점을 한 번 생각해 봤다.


첫째, 엄마 아빠에게 자유를 빨리 준다.

물론 이 장점은 어렸을 때는 해당하지 않는다. 아이가 만 세 살 정도 될 때까지는 아들의 저지레는 포기해야 한다. 딸과는 클래스가 다르므로. 나 같은 경우는 두 아이의 이 시기가, 약간 기억에서 소거되었다.  얘네들도 어렸을 때 말썽을 부렸나? 하고 기억이 안 나는데, 어렸을 때만 만났던 먼 친척들이나 지인들은 혀를 내두르며 우리 애들의 저지레를 증언한다. 나는 천사였다. 하지만 때로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그냥 두지 못해 최악이 되는 나를 만나기도 했다. 그러나 무튼 그때의 힘듦은 너무 고되었는지 내 정신 건강을 위해 내 뇌가 지워버렸다.

현재 12,14세의 내 아들들은 어지간하면 엄마 아빠를 귀찮게 하지 않고 자기들의 일을 한다. 그들의 일을 자세히 살피지 않는 것 역시 정신 건강을 위해 추천한다. 첫째는 침대에 늘 착붙되어 있는데, 우리 집에서 그의 별명은 침대늘보이며, 에너지가 왕성한 둘째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늘 발 끝에 공이 있다. (아, 우리 집은 1층입니다. 아들 둘 데리고 다세대 주택에서 살기 위한 최선의 선택입니다.) 이에 저녁 산책은 남편과 둘이, 마트에서 시장 보는 일도 누군가의 방해 없이 오롯이 나의 판단으로 할 수 있다.


둘째, 집에서 여자는 엄마뿐이다.

자라면서, 우리 집의 아들 둘은 엄마에게 이 집에 여자는 엄마뿐이라는 세뇌를 당하게 되었는데 이에 내가 조금이라도 힘든 기색을 보이면, 침대 늘보도 일어나 나를 도와준다. 쓰레기를 버리거나, 재활용을 분리하는 날, 느릿느릿 함께 나서준다. 가끔 장 보는데 따라오면 장바구니도 들어준다. 옷을 살 때도 엄마의 선택을 믿어준다. 그래도 여자가 보는 눈이 낫지. 응 우리 집에 여자는 누구뿐이다? 엄마뿐이니까. 내가 가끔 퇴근하고 너무 힘들어서 침대에 뻗어 있으면 이불까지 덮어주진 않더라도 조용히 불을 끄고 문을 닫아준다. 그리고 최대한 조용히 둘이 논다. 최대한 조용하려고 노력할 뿐 결코 조용한 건 아니라 결국 그 소리에 깨긴 하지만, 잠깐 깊이 피로를 풀 수 있는 시간을 준다. 여자에게는 몸이 안 좋은 기간이 있다는 것을 알고 배려해 준다. 이건 아빠의 도움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얘들아 여자 말을 잘 듣자. 우리 집에 여자는 누구뿐이다? 엄마뿐이다!


셋째, 새로운 세상을 열어준다.

우리 큰 애가 처음으로 아주 많이 좋아했던 것은 기차였다. 나는 아들과 기차 백과사전을 날마다 읽으며 세상의 모든 기차들을 익혔다. 각국의 고속열차 및 우리나라 기차의 역사는 물론 해무는 개발되었음에도 왜 달릴 수 없는지까지. 누군가 기차 출발 영상을 유튜브에 올려 준 것들을 함께 보고, 기차를 구경하러 야트마한 동산에 함께 올라 기차가 떠나는 것을 함께 지켜보았던 기억은 종종 아지랑이처럼 떠올라 나를 웃음 짓게 한다. 이어서 아들이 빠진 것은 중장비였다. 나는 중장비라고는 포클레인밖에 몰랐는데, 크레인, 레미콘, 불도저, 등등의 우리 주변에 꽤 많은 중장비들이 돌아다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이들과 긴 시간 차로 이동해야 할 때면 고속도로를 주행 중인 트럭 옆에서 트럭의 움직임을 관찰하게 했다. 아들들에게 그 중장비들은 살아있는 눈요기이자 신기한 장난감이었다. 단순하기 그지없는 고속도로도 지나가던 트럭들의 모습과 그 모습에 환호하던 아이들로 화려하게 채워졌다. 또 주말이면 아들 둘과 산으로 들로 아이들의 기운을 빼러 다녔기에 산에 사는 들에 사는 수많은 곤충들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한 때 나에게 벌레라고 혐오당했던 그 생명체들의 꾸물거림을 함께 신기해하며 벌레를 사랑하는 그 기분을 느꼈다. 2002 월드컵도 사실 제대로 보지 않던 스포츠에 무관심한 나에게 동계올림픽, 하계올림픽, 월드컵이라는 세계인의 축제로 아이들이 불러줬다. 동계올림픽 기간에는 쇼트트랙과 컬링 등의 경기 시간을 달력에 체크하며 매 경기를 꼼꼼하게 함께 관람했고, 응원했다. 하계올림픽 기간에는 가끔 여름휴가 중이었는데, 중요한 경기 일정에는 호텔에서 경기를 보는 것으로 일정을 대신할 정도로 우리 모두 진심으로 응원했다. 이번 카타르 월드컵은 거의 매 경기 보는 아들 덕에 나도 메시가 프랑스 사람이 아닌 아르헨티나 사람이라는 중요한 정보를 알게 되어 축구무식이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게 아들이 아니었다면 알 수 없었을 세상이다.



넷째. 타인을, 특히 학교에 있는 남학생을 이해하게 해 준다.

나에게 만약 아들이 없었고, 딸만 둘이었다면 나는 학교의 수많은 아들들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들 둘의 기운을 빼려고 이런저런 방법을 다 써봤지만, 사실 아들의 기운을 빼는 가장 좋은 방법은 책상에 앉혀 공부를 시키는 것이었는데, (운동장에서 뛰면 뛸수록 애들의 기운은 더 샘솟는다. 공부시키면 바로 기운이 빠진다. ) 그러니 학교에 앉아 기운 없이 있는 수많은 남학생들에게 감정이입이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리고 아들들은 길게 말하면 뒷말은 못 듣는 경향들이 있어 학교에서 남학생을 지도할 때는 짧고 간단하게 요점만 전달한다. 어차피 길게 말해도 내 목만 아프지 다들 길게 듣질 않는다. 그러니 학교의 절반을 차지하는 남학생들도 고려한 수행평가를 계획하고 학습활동을 생각한다. 그냥 단순히 감상을 쓰는 것, 시를 짓게 하는 것은 피한다. 논리적인 글쓰기나 말하기, 또는 비판적인 글쓰기는 남자애들도 제법 한다. 그리고 설명하는 글 쓸 때도 글의 소재로 꼭 게임도 허용해 준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글의 수준이 높아지지는 않지만 쓰는 순간이라도 신나게 쓰는 남자아이들을 보며, 그들에게 쓰는 기쁨을 준 것 같아 뿌듯해진다.



쓰고 보니, 아들이 장점만 있는 것 같다. 물론 나도 머리를 예쁘게 묶고 엄마와 비슷한 옷차림을 하고 엄마 옆에 조용히 꽃처럼 앉아 있는 딸들이 문득 부럽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행복은 이번 생애 나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대신 뛰고도 또 뛰고 싶어 하는 아들과 나와는 다른 사고체계로 모든 것을 단순화하고, 극단적으로 긍정적으로 생각해 버리고 노는 것이 아닌 이후에야 뭐든 열심히 안 해 속 터지게 하는 , 때때로 내 안의 사리를 만들어 주는 아들들이 허락되었을 뿐이다. 그래도 괜찮다. 첫째는 그대로 나에게 첫사랑이고, 둘째는 숨만 쉬어도 귀여운 아직은 나에게 아기다. 아직은 첫째가 순한 사춘기를, 둘째는 아직 아가 아가한데, 곧 이들에게도 질풍노도의 시기가 오겠지. 그리고 문을 쾅 닫고 엄마에게 뭘 아냐며 눈을 부라리는 그런 순간도. 계속된 실망으로 아들들을 바라보기도 싫어지는 그런 순간들이 내게도 올 수도 있고, 그게 어쩌면 당장 내일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러한 미래가 고개 들고 기다리고 있다 해도, 아들 둘이 잠자고 있는 방문을 살며시 열어 어둠 속에서 아들들을 본다. 벌써 12살이지만 아직도 쌔근거리는 둘째 곁에 가만히 누워 그 숨소리를 듣다 보면 어지럽고 복잡했던 내 마음도 어느 순간 고요해진다. 큰 아들을 잠귀가 밝아 작은 소리에도 이내 잠이 깨는데, 그래서 망설이다가, 잠이 든 큰 애 옆에서 나지막하게 말한다. “사랑해.” 자고 있던 아이가 고개를 살짝 끄덕인다. 내가 깨운 건가 싶지만, 다시 잠잠해지는 걸 보니 푹 자는 것 같다.


어떤 내일이 기다리고 있어도 나는 어쩔 수가 없다. 끝이 보인다 해도, 이 아들 둘을 마음 다해 사랑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임을 매일 느끼는 것이 아들 둘의 엄마인 나의 운명이다. 그리하여 그 짝사랑에 오늘도 최선을 다 하는 수밖에

아들 덕에 축구 경기장에 다 가봤다.


산에서 니가 찾은 신기한 생명체. 아들 손바닥의 상처는 일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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