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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연 May 21. 2023

즐거운 체육대회의 날

여교사의 레깅스 패션 불편하신가요?

애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체육대회다. 지인에게. 체육대회여서 몹시 피곤했다고 말했더니, 체육대회는 노는 날 아니냐며? 앉아만 있으면 되는데 왜 힘드냐고 되려 내게 묻는다.

나는 최근에 비록 등산에 푹 빠지긴 했지만, 운동 유전자가 타인에 비해 현저히 부족한 인간으로, 한 시간 운동장에 있으면 수업 열 시간을 한 것보다 더 기운이 달린다.

운동장은 내게 체력 탈곡기 같은 것이라, 서 있기만 해도 때로는 앉아 있기만 해도 그냥 힘들다.


그러나 그건 내 사정이고, 애들은 이 날을 위해 일 년이 존재하는 것처럼 신이 났다. 몇 주 전부터 예선 경기에도 진심이더니, 반티를 고르고 등 뒤에 넣을 별명에도 열과 성을 다한다. 그런 아이들의 모습은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귀엽다. 배달 온 반티는 우리가 지불한 금액에 전혀 미치지 못할 퀄리티를 자랑했지만, 환불하고 싶은 에미 마음은 관심도 없고, 애들은 질이 낮은 반티를 어서 입고 싶어 난리다. 사실 반티를 주문하는 것도 녹록지 않았는데 이를테면 이런 거다. 어떤 아이 한 명이 자기는 안 해도 되냐고, 혼자 안 입어도 괜찮냐는 나의 질문에 태연히 끄덕인다.(네 마음 안다. 나도 안 하고 싶거든)

“음,,, 그런데, 얘야 모두 함께 입고 싶어서 애들이 주문하는 건데, 우리 반의 즐거운 하루를 위해 다시 생각해 줄 순 없을까? 사실 선생님도 이 옷 다시는 안 입을 거 알고, 그날도 별로 안 입고 싶어도 우리 반의 기쁨을 위해 함께 주문하는 거거든…”하고 플리즈의 눈빛을 보냈던 것이 효과가 있었을까? 아니면 숨죽이면서 자신의 대답을 기다리는 다른 아이들의 모습이 신경 쓰였을까. 결국은 함께 주문했고 핑크 도복의 유치함의 세계에 퐁당 함께 했다.

그렇게하여 퐁당 빠진 핑크 도복의 세상


나 역시 아이들의 기쁨을 위해 기꺼이 핑크 도복을 입고 출근했고, 출근하자 이색적인 복장으로 출근하는 선생님들 덕분에 한껏 웃으며 하루를 열 수 있었다.

우리 중 선생님 한 분은 반티를 입지 않았는데, 사연인 즉, 그 반에 기성복 사이즈를 입을 수 없는 아이가 있어 반티를 그 친구만 입지 못하면 민망할 것 같아 함께 흰 상의를 입어 무드만 맞추기로 한 것이다. 따뜻한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며 체육 대회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문득 보니 그 선생님이 레깅스차림인 것이다. 물론 긴 상의와 긴 양말로 시선을 분산시켰으며, 사실 운동하는 날이니 운동 복장으로는 딱이었지만, 내가 일하는 곳은 시대가 변하고 세상이 변해도 가장 보수적인 사람들이 있는 곳이었다. 나는 괜찮은데 저 차림을 다른 사람들도 그냥 넘겨줄 것인가 하는 염려가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역시 점심시간, 급식실에서 만난 선배 선생님께서는 해당 선생님의 옷차림에 한 마디 하고 싶은데, 참고 있다며 불편한 기색을 표현하셨고 나를 포함한 주변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위기는 모면했으나 그 선생님은 아마 오후 내내 불편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레깅스에 엉덩이를 가린 긴 티를 입고 흰색 바람막이 점퍼를 입은 여교사의 옷차림은 과연 부적절한가?


내가 요가를 배우러 요가원에 처음 갔을 때, 나는 헐렁한 트레이닝 바지에 티셔츠 차림이었으나 요가원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레깅스에 브라탑이었다. 심지어 울룩불룩 군살이 있는 경우에도 레깅스에 브라탑만을 입은 사람들이 많아, 유교걸인 나는 처음엔 어색하고 불편했다. 그러나 원장님이 근육의 움직임과 호흡을 잘 살피려면 레깅스에 브라탑이 좋다는 말씀을 해주셨고, 군살이 많아 쑥스럽다는 내게 우리들의 몸은 그 자체로 아름다우니까 그런 걱정 말라고 하셨다. 이후에는 나 역시 그런 복장을 갖추게 되었고, 여름에는 요가로 몸이 더 쉽게 더워지자, 뒤가 훅 파인 또는 망사로 한 면이 처리된 과감한 디자인을 구매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집에서 혼자 홈트를 가끔 할 때에도 레깅스와 크롭탑의 옷차림으로 운동을 하고, 우리 집 남자 3명은 엄마가, 아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지나가며 자기 할 일들을 한다.


어쩌면 세상은 레깅스 차림에 더 관대할 수도 있다. 지금 우리 아이들도 레깅스를 입은 엄마 옆에서 자라기에 레깅스를 야한 옷차림으로 또는 민망한 차림으로 보기보다는 그냥 운동복으로 인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게 세상이 변해도 그래도 학교는 안 되는 것일까?


학교에서 교사의 복장에 대한 규정은 없지만 은연중에 우리 사이에 형성된 룰 같은 것은 있다. 이를테면 너무 짧은 치마는 입지 않는 것, 겨드랑이가 노출되는 민소매나 캡소매는 피할 것, 속옷이 비칠 수 있는 색상의 상의나, 지나치게 타이트한 옷, 또는 앞섭이 파여 있는 옷은 피할 것. 쓰다 보니 죄다 여교사에 관한 이야기다. 그러나 이렇게 조심하는데도 가끔 뉴스에서는 여교사들의 화장실에 몰카를 설치하는 쓰레기들의 소식을 들을 수 있는 것. 이것이 현실인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더 조심해야 하는 것인가?  남자 체육 선생님이 흰 티를 입고 땀 흘리며 운동하여 몸이 약간 비쳐도 우리는 아무도 그의 옷차림이 야하다고 하지 않는다. 땀 많이 흘리는 거 보니 밖이 많이 덥지? 고생하네. 정도의 인사를 주고받을 뿐. 여교사에게 그런 적절한 무관심을 요구하는 것은 아직도 욕심인 것일까?


얼마 전 읽은 <가녀장의 시대>에서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윗분들과 국민들에 대한 이야기를 피디는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다.
“불편해하실 분들이 많으세요. 국민 정서상 문제가 될 수도 있어서……”
국민정서는 누가 정하는가? 슬아도 국민인데 남의 찌찌에 관심이 없다.


<가녀장의 시대> 이슬아. ‘남의 찌찌에 상관 마 ’중에서


나는 그 선생님이 주눅 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특정인이 불편했던 것은 그분의 인식이 아직 과거에 머물기 때문이라고, 그날 너무나 건강해 보였다고. 나이키에서 못 봤기에 망정이지 봤더라면 아마 바로 모델 제의를 했을 거라고. 내가 그 날 봤던 인상적인 모습은 레깅스 차림으로 서 있는 선생님이 아니라, 달리기에 지고 들어와 기죽은 아이들을 하나하나 안아주고., 밝게 격려해 주던 모습이었다고. 울상으로 들어오던 아이들의 얼굴에 금방 웃음이 번지는 것을 분명히, 똑똑히 보았다고 말이다.


체육대회에 진심이었던 아이들과 또 그네들을 바라보고 응원하며 피곤했지만 나 역시 행복했던 하루였다. 모두가 회괴한 옷을 입고 사진을 찍으며 운동하고 뛰어놀며 즐기는 그날. 옷차림이 아닌 서로의 얼굴과 표정에 집중하는 다채로운 우리이길, 학교이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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