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해피엔딩을 쓰는 마음

빛과 그림자 중 빛을 켜는 사람이 해피엔딩을 쓸 수 있음을.

by 주연

인간에 대한 환멸을 느꼈던 4월이었다.

신뢰가 생기지 않는 사람은 곁에 두지 않는다고 자부(?)하는 나였지만 일터에서 만나는 모든 이를 배척할 수는 없는 법. 지날 때마다 고생 많다고 수고한다고 인사를 건네더니 뒤에서는 우리 부서의 일에 세심하게 태클을 거는 모습을 알게 되었다. 본인 딴에는 합리적인 의견의 제안이라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학교에서 가장 고생한다는 평을 듣는 입장에서 의욕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했다. 나는 본래 속마음을 잘 숨기지 못해 싫은 사람 앞에서 좋은 척을 못하는 것이 내 사회생활의 가장 큰 결점인 사람이다. 그런데 이처럼 겉과 속이 다른 거짓된 투명함을 마주할 때마다 모르는 척이 힘들어 괴로웠던 시간이었다. 이런 시련들이 모여 더 나아가는 나를 만들겠지 하며 씁쓸함을 감추려고만 했었다. 그래서였을까. 이런 때 감기마저 호되게 걸려 일상의 씁쓸함을 맥주 한 잔 등의 시원함으로도 씻지 못하던 때. 지침과 힘듦을 내려놓는 방법이 무엇일까 하며 나를 돌아보다, 결국 곁에 둔 책을 꺼낸다. 내가 좋아하는 선생님의 새책. 제목은 해피엔딩을 쓰는 마음이었지만 당시 해피엔딩을 상상하기도 벅차던 때였다.


중학교에서 근무한 지도 어언 16년이 넘어가고 있는 때. 쌓이는 경력만큼 노하우가 쌓이긴 하는 건지. 만나는 아이들과 접점을 찾아 교류하며 수업하기란 왜 매년 어려워져 가는 건지. 교사로서의 자질과 능력에 의문을 가지면서도 지금의 나는 행정 업무가 교사로서의 본질을 넘어서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며 주객이 전도된 현실에 버둥대고 있었다.


"아직은 아니지만 언젠가 이 아이들 때문에 괴로워질 때 처음의 마음을 떠올리고 싶다. 가장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아이들이라고, 첫 상담할 때 잘하고 싶은 마음을 뿜뿜 내보이던 아이들이라고. 로컬 매장 꽃이라 금세 시든 게 아니라 내가 물을 안 준 것이고, 작년에 사고 친 아이로 보는 게 아니라 현재 잘하고자 하는 기특한 아이들로 봐야지. 사랑의 눈빛으로. 나는 죽이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모습대로 살게 하는 사람이고 싶으니까. (@해피엔딩을 쓰는 마음)"


그렇게 일상에서 버둥대다가 만난 문장은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을 찾아줬다. 그렇다. 너무 바쁜 일상은 가벼운 말에도 쉬이 마음이 상하게 했다. 아이들이 보내는 의미 없는 무표정에도 덜컥했었다. 처음 학교에 들어왔을 때 내가 어떤 모습이었을까. 아이들도 교실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아마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 거다. 낯선 곳이지만 잘 해내고 싶고 잘 지내고 싶은 그 마음. 내가 힘든 일을 하는 것을 사람들이 몰라줘서가 아니라 내가 느낀 환멸은 결국 나에게 닿는 사랑의 눈빛의 부족이었다. 나를 향한. 내가 만나는 아이들을 향한 사랑의 눈빛이 필요한 때였다. 지금 내게 부족한 것을 느끼게 해주는 문장들을 만나니 조금은 정신이 들기도 한다.


"비극의 가운데에 있지만 그 안에서 기쁨과 감사를 느끼면서 사는 방식이라니. 내 삶의 나날 가운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해피엔딩을 쓰는 마음)"


어쩌면 휘몰아치는 일들 가운데에서 내 나날이 비극적이라고 느꼈던 것은 아닐까. 그 안에 숨겨져 있는 기쁨과 감사를 찾을 생각은 못했다. 내 안에서 내 시선을 기다리고 있을 기쁨과 감사들을 찾아 그것들을 부포로 유영하듯 나아가고 싶다. 거대한 물결 안에서 멀리 앞은 보이지 않더라도 나를 띄어주는 기쁨과 감사들은 결국 나를 해피엔딩으로 데려다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며. 이런 마음들이 모여 해피엔딩을 만들어 내는구나. 사랑의 마음으로. 내 안에 있는 기쁨과 감사들로.

얼마 전 선물 받은 수첩에 매일 감사했던 것들을 적어보기로 한다. 오늘 나를 기쁘게 했던 것. 감사함을 느꼈던 순간. 가시 돋친 말들과 시선에 상처받기보다는 감사로 무장한 마음으로 뚜벅뚜벅 나아가보고 싶다.

동네 책방에서 우리 생각이 났다며 선물받은 수첩은 감사 수첩이 되었다. 마음의 갈증이 느껴지는 날은 좋아하는 사람과 시원한 오렌지 에이드로 에너지를 충전했다.


"우리는 저마다 빛과 그림자를 갖고 산다. 빛보다 그림자가 커 보이는 때가 중학생 같다. (중략) 내가 하고 싶은 일이란 이런 거다. 아이들을 잠깐 불러 세워 자기 안에 이미 있는 빛을 짚어주는 일. 언젠가 주위를 눈부시게 빛낼 사람일 거라는, 사실 지금도 그렇다는,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을 단단하게 가꾸도록 하는 일.(@해피엔딩을 쓰는 마음)"


다시 돌아가 책의 여는 글을 읽어보니 이 책은 중학생에게 하는 말이 아니다. 나 역시 바쁜 일상 속에서 고군분투하며 빛과 그림자 중 빛보다 그림자만을 보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일하느라 바빠 내가 이미 지니고 있던 빛을 느끼지 못했다. 언젠가 내가 주위를 눈부시게 빛낼 사람일지는 모르겠지만,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을 단단하게 가꾸는 사람이 되고 싶다. 다정하게 용기를 내어주는 말이 필요할 때는 지금처럼 책을 읽으며 내 안의 그림자들을 잠시 미뤄두고 빛의 스위치를 켜야지. 누가 뭐래도 내 안의 감사와 기쁨을 잘 지켜야지. 내 안의 빛의 스위치를 단단하게 가꿀 수 있도록 말이다. 좋은 책은 이렇게 나를 어둠에서 빛으로 끌어내준다. 책의 위로를 받아 성큼 밝은 쪽으로 내딛는 나에게 아무래도 해피엔딩이 곧 다가올 것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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