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구미가 걸크러쉬인 내가 만난 진정한 인간상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다'라는 말을 흔하게 들었다. 뒤웅박은 박의 윗부분만 따서 만든 바가지인데 부잣집에서는 쌀을 담는데 쓰였고 가난한 집에서는 여물을 담아두었기에 여성의 팔자는 결혼을 어떤 사람과 하는지에 따라 팔자가 달라진다는 의미의 속담이다.
그러나 나는 살면서 결혼을 잘못해 고생하는 남자도 보았고 결혼을 잘해 결혼 전보다 승승장구하는 남자도 보았다. 그러니 지금은 결혼을 잘해야 한다는 중요성이 여성에게만 국한되지는 않을 터이다. 그러나 과거 여성이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하던 시절에는 여성의 운명은 결혼하는 남편의 능력과 재력에 달려있음이 당연했다.
그런데 이건 비단 우리나라만 그랬던 것 같지는 않다. 외국의 경우에도 아주 오랫동안 부잣집의 여성은 직업을 갖지 않았고 정숙하게 생활하다 약간의 사교생활을 통해 신랑을 찾고 결혼하면 집에서 살림과 육아 등이 유일한 사회생활인 것은 '오만과 편견'에서도 얼마 전 읽은 '순수의 시대'에서도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오독오독 북클럽의 추천 도서라 읽게 된 제인에어는 어렸을 때는 단순히 연애 소설로 읽었던 이야기였다. 제인에어라는 가난한 여성이 로체스터의 집에 가정교사로 들어가 주인인 로체스터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로만 여겼었다. 그래서 어렸을 때는 로체스터의 열렬한 구애에도 매몰차게 돌아 나가던 제인에어가 냉랭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사회생활을 하고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아 기르고 있는 내가 다시 읽은 제인에어는 단순한 사랑이야기가 아니었다.
제인에어는 그야말로 가진 것이 없는 가난한 여성이다. 배움을 통해 자신의 지성을 키웠으나 돌보아줄 가족이나 든든한 집안이 없기에 스스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야 하는 여성이다. 당시에 여자로서 자신의 삶을 일궈나가려면 좋은 남자와의 결혼은 필연적이었을텐데 제인에어는 그런 선택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행보를 한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에 주체적으로 자신이 판단해 행동한다. 이를테면 자신을 돌보아주기로 했지만 실제로는 구박이 가득했던 가족과의 구차한 관계에서 벗어나 공부할 수 있는 길을 선택하는 일. 신문에 광고를 내서 직접 가정교사로 일자리를 구하는 일. 난생처음 가본 적 없는 새로운 곳으로 직장을 구해 익숙한 곳을 떠나는 일. 이런 중요한 결정의 순간에 제인에어는 스스로 선택해 자신의 인생을 한발 한발 개척하는 주도적인 사람이었다.
그러던 제인에어는 가정교사로 일하던 집의 주인인 로체스터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와 결혼을 결심한다. 잘생긴 외모는 아니었지만 자신을 아끼고 귀여워해주며 진실한 사랑을 주던 로체스터에게 깊은 사랑의 열정을 느꼈으나 그는 이미 결혼한 몸이라는 것을 알고 자기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그를 빈 몸으로 떠난다. 온갖 고난 끝에 리버스목사 집안사람들에게 구조되고 죽은 숙부로부터 큰돈을 상속받게 되었을 때에도 제인에어는 주체적으로 행동한다. 리버스 목사 집안사람들에 대한 고마움과 애정으로 큰돈을 나눠 갖고, 결혼해서 인도로 함께 선교를 가자는 리버스 목사의 제안을 거절하고 자신의 사랑이었던 로체스터를 찾아간다. 그렇게 찾은 로체스터는 가진 재산을 다 잃고 불구에 장님이 되어 있었는데 그의 사랑을 확인하고 제인에어는 그와 결혼을 선택한다. 그리고 행복하게 사는 것으로 소설이 끝난다.
이 소설의 일련의 과정은 모두 제인 에어가 자신의 의지와 신념으로 선택한 주도적인 과정이다. 제인에어는 가난한 자신의 처지, 여성이라는 성별적 한계 등을 모두 뛰어넘어 자기의 목소리를 들을 줄 아는 사람이었고 자신의 마음이 원하는 것을 쫓아가되 종교적 신념과 자신의 가치관을 지키려 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자신의 행복을 일궈가는 주도적인 인물. 그게 제인에어였던 것이다.
‘내가 나를 걱정한다. 쓸쓸하고 고독하고 아무도 의지할 사람이 없으면 없을수록 나는 나 자신을 존경한다. 나는 하느님이 내려주시고 인간에 의해 인정된 법을 지키리라
지금과 같이 미치지 않고 바른 정신일 때 내가 받아들이는 원칙대로 살아 나가리라.‘
(@제인에어)
수년간 나는 청소년 추천 도서 서가에 꽂혀있는 '제인에어'가 궁금했다. 단순한 연애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왜 청소년들에게 추천해야 하는 것일까. 그러나 다시 읽은 제인에어는 연애 이야기 속에 감춰진 한 인간의 주도적 행복 쟁취기이자 성장이야기였다.
"저도 행복해도 좋은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행복해질 거예요. 안녕히 가세요."
(리버스 목사의 제안을 거절하며 제인에어가 한 말)
"저는 부자일 뿐만 아니라 독립해 있다고 말씀드렸어요. 저의 주인은 제 자신이에요."
(자신의 사랑을 의심하는 로체스터에게 하는 말)
결국 자기 삶의 주인이 나의 행복을 만들어 갈 수 있었다. 1800년대의 제인에어가 지금 나에게 건넨 말. 삶의 주인이 되라는 것이었다. 내가 사는 오늘을 들여다보며 내 삶의 주인으로 내 마음의 소리를 얼마나 따르고 있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내 삶을 들여다보게 하는 것. 나를 내 삶의 주인으로 만드는 첫걸음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렇게 뚜벅뚜벅 나의 신념으로 행복을 일궈가는 그런 주도적인 사람. 그게 이 책을 읽고 난 나의 추구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