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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정 Jun 04. 2021

살 것인가? 죽을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워킹맘 이야기

큰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일이다.

'대게는 그런 일이 있었다.' 정도로 막연히 기억을 하는 데 학년을 분명하게 되짚을 수 있는 건

당시 큰 아이의 담임이 매우 이상했기 때문이다.

연차를 3번이나 내면서 담임과 면담을 했었다.

전화 통화도 4~5번은 한 것 같다.

1~3학년 때의 담임과는 정기 면담 한번이 다였고 안하고 넘긴 적도 있었는데 말이다.

- 면담을 가게 된 사건은 담임이 아이에게 한 막말 때문이었는데, 내가 실제로 그런 말을 하셨냐고 물어봤을 때, 아이들이 농담을 잘 이해 못하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남편 왈, "말한 거 맞네."

나중에는 이 선생님이 주관하는 특별수업에 아무도 신청을 하지 않는 참사도 벌어졌는데,

어찌 어찌 착한 엄마들 몇몇이 자기 아이들 넣어 수업인원을 채웠다.


요즈음 초4면 사춘기다.

한참 내 아이가 사춘기여서 예민했을 수도 있지만,

아이가 나에게 들려준 담임에 관한 이야기는

일반적인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농담으로라도 말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반에 너무 떠드는 아이가 있었다.

얼마전 신문 기사에 아이 입에 청테이프를 붙인 교사 이야기가 화제가 되었다는 말을 하면서,

"선생님은 신문에 나오면 안되잖아?" 라며,

아이 입에 휴지를 대고 투명테이프를 붙였단다.

아직 어려서 뭐가 옳고 그른 건지 잘 파악이 안돼는 큰 아이는

이웃집과 공원에 놀라가는 차 안에서 대수롭지 않게 그 말을 꺼냈다.

아이들끼리 뒤에서 복작거려서 조용히 하라 했더니 그 일이 생각난 것이다.


너무 놀란 나는 큰 아이에게,

혹시나 앞으로 누가 네 어깨 위에 손을 대거든 엄마한테 말해야 한다

그 아이가 얼마나 떠들었던 지 간에 아이 입에 테이프를 붙이는 건 옳지 않다

라고 설명했다. - 그 아이 엄마는 얼마나 속상했겠는가?


큰 아이는 그 아이가 많이 떠들어서 선생님이 그런건데 그래도 선생님이 잘못 한 것인지 되물었다.

잘못하면 혼날 수는 있지만 그 방식이 지나쳤다.

얼굴을 때린다던가, 테이프를 입에 붙이는 방식은 매우 모욕적인 행동이다.

아직 희들이 어려서 모욕적이라는 인식을 못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그런 벌이 모욕적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걸로 행동이 교정이 되지 않는다고 말해줬다.




큰 아이에게는 친한 동생이 있다.

돌봄교실에서 만난 동생인데, 비슷한 학년끼리 묶어서 운영하다보니 한 살 어린 동생이지만 마음이 맞아 친하게 되었다.

하루는 큰 아이반 누가 금색 피젯 스피너를 잃어버린 사건이 발생했다.

그 반에 들린 다른 반 아이는 큰 아이와 친했던 동생 뿐이었는데, 그 동생이 똑같은 금색 피젯 스피너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 담임은 범인을 그 아이라고 생각했.

- 동생은 큰 아이를 보러 놀러왔던 것 같다.


우리 어린 시절 반에 뭐가 없어지면, 용서해줄테니 이따 교무실로 내려와라 라던가, 아이들한테 다 눈감아! 훔친 사람 정직하게 손들면 용서해준다. 그랬던 것 같은데,

이 담임은 그런 것도 없다.


담임은 큰 아이를 불러서,

"네가 그 아이랑 친하니까 혹시 훔쳤는지 물어봐줘."라고 했단다.

내가 집에 도착하니 아이는 안절부절이었다.

그 동생한테 어떻게 말을 해야 할 지 모르겠다.

담임이 물어보라고 시켰는데, 그 말을 하면 동생이 마음이 상할 것 같다.

자기 용돈으로 똑같은 피젯 스피너를 사주면서 물어봐도 될지를 물어봤다.


우선 담임한테는

"엄마가 물어보지 말라고 해서 물어보지 못했어요."라고 이야기하라고 했다.

아이에게는

"만약 네가 OO한테 그걸 물어본다는 거는 일단 네가 시켜서 한 일이건 뭐건 그 동생을 의심한다는 거잖아.

그리고 네가 똑같은 피젯 스피너를 사준다는 건 그 의심이 확실하다는 것이고."


큰 아이는 그 동생은 누구것을 훔칠 아이는 아니라고 했다.

심지어 그 금색 스피너는 몇일 전 큰 형이 사준거라고 자랑했다고 한다.

- 아마도 그런 걸 물어보는게 미안해서 뭔가를 사주고 싶었던 것 같다.

큰 아이에게 되물었다.

"그런데 왜 넌 그런 걸 그 아이한테 물어보려는 건데?"


큰 아이는 선생님이 시킨 거니까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다.

- 확실히 큰 아이와 둘째 아이 성향이 다른 것이, 둘째였다면 애초에 쿨하게 담임 말을 무시했을 것이다.

비단 우리 아이 뿐 아니라 주변을 봐도, 첫째들은 어른들 말을 곧이 곧대로 따른다.




큰 아이가 담임의 말을 그대로 따라

친한 동생에게 "네가 훔쳤지?"라고 물어봤더라면, 큰 아이과 그 동생은 계속 친하게 지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다행이도 큰 아이는 내 설명을 이해했고, 엄마를 담임보다 신뢰했다.


햄릿처럼 살 건인가? 죽을 것인가?목숨을 걸고 선택을 저울질 할 사안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이는 자라면서 딜레마로 고민하는 일이 더 많아질 것이다.

가치관을 정립해 나가는 과정이다.

어떤 것이 소중한지, 무엇을 우위에 둘 것인지를 정하면 고민은 되겠지만 결정을 내릴 수는 있다.

아이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들 속에서 자신이 어떤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지 알아갈 것이다.




선생님 그림자도 밟지 말라는 옛날 말이 무색할 지경이라고는 하나, 아직까지 선생님의 말은 힘이 있다.


아이들은, 특히 어린 아이들은 선생님의 말을 무조건적으로 따르고 옳다고 생각한다.

그때 큰 아이의 담임에게도 그 말을 하고 싶었다.


아이들이 아직 어리고 사리분별을 못할 수도 있으니 선생님께서 많이 사랑으로 감싸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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