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세정 Jun 02. 2021

큰 아이가 뺨을 맞았다.

워킹맘 이야기

큰 아이가 초등학교 2~3학년 때 일로 기억한다.

나는 그녀#1~#4 덕에 같이 살게 된 동생이 한국에 놀러 왔다. 

아이들이 어려 마땅히 갈 곳이 없었던 나는 올림픽 공원 내 있는 딸기야(키즈카페)에 아이들을 풀어놓고 동생과 오랜만에 수다를 떨었다.


그런데 잠시 후, 큰 아이가 울면서 나타났다. 딸기야 직원 손을 잡고서.

얼굴 한쪽이 뺨을 맞아, 빨간 손자국이 남은 채였다.

아이는 동생이랑 벽돌(스펀지)을 쌓고 노는데 한 아이가 와서 계속 무너뜨리길래 그러지 말라고 했더니 자기 뺨을 때리고 달아났다고 한다.

자기 너무 억울한데, 아이가 동생이어서 어쩌질 못했다고 서럽게 펑펑 울었다.

나는 큰 아이의 손을 잡고 그 아이를 찾았다.

아이는 친구들로 보이는 또래 아이들과 같이 있었는데, 

큰 아이 얼굴을 보더니 모르는 척 고개를 돌렸고

'부모님 어디 계시니?'라는 내 말도 못 들은 척했다.

그 아이 친구들이 알려준 룸으로 갔는데, 또래 엄마들 모임이 한참이었다.

큰 아이는 여전히 손자국이 남은 얼굴로 내 손을 꼭 잡고 있었고, 큰 아이를 모르는 척했던 아이는 뒤쫓아 룸으로 들어왔다.

나는 아이 엄마와 따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 엄마는 따로 자리를 가질 마음이 없다고 해서, 나는 어쩔 수 없이 그 자리에서 설명했다.

우리 아이들이 노는데 댁의 아이가 와서 장난을 쳤다. 하지 말라는 말에 뺨을 때리고 도망쳤다. 

아이가 사과를 받고 싶어하고 나도 사과를 받는 것 이외에 다른 의도는 없다고 밝혔다.

그런데 그 엄마는 대뜸,

"우리 아이가 괜히 그럴 리가 있나요? 댁의 아이도 잘못을 했겠죠?"라고 말을 하더라.


다른 부위도 아니고 사정이야 어찌 되었건 자기 아이가 뺨을 때렸다는데, 저렇게 말을 할 수도 있구나 싶어 좀 놀랐다.

나는 직원의 설명도 들은 상태였고, 직원의 목격이 없었더라 하더라도 순하디 순한 큰 아이가 자기보다 어린아이를 먼저 괴롭히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사과할 마음이 전혀 없어 보여서 나는 목격자 직원을 찾으러 갔는데, 하필 교대시간이었다.

CCTV가 찍힌 걸 보면 순순히 인정을 할까 싶어 프런트에 CCTV를 요청했는데, 

이게 비추기만 하고 녹화는 안 되는 방식이란다. 

- 그때는 생각을 못했는데, 이것도 의심스럽긴 하다. 

내가 거기서 싸우는 엄마들을 몇 번 봤는데, CCTV 녹화를 안 한다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가?


목격자가 있다는 말에, 그 엄마는 어쩔 수 없이 아이한테 사과를 시키긴 했는데,

뭐가 그리 분하고 억울하신지 한마디를 또 덧붙인다.

"댁의 아이도 잘 못 했겠죠."

이런 식의 사과를 받는다고 큰 아이의 마음이 풀릴까?


그날 잠이 오질 않았다. 미친년처럼 그 여자 머리채라도 잡아볼 걸 싶었다.


그날 내가 봤던 모임은 옷 입은 태로 봐서는 좀 산다는 집의 엄마들 모임 같아 보였다.

- 꾸민 듯 안 꾸민 듯 세련되고 예쁜 외모, 상표는 눈에 안 띄지만 알고 보면 명품일 것 같은 고급스런 재질의 옷으로 판단해보건 데 말이다.

그 엄마는 그냥 곱게 커서 세상 물정 모르고 자기만 아는 안하무인으로 보였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사회적 지위가 흔들릴 일이 없으므로, 남에게 미안할 일을 저지르고도 평생 미안한 줄 모르고 살 것이다.

나는 사실 7살짜리 아이가 "하지 마."라는 말에 자기보다 2-3살 많은 형의 뺨을 손자국이 나도록 때릴 수 있는지 이해가 도저히 가지 않았다.

사실 그 엄마에게 그 말도 하고 싶었다. 


큰 아이는 마음이 풀린 것 같진 않았지만, 제대로 된 사과를 받지는 못하겠다는 생각을 한 것인지 그냥 돌아가자고 했다.

자리로 돌아와 잠깐 멍하니 앉아 있었는데, 그 모임의 한 엄마가 찾아왔다.

내가 어디 있는지 몰라서 한참 헤맸다고 하면서,

자기들 모임에서도 그 아이가 자꾸 문제를 일으켜서 곤란한 적이 많았다.

너무 속상하실 것 같아 자기가 어쩔 줄 모르겠다며 아이에게 과자를 쥐어주고 갔다.

나는 그 상황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 다른 사람이 사과를 하는가?


그 뻔뻔한 엄마는 왜 사과를 안 하고 그 모임에 있던 다른 엄마가 미안해하고 사과를 하는 것인지?!

나는 좀 더 독하게 마음을 먹고, 따지지 못했을까?


학원이 끝나고 10시가 넘어 큰 아이 밥을 챙겨주면서 혹시 그때 일이 기억이 나는 지 물어봤다.

사춘기가 되어 조금 입이 걸어진 아이는, 

"내 평생 그런 또라이는 첨봤어. 당연히 기억하지. 빰 맞은 걸 어떻게 잊어."

라고 말했다.

그리고 덧붙이길, "그 엄마도 이상했어."


아이는 당시 어렸지만, 그 엄마와 아이에 대해 나와 비슷한 판단을 내렸나보다.

그런 사람들에게 진정성 있는 사과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그렇다고 그런 사람들에게 당하고 살고 싶지도 않다.

그냥 똥이라 생각하고 피해야 하는 건가?


어쩔 수 없이 어떤 범주로 묶여 가까이 지내야 되는 사이라면 거리 조절이라도 해야겠다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맞딱뜨리게 되는 사람들은 대처방안이 없다.



이전 09화 살 것인가? 죽을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