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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정 Jun 30. 2021

아이와 선생님, 맞벌이 엄마

워킹맘 이야기

점심에 밥 먹는데 둘째한테 전화가 왔다.

전화 온 줄도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다시 전화를 했는데,

아이는 펑펑 우느라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는 내가 전화를 받지 않자 

카톡으로 장문의 글을 남겼는데,

사건의 내용은 이러하다.


아이는 사회 공책을 안 가져간 걸 감추려고 일기장을 꺼냈는데,

선생님에게 딱 들켰다.

하필이면 아이와 악연으로 얽힌 아이가 일렀던 것이다.

선생님은 "OO이가 왜 그런지 아는 사람?"이라고 아이들에게 물었고,

아이들은 각자 이유를 댔는데,

아이 입장에서는 그 상황이 당황스럽고 부끄러웠다고 한다.


내가 면담을 요청할지 물어보자,

아이는 엄마가 담임을 만난다고 해서

자신에 대한 선생님의 인식이 바뀔 것도 아닌데, 

굳이 만날 필요가 없다고 했다.

- 자신이 사회 공책을 안 가져온 걸 감추려고 한 건 사실이긴 했다고.


나는 다시 아이를 설득했다.

너는 아직 아이고, 선생님은 어른이니까, 

엄마는 너의 보호자로서 한번 만나봐야 하지 않겠냐고.

아이는 설득 끝에 통화까지는 괜찮다고 했다.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아이가 자기 입장에서 감정적으로 받아들인 부분도 있었고,

내가 느끼기에 선생님이 지나친 부분도 있었다.


그 악연으로 얽힌 아이는 둘째가 아니었어도,

누구든 준비물을 안 가지고 오면 이야기할 아이라고 한다.


선생님 입장에서는

사회 공책은 전날에도 교실에서 체크를 했고 알림장에도 주지를 시킨 사항이었고,

"어제 결석한 친구들도 가져왔는데 안 가져와서 하는 말이야."라고

덧붙여 설명도 하셨다고 한다.


사실 다른 아이들이 굳이 안 가져온 거를 꼬집어서 말을 할까 싶긴 했지만,

원래 그런 아이라고 하니, 그렇다 치자.

아이에게 다시 설명을 했다고는 하나, 선생님의 말은 지나쳐 보이기는 했다.

굳이 다른 아이들에게 물어서, 다른 아이들로 하여금 비난을 받게 끔 했어야 했을까?

오죽 갑갑했으면 그랬을까 싶지만 말이다.

- 아이가 준비물을 안 챙겼고, 그걸 숨기려 한 것이 잘했다는 건 아니다.

방법이 적절하지 않아 보였다는 의미다.




나는 아이들 선생님과는 거의 연락을 하지 않는다.

대부분은 그럴 일이 없는데, 

필요하다면 적극적으로 전화나 면담을 하는 편이다.


맞벌이 부부의 콤플렉스일 수도 있지만,

우리 아이가 방치되고 있지 않다는 점을 알리고 싶기도 하고,

아이한테도 든든한 부모라는 백이 있으니, 

억울한 일이 있으면 참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점을 알려주고 싶어서다.


아이 선생님은 아이가 지나치게 게임과 인터넷을 하고 있는데,

알고 있는지를 물어보시기도 하셨다.

아이에게 신경을 못써서 그런 건지 걱정이 되셔서 그런 것 같다.


큰 테두리 안에서는 자유를 주고 싶은데,

사실 이런 걸 이해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 나는 루소가 '에밀'에서 보이는 교육관을 지지한다. 

대학 친구들이 대부분 교직인데, 

대학 친구들을 비롯하여 내가 만난 선생님들은 

대부분 게임과 인터넷에 대해 나와는 생각이 달랐다.


아이에게 동영상 편집 프로그램이나, 드로잉 툴 등을 구입해줬다.

아이는 코딩이나 프로그래밍에 능한 편이고, 

가능하면 이 방면으로 지원해주고 싶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석연치 않은 기분이 드는 것은 

'나 역시 내가 이런 핑계로 아이를 방치하는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어서일 것이다.


컴퓨터 사용시간만 본다면, 둘째는 방치되는 것처럼 보인다.

거기다 맞벌이 부부의 아이니 의심할 법도 하다.


지난주 큰 아이 운영위원회 회의에 참석했는데, 

성인 불법 동영상을 아이들이 봤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한 선생님이 뻔하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셨다.

맞벌이 부부네 집에 다 같이 모여서 본다고.

- 포인트는 빈 집인데, 굳이 맞벌이 부부라고 언급을 하신다.


사실 그럴 개연성이 높긴 하니 뭐라 말을 못 했다.

운영위원회 학부모 회원 중에 풀타임으로 맞벌이를 하는 사람은

내가 유일했으니, 아마 별생각 없이 한 말일 게다.


그 '맞벌이'라는 게 얼마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지 아는지.

내 가치관도 이중 검열을 해보게 된다.

내 몸이 피곤하고 힘들어서 자기 합리화를 하는 건 아닌가? 하고 말이다.




둘째와 악연이라는 그 아이와의 사연은 이러하다.

둘째는 초등학교 2학년 말, 지금의 학교로 전학을 왔다.

맞벌이다 보니, 아이가 혹시 급하게 돈이 필요한 일이 생길까 봐,

비상금으로 만원을 줬는데,

학교 교칙으로는 천 원까지 소지가 가능했다.

교칙을 몰랐던 건 아니었지만, 필요한 일이 있을까 봐 

가방에 넣어가지고 다니라고 했는데,

그 아이가 이걸 알고 담임에게 이르겠다고 협박을 한 것이다.


둘째는 처음에는 무시하다가, 

자꾸 뭘 사달라고 귀찮게 해서 한번 사줬는데,

그 이후로 계속 솜사탕 등을 먹고 대신 돈을 내라고 해서,

안 되겠다 싶어서 이야기를 한 것이다.


아무래도 그때 그 아이가 그 집 엄마한테 많이 혼나서,

자기에게 앙심을 품고 더 그러는 것 같다는 게 둘째의 설명이다.




사실 아이 키우는 일이 이래서 어렵다.

아이 입장에서는 너무 억울하지만,

선생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럴 만 한 경우가 대부분인데,

나는 어찌되었건, 집에 가서는

아이의 이야기에 공감도 해주면서 

선생님 입장을 피력하는 중재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엄마는 7번 직장을 옮기고, 여러 번 업을 바꾼 나에게도

가장 하드한 job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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