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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정 Aug 27. 2021

엄마의 행복에는 가성비가 필요하다.

워킹맘 이야기

부모님들이 자녀가 무난한 가정에서 무난하게 큰 사람을 만나 결혼하기를 바라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살면서 부딪히는 많은 문제들을 둘이 한 마음으로 해결해야 할 텐데, 살아온 환경이 많이 다르다면, 매번 부딪히기 쉽기 때문이다.

- 나는 그래서 시댁에서 나를 그렇게 싫어했나 싶다.


적당히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대부분의 필요는 충족되지만 가끔 부족함을 느끼는 정도가 딱 좋은 것 같다. 가끔 부족해야 남의 어려움에도 공감을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80년대 배경의 기업드라마였는데, 데릴사위로 들어와 회사를 최정상까지 올렸던 남자가 '자신을 사랑하냐'는 아내에게 이런 말을 한다.


"나는 당신을 사랑해. 가족이 차에 치였을 때, 병원비가 얼마인지 걱정하지 않고, 순수하게 가족을 걱정할 수 있는 당신을 사랑해."


너무 가난하면, 가족을 사랑하지만, 병원비 걱정에 너무 괴로워서, 아픈 가족이 원망스러울 수도 있다.


엄마는 이상주의자다.

할머니는 당뇨 합병증으로 간에 이상이 와서 돌아가셨는데, 당시 나이가 70이 넘어 다른 형제들은 수술을 반대했다. 해봤자 얼마나 오래 사시겠냐. 수술비도 부담이 된다는 게 이유였는데, 엄마는 부득불 본인이 빚을 내서 수술을 시켰다.

그런데 엄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는 수술 이후 건강이 악화되어 그 해를 못 넘기고 돌아가셨고 엄마는 그게 늘 후회스러운지, 본인이 큰 병에 걸리면 돈 들여서 수술하지 말라는 말을 반복하신다.


나는 고칠 수 있으면 고쳐야지. 저게 무슨 말인가 싶은데, 아마도 얼마 남지 않은 생명을 연장한다고 자녀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은 마음일 거라 짐작한다. 엄마가 돈으로 힘들었으니까.


엄마는 이쁜 옷 많이 입어봐서 괜찮다며, 옷도 안 사신다.

세탁소를 하는 지금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는 것도, 자기가 옷을 좋아해서 그런 것 같다고.

마치 '운명'인 것처럼 말씀을 하신다.

내 입장에서는 엄마가 '정신승리'를 하고 있는 걸로 밖에는 안 보인다.


엄마가 이쁜 옷을 많이 입어봤던가?

내 기억에 중학교 무렵인가? 엄마가 살을 좀 빼고 2~3만 원짜리 비슷한 디자인의 원피스를 많이 샀던 기억은 난다. 하도 안 치워서 엄마 몰래 100리터짜리 쓰레기봉투에 몰래 담아 10포대인가 버렸다가 엄마한테 들켰는데, 엄마가 울고 불고 난리였다.

자기 인생에 옷과 나 밖에 없는데 옷을 버리면 어떡하냐고.


좀 블랙코미디 같은 기억인데,

엄마는 미인대회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살이 찌셔서 시중에 파는 옷을 못 입으셨다.

당시에는 빅사이즈 옷을 따로 파는 곳도 없었다.

구할 수 있는 옷만 입다가 갑자기 살이 빠져 초이스가 늘어나니 이것저것 사신 것이다.

엄마는 곧 다시 살이 찌셨고, 그 시절도 잠깐이었다.

그런데 옷을 실컷 사봤으니 이제 여한이 없다라니!

누가 들으면 엄마가 사치라도 하는 줄 알겠다.


엄마의 행복에는 늘 '비용 대비'가 덧붙었다.

올해 초에 아버지 칠순 겸 제주도로 여행을 갔다.

나와 부모님 둘째 이렇게 네 명이서 가는 여행이라 일부러 단체 관광으로 했다.

- 나는 운전을 못한다.

첫날 저녁은 자유일정이었고, 나는 열심히 서칭 해서 바다가 보이는 횟집을 예약했다.

엄마는 자리에 앉자마자, 바다가 보이는 걸 보니 비싸겠다.

회가 이렇게 많이 나오는데 얼마짜리냐.

찬을 주시는 아주머니에게 팁을 드리자, 왜 팁을 주는 거냐며 한마디 하셨다.


나는 엄마가 그 저녁 시간을 즐기기를 바랐는데, 엄마는 얼마나 썼을까를 걱정하느라 제대로 즐기시지도 못했다.

엄마는 아마도 내가

"엄마 2만 원짜리 정식 코스인데, 이게 저 7만 원짜리에서 이것만 빼고 똑같대. 대신 자리는 홀이긴 한데, 어차피 먹는 건 똑같지 뭐."라고 했다면 더 기분 좋게 식사를 하셨을 수도 있다.


이튿날 흑돼지 불백을 먹을 때도 그렇다.

이렇게 해도 수익이 날까? 싶을 정도로 푸짐했는데, 맛도 좋았지만, 땅콩 막걸리 무한 리필이었다.

막걸리가 맛있긴 했다만, 술을 평상시 거의 입에 대지도 않던 엄마는 주전자에 있는 막걸리를 다 드셨다. - 물론 아까워서다.

옆에서 "엄마 몸이 더 아까워." 한마디 하고 싶지만 그래 봤자라는 걸 알아 말았다.


엄마는 시골에 내려갈 때, 내가 엄마에게 준 것들을 모아 친척들에게 나눠주신다.

명절에 회사에서 준 샴푸 세트 이런 것들인데, 그조차 귀하고 아까운 것이다.

그런데 그 선물을 받는 사람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다.

한 번은 "이제 시골도 이런 거 다 있어요."라고 기분 나쁜 티를 냈는데,

엄마는 그러던 말이다.

본인 입장에서는 좋은 선물이었던 것이다.

본인은 아까워서 쓰지도 못할 것이었으니 말이다.


선물을 줄 때는 버리기 아까워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 필요하고 좋아할 만한 것을 줘야 하는데,

엄마는 나에게 주로 버리기 아까운 것들,

남에게는 자기 기준에 좋은 것들을 나눠주신다.


나는 엄마의 선물인지, 집에 둘 곳이 없어 나에게 오는 것인지 모르는 물건들을 쳐내느라 바쁘고,

엄마의 선물을 받는 친척들은 항상 그렇지는 않지만 받고도 기분이 그다지 좋은 것 같진 않다.


너무 가난하면, 기준이 '돈'이 된다. 그렇다고 돈을 밝힌다는 게 아니라, 우선순위를 결정할 때, 내 만족, 기쁨 등이 기준이 되는 게 아니라 들인 돈 대비 얼마만큼의 만족, 기쁨을 주는 지를 따지게 된다는 말이다.

엄마가 할머니 수술을 결정한 것은 당연히 돈보다는 사랑, 가족이 소중했기 때문이다.

돈이 가치의 기준이 된다는 게 아니라 늘 돈이 부족하므로 의사결정 시 돈의 효용을 따진다는 의미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나 역시 그런 식의 셈법을 가지고 있었다.

빚지고는 못는 성격이라, 나에게 호의를 베풀면 나도 그 정도를 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호의가 부담스러운 적이 많았다.

고마운 마음은 고맙게 받고, 내 나름의 고마움을 표현하면 될 것을.

그 고마움의 가치만큼 무언가를 하려고 애썼던 것 같다.

어쩌면 그게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일 수도 있는데,

내 마음 편한 것만 따진 것이다.

지금은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동생과도 같은 싱가포르 하우스메이트에게는 고모가 은인이다.

그녀가 어려웠던 시절 학비도 대 주고 공부를 시켰고, 힘든 일이 있으면 그녀의 편에서 같이 싸워주셨다.

그런데 동생은 고모가 입버릇처럼

"나 죽으면 내 몫의 주식이랑 재산은 너한테 나눠줄게."라고 말하면 마음이 상한다고 한다.

본인은 그래서 잘하는 게 아닌데 자꾸 그렇게 말한다고.


그녀보다 몇 살이 더 많은 나는,

"고모도 네 마음 알아. 다만 고모한테는 그게 소중하니까 너한테 주고 싶은 거야."

라고 말해줘야겠다 생각한다.

살면서 돈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꼈기에 자기 마음을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다.


엄마 나이가 70이 넘어서는 확연히 몸이 이전과 같지 않음을 느낀다.

엄마의 남아있는 시간들이, 돈 걱정 없이 순수하게 기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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