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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정 Jun 19. 2021

피는 물보다 진하다?!

워킹맘 이야기

어릴 때부터 나는 몇 촌 인지도 모 친척들과 살았다.

우리 집이 서울이었기 때문이다.

엄마랑 둘이 살고 있으니 자녀들을 맡기기도 편했을 것이다.

서울에 자리 잡은 친인척이 우리 집만 있던 건 아니었을 텐데

죄다 우리 집에 맡긴 걸 보면 말이다.


차라리 남이었으면 나았을 것을.

친척 어르신들은 우리 엄마가 그들 자녀들을 돌봐주기를 바랐지만

우리 집은 숙소 제공 이외 딱히 무언가를 해줄 여력이 없었다.


나는 자기들이 아쉬워서 자녀들을 맡겨놓고 엄마가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는 이유로

헐뜯던 친척들이 미웠고 아무런 자기 방어를 하지 않는 엄마가 안타까웠다.

- 안 돌본다 즉슨 밥을 안차려 준다는 건데, 엄마는 하루 4시간씩 자면서 일을 했다.

그런 사람에게 밥을 차리라는 게 어불성설 아닌가?


엄마는 삶에 치여 억울한 마음을 느낄 여유도 없던 것 같다.

그 촌수 모를 친척들은 내가 어리다는 이유로 내 앞에서 엄마 흉을 봤다.

- 당시 어른들은 아이들이 아무것도 모를 것이라 생각을 하거나,

어린아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후자 쪽이 더 큰 것 같다.

그만큼 몰지각했고 우리 모녀를 우습게 봤다.

그리고 나는 엄마가 상처 받을 까봐 그들의 만행을 말하지 못했다.


도대체 엄마가 그들에게 무슨 피해를 주었단 말인가?

엄마가 욕을 먹을 이유가 무엇인가?

엄마가 그들에게 제발 우리 집에 머물러 달라고 사정한 것도 아니고

심지어 세를 받은 것도 아니다.

안방에 딸린 방이라 사실 세를 놓을 수도 없었겠지만,

내 방이나 여분으로 써도 될 방을 내어준 것이었다.

- 엄마 생각에는 내가 혼자 있으니 친척들이라도 옆에 있으면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한다. 

- 전혀 아니다. 하나도 안 낫다.


일단 그들은 다 장성하여 취업을 위해 서울로 올라온 사람들이었다. 

공부하겠다고 올라온 어린 사촌동생도 있었으나

그 동생을 제외하고는 모두 성인이었다.

그나마 여자들은 좀 나았다. 자기 밥은 자기가 챙겨 먹었으니.

남자가 어떻게 밥을 차려먹냐는 건데, 왜 못 차려 먹는단 말인가?

난 고3 때 사촌동생 도시락도 쌌다.

안차려 먹을 꺼면 사 먹던가!


나는 외동이라 형제가 없기도 하지만,

친척들과의 경험으로 미뤄보건대

혈연지간이라 더 신뢰할 이유를 못 찾겠다.

오히려 기대만 많아 실망만 더 크다.


기억은 왜곡되기 마련이고,

아직 내가 어렸으므로, 그들이 우리 모녀에 대해 서운했을 만한 

른 무언가가 있었을지는 모르겠다만,

나는 굳이 그들을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고

자라서는 그들과 연락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신뢰는 믿음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에게 가지는 것이다.

친척이라고 더 믿을 만하다? 아니라고 본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왜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할까?

자주 볼 일이 많고 관계가 어쩔 수 없이 평생 지속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소한 이해로 '관계'에 흠이 가는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그 사람이 믿을 만해서가 아니라 계속 얼굴을 볼 사이니까.

마치 파푸아뉴기니 원주민이 자기 딸을 죽인 이웃과 화해를 하는 것과 같다.

평생 볼 사람이니 푸는 것이다.(이제까지의 세계 / 재래드 다이아몬드)


나 같이 시니컬한 사람은 '꼭 굳이 계속 봐야 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나는 그 친척들과 연락을 하지 않는다.


좋은 사람도 자주 보기 힘든 세상이다.

지금은 자주 보더라도 살면서 생활 반경이 달라 멀어지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좋은 사람은 카톡 프로필에 생일 알람이라도 챙기려도 한다.

대게는 케이크+커피세트를 보낸다.

우리 나이 때의 여자들이 자기 혼자 있을 시간이 없으니까.

집에 있으면 어차피 집안일 때문에 못 쉬니

차라리 커피숍에 가서 30분이라도 멍 때리고 있으라고 한다.


비록 카톡 알람에 연락을 하는 것이라도

1년에 한 번이라도 안부를 주고받으면,

나중에 다시 만날 때 덜 쑥스럽다.


20대 중반 무렵 동기 언니에게 그런 말을 했다.

"난 언니가 너무 좋아. 언니는 내가 나중에 굳이 연락할 거야."


찐한 건 그런 사람들한테만 찐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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