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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정 Jun 13. 2021

시누이, 며느리

워킹맘 이야기

얼마 전 저녁에 사촌언니를 만났다.

나는 나대로 엄마 문제로, 언니는 올케와의 문제로 서로 할 말이 많았던 것이다.

언니는 내가 대학 때 잠깐 재수를 하느라 서울에 올라와있었는데 그때 우리 집에서 살았다.

게다가 지금은 같은 동네에 산다.


언니는 나보다 3살이 더 많다. 

우리 집이 서울이라는 이유로 수많은 친척들이 우리 집을 거쳐갔는데, 

언니는 그중에서도 내가 제일 좋아했던 사람이다.

친언니는 아니지만 넓고 넓은 마음으로 동생들을 품을 줄 안다.


언니는 최근 시골에 있는 부모님 집 리모델링 공사를 했다.

공사 기간 동안 부모님이 살림을 하지 못하니 서울에서 반찬을 싸다 강원도까지 나르고, 입주일에는 짐 정리 등을 하느라, 일정을 다 빼고 며칠 내려와 있었다고 한다.

- 언니는 과외를 전문적으로 하는데, 며칠 빼려면 일일이 아이들과 스케줄 잡고 보강하는 게 보통일은 아닐 것이다.

언니는 3남매인데 공사비용도 언니 혼자 다 댔다.


언니는 공치사를 바란 건 아니지만 당신도 최근 암수술을 받은 환자인데, 남동생이나 올케가 이사일에 한번 내려는 와보던가 해야 하지 않냐고 전화도 없었다고 서운한 마음을 토로했다.

언니는 다른 사람보다도 올케가 안 내려와 본 게 내심 괘씸했다고 한다.

- 나는 여기서 의문이 또 생겼다. 막내 여동생이 안 내려온 건 왜 서운하지 않지? 원래 그런 아이라서?


언니는 남동생네가 자기들 놀러 갈 때는 일정 조정하면서 시댁 일로는 안 한다고 나무랐다.

올케도 과외가 일인데, 휴가 때 이외에는 스케줄을 잘 변경하지 않는다고 한다.

언니는 당신은 시어머니한테도 똑같이 그렇게 하는데, 당신과는 다르게 시어머니에게 별 신경을 안 쓰는 올케가 못마땅했던 것 같다.


나는 "언니, 휴가야 놀러 가는 거니까 당연히 일정 조정을 해야지. 나도 시댁에서 리모델링한다고 해서 내 스케줄 바꿔가면서 안 가볼 것 같은데?"라고 말을 해서 언니를 경악하게 했다.

단편적인 만남으로만 판단하기는 어렵겠지만, 이모네는 나와는 달리 며느리와 정말 격의 없이 친 자식처럼 지내는 것 같아 보이기는 했다. 

서로 할 말 하고 부대끼며 살더라도, 사실 며느리 속은 알 수 없는 게 아닌가?

오빠의 부인은 쾌활하고 웃음이 많은 사람이었는데, 겉으로 보이는 게 그렇다고 해서 시댁 가는 게 편하기만 한 상황은 아닐 수도 있다.


나만 해도 꼭 필요한 일 이외에는 만남을 가지지 않으려 하고, 내가 그 불편함을 알기에 심지어 우리 아이들에게도, 우리 나중에 명절, 생일 때만 잊지 않고 서로 챙기자라고 말하지 않는가?

- 그것도 그냥 외식하자고.


언니는 좋은 사람이다. 책임감도 무척 강하다.

본인 부모뿐 아니라, 홀로 남긴 시어머니도 자기 부모처럼 챙긴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이 다 언니 같지는 않다.

언니는 드문 사람이다.


어떤 사람들은 가족의 무게가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내가 그렇다.

언니는 나를 남에게 피해 안주는 개인주의자라고 부르는데, 

언니 입장에서는 가족의 범위가 딱 자기 식구에 국한되는 내가 잘 이해가 안 될 것이다.

나는 내 식구만으로도 벅차다. 그 외의 사람들에게는 친절하고 예의 바르지만 그뿐이다.

내가 마음이 가서 좀 더 신경을 썼다고 해서 상대방에게 기대하지도 않는다.

나는 내 식구 + 친한 친구 몇 명 이게 다인 게 편하다.


언니는 올케도 자기 식구라고 생각하니까 기대한 걸 텐데.

나는 시누이랑 사이가 좋지만 내 식구라 생각해본 적은 없다.

이런 차이는 무엇일까?


나는 '가족'의 무게가 힘들다.

엄마와 둘이 살아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가족은 책임져야 할 게 너무 많다.

그래서 그 범위를 더 넓히고 싶지 않다.

반면 언니의 가족은 결혼을 해서는 시어머니 + 시댁 남매들까지 확장되었다.

아주버님 이혼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형님이 불쌍한데 시댁 남매들 아무도 관심이 없다고 분노했다.

- 아주버님은 변호사이고 형님은 전업주부였는데, 한쪽이 일방적으로 불리한 싸움 같아 더 화를 냈던 것 같다.


언니는 자기 앞에서 가족 흉을 보는 건 자신의 일부를 공격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한다. 

언니는 '가족'이 '자기'인 셈이다.


나는 천성이 오지랖이 넓어서 오지랖을 부리지 않으려고 무척 애쓴다.

신경 써봤자, 그 사람이 원하는 도움이 아니면 도움 주는 것만 못한 경우가 많아서다.

그런데 언니는 용감하다.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도와주고도 욕먹는 상황이 생기면 상대방과 대화로 푼다. 

화도 잘 내고 잘 웃고 잘 공감한다.

- 나는 같은 상황이면 거창하게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다 혼자 삐지고 실망할 것이다.


나는 언니가 자랑스럽다. 책임을 적극적으로 떠 앉고, 상대방에게 실망하는 일이 생겨도 외면하는 게 아니라 서운함을 표출하고 대화로 푸는 그 용감함과 적극성이 부럽기도 하다.

- 다만, 언니가 상처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언니의 올케는 좋은 사람이지만, 단지 가족의 범위가 언니와는 다르다는 것만 알아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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